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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35)

안개가 가득한 베네치아

by 이재민

오늘은 베네치아에서의 사실상 마지막날이다

내일은 기차를 타고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간다

어제 오후 1시쯤부터 일정을 시작했더니 생각보다 짧은 하루를 보낸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일찍과 귀찮음의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 11시에 출발을 하였다

첫 번째 목적지는 카 레초니코였다

이곳은 레초니코 가문의 집인 모양이다

알아보니 우리나라로 치면 돈으로 양반 호적을 산 집안이라 보면 된단다

금융과 무역으로 돈을 벌어 전쟁으로 돈이 부족했던 베네치아에 돈을 주고 귀족이 된 가문이었다

돈이 많은 집안이라 그런지 꽤나 화려했다

화려한 집에 화려한 인테리어를 하고 멋진 가구들을 들여다 놓았다

2층으로 올라가니 화려한 인테리어에 다양한 회화작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처음으로 본 것은 지안도메니코 티에폴로의 작품들이었다

잔니고라는 지역에 있는 가족의 빌라를 위해 그린 작품들이었다

나는 처음에 작품들이 파스텔 톤이고 가족들을 위한 거니 좀 평화롭고 이쁜 그림이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그런데 특정 후원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자유롭고 풍자적인 작품들을 그렸단다

그 말인즉슨 현 귀족들을 까는 내용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설명은 풍자라는 고급 단어를 썼지만 귀족들의 행태를 비웃는 그림들이라고 봤다

구석에 꼭 개가 그려져 있는데 분명한 의도가 있다고 본다

역시 험담은 재밌다

동선을 따라 구경을 하니 피에르토 동기의 작품들이 나왔다

베네치아의 일상을 많이 그렸는데 그중 눈길이 가는 것은 귀족들이 가면을 쓰고 있는 그림들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비슷한 풍의 그림을 봤는데 귀족들이 가면을 쓰고 도박장에서 게임을 하는 그림이었다

나는 귀족들의 추악한 면들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래서 귀족들은 왜 가면을 썼는가를 궁금해했다

긍정적인 면도 꽤나 있었다

가면을 쓰고 익명성을 강조했기에 귀족과 평민이 꽤나 동등한 입장에서 소통을 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자유로운 연애와 사교를 즐길 수 있었단다

그러면서 며칠 전에 구글지도에서 매춘부의 다리라는 곳을 보았다

베네치아가 이 당시 동성애가 많이 벌어졌던 모양이다

그래서 동성애를 조금은 방지하기 위해 나라차원에서 매춘을 장려를 한 모양이었다

이 작은 다리에서 매춘부들은 합법적으로 상의를 탈의하고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예전에 닥터프렌즈라는 유튜브에서 유럽의 명화와 질병의 상관관계를 재미나게 본 적이 있다

많은 그림에서 매독의 반점을 보았다

자유로운 연애와 가면이라 나는 이 베네치아에도 성병이 유행하지 않았을까 예상해 보며 gpt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가면문화는 성병을 부추긴 동시에 감염자들이 자신의 상태를 숨기는 도구로 활용되었을 거란다

이 당시 귀족들의 추악한 면을 들어낸 것만 같아 괜히 속이 흡족하다

재미있게 구경을 하고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에는 에지디오 마르티니 그림 갤러리가 있었다

에지디오 마르티니라는 분이 기증을 한 작품들인 모양이다

전체적으로 파란색 벽에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파란색 벽과 적절한 조명은 작품을 감상학에 아주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주로 성경과 신화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었다

좋은 작품들이 많았지만 1층과 2층에서 집중력을 많이 쓴 모양인지 큰 관심을 가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도 나름 기독교인이기에 성경을 모르는 건 아닌데 다니엘 서의 수산나와 장로들 사건은 모르는 내용이라 의아해했다

알고 보니 외경의 내용이란다

아무래도 외경도 잘 아는 가톨릭 그리고 유럽인들의 눈에는 친숙하지 않을까 했다

나름 의미 있는 시대 여행을 한 후에 리도 섬을 가보기로 했다

베네치아 섬들은 대부분 차가 없어서 좋았다

특히나 본섬 같은 경우는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없었다

근데 이 리도 섬은 다르다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뻗은 이 섬은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있었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버스를 타보는 것 같다

리도섬을 많이 공부하고 오지 않았기에 무작정 남서쪽 끝으로 향하는 A번 버스를 탔다

지도를 보니 동쪽으로는 해변을 서쪽에서는 일몰을 잘 볼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날씨가 안개 가득이라 아쉽다

낮이 되면 안개가 많이 걷힐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아쉽기만 하다

어제 리도 섬을 보고 오늘 박물관을 돌아볼걸 그랬나 보다

그래도 나름 안개가 있는 바다가 운치가 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동쪽의 해변가를 먼저 보고 Alberoni lighthouse dam라고 적혀 있는 곳을 갔다가 서쪽으로 오면 석양을 볼 수 있겠다 싶다

즉흥적인 계획을 세우고 즉흥적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린 곳도 꽤나 운치가 있었다

바다가 바로 옆에 있어 산책만 해도 좋겠다 싶다

하지만 나의 목적지는 동쪽 해변이다

구글지도를 검색해 보니 8분을 걸으면 된단다

열심히 걷는데 점점 비포장 도로를 넘어서 점점 숲 속으로 들어간다

길인 듯 길이 아닌듯한 길을 걸으며 속으로 이거 맞아? 하면서 걸어 들어간다

어느 순간 구글지도는 도착했다 하는데 바다는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파도 소리가 분명히 들리기에 소리를 따라 걸어가니 굉장한 곳을 보게 되었다

해변이라고 하기에는 색이 조금 어두웠지만 굉장히 광활하고 넓은 해변과 바다가 나왔다

근방 3,400미터 주위로는 아무도 없는 나만의 세상이었다

놀라움을 느끼며 해변을 거닐어 보았다

바닥이 단단하니 아주 걷기 좋았다

용기 있게 도전한 길의 결과물에 상당히 만족을 하였다

적어도 오늘 하루 중에 한국인은 내가 처음 일거라며 괜히 뿌듯함을 느꼈다

계속 걸어서 Alberoni lighthouse dam을 향해 갔다

기분 좋음도 있지만 마음속에 불안 함도 공존한다

혹시나 군사지역이나 그런 거 아니겠지?

일단 사람은 없다

꽤나 긴 길이 좁게 쭉 있었다

20여분을 걸으니 등대인지 무엇을 하는 곳일지 모르는 곳에 도착을 했다

지금은 안 쓰는 듯해 보였다

가보니 낙서들과 벽에 나름 괜찮은 그림을 그려놨다

이게 유적지고 이게 벽화지 하면서 나름 만족스러운 관람을 했다

그리고는 석양을 보려고 점찍어둔 장소까지 가야 했다

걸어서 52분이란다

날씨가 안개가 자욱하여서 석양을 못 볼 거 같아 그냥 숙소로 돌아갈까 고민도 해봤지만 그냥 돌아가려 해도 50여분은 똑같이 걸어야만 하는 오지였다

석양을 보든 못 보든 일단 가보기로 한 데는 가보기로 하였다

가는 길이 꽤나 아름다웠다

왼편에는 바다가 오른편에는 호수인지 바다가 넘친 거인지 모를 것이 보였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물이 양옆에 있으니 좋다

조금 더 걸으니 검은 고양이 세 마리가 보인다

똑 같이 생긴 애들이 왜 이리 많아하면서 옆에 나오는 집의 마당을 보니 검은 고양이가 네 마리가 더 있었다

네 마리 사진을 찍고 싶어 잔디로 다가가니 우다다다다 도망간다

길을 가는데 바닷가 바로 옆에 집들이 몇 채 지어쟈 있었다

집 아래를 보니 나무로 집을 지탱하고 있었다

며칠 전 베네치아 집들은 어떻게 지어졌는가 검색해 봤는데 딱 설명이 이 집들과 같았다

이곳은 조수 간만의 차가 커서 아래가 다 드러나있지만 본섬의 집들은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보니까 딱 이해가 된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날씨만 좋았다면 석양이 정말 아름다웠겠다 싶다

이곳을 또 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오게 된다면 이곳에서 석양을 바라보리라 다짐해 본다

버스를 타고 배 정류소로 가는 길에 리도 섬의 진짜 아름다운 부분은 하나도 못 보고 가는구나 싶은 생각이 갑자기 든다

물론 보고 싶은 곳은 다 보았지만 본 곳의 북쪽이 사실 관광지이다

정작 관광지는 하나도 안 보고 이상한 곳만 보고 온 꼴이다

그래서 조금은 무리를 해서 더 둘러볼까 했다

하지만 큰 아쉬움을 남겨야 나중에 또 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려나 싶다

어찌 첫술에 배부르랴

나중에 나이가 들면 아프리카에서 보았던 노부부들처럼 아내와 같이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일단 다른 곳은 모르겠고 따뜻할 때 그리스의 섬들과 이곳 베네치아는 한번 와보고 싶다

큰 아쉬움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해 먹었다

여행을 할수록 또 다음 여행을 기약하는 이상한 밤이다

2025.1.31

한국 가면 열심히 돈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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