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곡 별 코멘터리 2

03 + 04

by 쓰다 Xeuda

03 푸른 알약


다음 마을로 가보겠습니다. 오래된 라디오 혹은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아련한 오르골 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요. 그리고 푸른 알약을 손에 든 화자가 등장합니다. 여전히 목소리도 과거 어딘가에 있는 느낌으로 곡이 진행됩니다.


1, 2절 보컬의 가사 하나하나마다 계속 감정이 변해서 노래하기 굉장히 어려운 곡이었습니다. 푸른 알약을 손에 들고 삼킬지 말지 고민하고, “나를 사랑하던 네 얼굴이 나를 봐” 하며 행복하다가 “거짓말 너는 거짓이잖아” 하고 좌절합니다. 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감정을 표현하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독백이 끝나고 모든 사운드가 아래로 꺼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결국 그 알약을 먹었는지 알 수 없지만, 혼자 남은 사람이 노래를 시작합니다. 다른 세상에 도착한 것처럼 목소리의 질감도 변합니다. 곡을 이끌던 피아노도 사라지고 일렉기타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벨소리들이 들려요. ‘내 손 안에 푸른 환’ ‘거짓과 환상의 비천한 세계’라고 노래해요. 그러나 믹스를 통해 소리의 질감을 만들어 오히려 알약을 먹기 전이었던 그 전의 세상이 더 환상같이 느껴지도록 했습니다.


사실 이 곡은 실연의 아픔을 담은 곡입니다. 아주아주 오래전 갑작스레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다 잠에 들지 못해, 수면유도제를 먹고 잠에 들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 꿈에 그 친구가 나와 저를 사랑하던 그 모습으로 웃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짜 “이거 꿈이잖아, 거짓이잖아.” 이야기하면서 밀어냈어요. 잠에서 깨려고 노력했지만, 깨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 꿈속에서 그냥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놀자, 생각하고 그대로 그 세계로 빠져들었던 적이 있어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노래입니다.


_CYY1483.JPG 사진 최예영 @yeng__p


04 작은 방


‘이달의 음성메모’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작은 방’은 친구들과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는 ‘이달의 음성메모’라는 음악 메일링 구독서비스를 통해 만들게 된 곡입니다. 매달 다른 주제로 각자 한 곡씩 만드는데, 어느 날의 주제가 <방> 이었어요.


저는 나만의 방을 갖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는 가족이 다 함께 지내거나 동생과 방을 함께 쓰면서 자랐어요. 고등학교 때는 기숙사 생활을 해서 수많은 룸메이트가 있었고요. 그때 잘 맞던 친구와 지금까지도 같이 살고 있습니다. 같이 지낸 지 한참 뒤에 방을 따로 쓰기 시작했으니 온전한 내 방이 생긴 지는 이제 한 5년 정도 되었네요.


내 방이 생기니 원하는 대로 방을 만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나의 생활 리듬에 맞춰서 책상과 의자, 침대가 꾸깃꾸깃 다 들어갔어요. 가만히 방에 이렇게 누워있으니 이 방은 그 자체로 나의 우주인 것 같았습니다.



이달음을 하면서 저 역시 구독자의 마음으로 친구들의 새로운 음악을 매달 제일 먼저 받아보고 있어요. 구독자분들이 보내주시는 답장도 아주 가까운 사람보다 오히려 더 가까운 사람이 보내준 편지 같은 기분도 들어요.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우주를, 자기만의 방을 서로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어요. ‘연결되어 있다. 만나지 않아도 그렇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앨범작업 하면서 이 노래가 가장 마지막에 녹음되고 완성되었어요. 기획 단계에서부터 타이틀로 잡아둔 곡이기는 하지만 사실 작업 중간에 빼고 싶은 곡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곡들에 비해 너무 밝아서요. 그런데 앨범의 전체 흐름으로 한 번 꺾어줘야 하는 타이밍이 필요했기도 했고, 한 곡 정도는 미끼로 삼을 만한 곡이 있어야 했죠. 그래서 편곡도 믹스도 최대한 “인디밴드”스럽게 만드는 게 프로듀서님과 저의 목표였습니다. 성공했는지는.. 우리는 모르겠어요.


보컬 녹음이 가장 오래 걸리고 힘들었던 곡이기도 해요. 저는 최대한 밝게 부른 건데도 프로듀서님께서 계속 더 밝게 부르기를 원했죠. 그래서 결국 ‘고양이를 안고 고양이한테 불러준다고 생각해 보세요’라고 하셨거든요. 그렇게 상상하고 부르니 단번에 성공했습니다. 우리집 고양이에게는 좋은 것만 들려주고 싶거든요.


하지만.. 맨 마지막 가사인 "또 저런 일들"에서 약간 음을 떨어뜨리며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과연 이 방은 진짜일까? 이 다음은 어디로 가게될까요?




푸른 알약: https://www.youtube.com/watch?v=_7IOjkIF5cE

작은 방: https://www.youtube.com/watch?v=qSy6FQSyogY




<푸른 알약>


푸른 알약 한 알에 겨우 눈을 감아

이제 나는 잠에서 깰 수가 없어

나를 사랑하던 네 얼굴이 나를 봐

거짓말

너는 거짓이잖아


너를 밀어내 겨우 떨어뜨려

해도 나는 잠에서 깰 수가 없어

나를 사랑하던 네 얼굴이 나를 봐

거짓말인 걸 알지만 눈을 감아


내 손안에 투명하고 푸른 환

거짓과 환상의 비천한 세계

내 손안에 투명하고 푸른 환

슬프고 아름다운 아득한 세계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빛 아래

그 세상의 문을 다시 삼켜


내 안에 있는 너를 만나러 가내 안에만 있는 너를 만나러 가



-

<작은방>

나의 작은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만 가지의 그런 일들과

또 저런 일들


너의 작은방에서

피어날 일들

수만가지의 그런 일들과

또 저런 일들


다 펼쳐노니

은하수 같다고

말하면서도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그 이상한 방에


나의 작은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만 가지의 그런 일들과

또 저런 일들


다 펼쳐노니

은하수 같다고

말하면서도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그 이상한 방에



나의 작은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만 가지의 그런 일들과

또 저런 일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곡 별 코멘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