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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 별 코멘터리 3

05 + 06

by 쓰다 Xeuda

05 X


X는 <술>이라는 주제로 만들었던 곡입니다. 아래는 ‘이달의 음성메모’를 보내며 함께 적었던 글입니다.


요즘 나는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적어도 10년 이상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운동을 시작하고 서서히 줄어들더니 요새는 정말 잘 안 마신다. 금주를 결심했다기보단 그냥 그간 너무 많이 마셔서 굳이 더 안 마셔도 될 것 같은 기분이랄까?


술을 좋아했다. 취한 기분을 좋아했고 기억을 잃어도 개의치 않았다. 그러려고 마신 술이었다. 기억이 끊긴 다음 날 차마 맨 정신에 들을 수 없는 나의 추태를 들으면서 괴로워해도 얼마 뒤면 술을 마셨다. 취한 나는 나였지만 내가 아니기도 했다. 술에 취한 입과 손이 멋대로 먼저 뛰어나가는 것이 좋았다. 적당히 취해서는 이성을 잃을 수 없었다. 다음날 기억을 잃을 정도가 되어야 나는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었다. 술은 내가 가진 모든 벽을 무너뜨렸다. 아무 필터링도 거치지 않은 나는 자유로웠다. -고 착각했다


분명 자유의 기분을 만끽했는데 다음 날 돌아오는 것은 깨질듯한 숙취, 텅 빈 지갑, 맨살에 배인 소주 냄새, 팔과 다리의 멍 또는 화상 자국이었다. 끊어졌던 기억의 시간을 다 합치면 얼마나 될까. 이제는 그 시간이 아깝다. 통제되지 않는 나도 슬슬 싫고.


약간의 분노, 자책, 짜증 같은 감정이 섞여 있는 곡입니다. 이 곡의 기타는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녹음했는데요, 정확하게 떨어지지 않는 박자가 곡 전체를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술에 취해 비틀비틀 흔들리는 모습을 기타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탈탈 털어낸다고 할 때 뒤에 나오는 물소리는 직접 녹음한 소리입니다. 프로듀서님과 이 소리를 찾아서 여러 개 들어봤는데 제가 딱 원하는 소주 따르는 소리가 없더라고요. 와인이나 위스키 따르는 듯한 소리는 있었지만 성에 차지 않아서.. 이 부분은 타협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 진짜 소주를 사서 아이폰 음성메모로 녹음해 넣었습니다. 또 이 곡은 다른 곡들에 비해 약간 낮은 음질로 녹음했는데요. 낡고 거친 사운드를 표현하기 위해 시도한 방법이에요.


간주가 시작될 때 베이스가 들어와요. 원래 프로듀서님은 여기 더 어둡고 아주 까칠까칠한 베이스 소리를 넣었고, 일렉기타가 표현하는 사운드도 훨씬 더 거친, 신경질적인 신디 사이저였습니다만 타협점을 찾아 지금의 사운드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전 버전도 좋지만 앞으로 가게 될 마을이 더 스산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지금처럼 마무리된 게 좋았어요. 그리고 간주 부분에 허밍이 나오는데요. 정말 술에 취한 사람처럼 의식의 흐름대로 흥얼거렸습니다. 역시 이 부분도 사람의 울음인지 짐승의 소리인지 알 수 없게끔 하고 싶었습니다. 보컬 멜로디도 강약을 주어 흔들거리며 우는 듯, 소리치는 듯 들리도록 만들었어요.


안개 같은 것, 빈 독 같은 것. 하는 가사는 일부러 욕을 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강조점을 두고 불렀습니다. X라는 제목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사실 욕이에요. 심한 욕.


사진 @yeng__p (최예영)

06 숙취


숙취라는 곡은 만듦과 동시에 꼭 카코포니에게 편곡을 맡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머릿속에 막 이상한 소리가 오가는데 이걸 제가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카코포니라면 이 소리를 제자리에 데려다 놓을 것 같았습니다. 처음 편곡 버전에는 ‘지옥에서 온 베이스’라고 제가 표현한 아주 아주 낮고 무서운 베이스 소리가 있었는데 결국 그 사운드는 끄집어내 땅 위로 올려놓았어요. "마음대로 해주세요!"라고 해놓고 뽑아 올려서 아직도 약간 프로듀서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남아 있습니다.


숙취는 지긋지긋한 것, 그럼에도 끊을 수 없는 것, 술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고통스러운 어떤 것을 표현하고자 했던 곡이에요.


곡 중간까지 밝은 느낌으로 가다가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며 시공간이 바뀌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숙취가 있는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잠깐은 괜찮다가 몸을 틀거나 들어 올리는 순간 어제의 숙취가 한 번에 몰려오잖아요. 진짜 토하는 듯한 느낌을 내고 싶었고, 숙취로 인한 신체의 아픔, 두통, 메스꺼움, 그리고 기억으로 인한 정신의 고통까지도 다 담고 싶었어요.


이 노래의 처음부터 등장하는 일렉기타, 그리고 중간 부분에 들어가는 다양한 기타 소리는 전부 기타리스트 김명환 씨가 녹음했는데요. 후반부에 굉장히 많은 사운드를 이것저것 만들어서 보내줬더라고요. 자세히 들어보시면 일렉기타 사운드가 많아요. 평소에는 되게 조용한 성격인데 보내준 녹음 파일이 난리법석으로 신나 보여서 그것을 보며 프로듀서님과 되게 즐거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중간에 “다 토해내” 하면서 정말 소리를 지르는 부분이 있는데요. 제가 이걸 해냈을 때 박수를 치며 좋아하던 프로듀서님이 생각납니다. 부끄러워 녹음도 쭈뼛쭈뼛했던 저에게 이런 감정표현을 이끌어내 주셨거든요.


처음 가사에는 ‘그만 믿어버렸네’라고 하고요. 끝날 때는 ‘그냥 믿어버렸네’라고 합니다. 한 끗 차이가 천지 차이라고 첫 번째에는 의지가 아니었다면 결국에는 자기 의지로 선택을 해버리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상한 세계로 또 흘러갑니다. 자연스럽게 다음 마을로 이동해요.




X : https://www.youtube.com/watch?v=M0-runOKP10

숙취 : https://www.youtube.com/watch?v=6p6XOgLYPJ8



< X >


수북한 먼지

사라지지 않는 안개 같은 것

시큼하게 또 찌릿한

한 모금에 타라 타라 라라라

털어낼 수 있다면

내 영혼을 드릴게요

또 한 잔의 술로

채워지지 않는 빈 독 같은 것

시큼하게 또 찌릿한

한 모금에 타라 타라 라라라

채워질 수 있다면

내 영혼을 드릴게요


-


< 숙취 >


어제 꿈을 꾸었어 난

너와 함께 있는 꿈

하도 진짜 같아서 난

그만 믿어버렸네

잊지 말자고 해놓고

사실 잊어버렸어

아주 솔직히 살짝은

그냥 잊고 싶었는지도

아아 아아 아아

다 토해내 토해내

너와의 시간 목소리 온기도

아아 아아 아아

다 토해내 토해내

깨질 것 같은 두통에

어제 꿈을 꾸었어 난

너와 함께 있는 꿈

하도 진짜 같아서 난

그냥 믿어버렸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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