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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위한 제물

영화 <차우>를 보고

by 은조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식인 멧돼지의 이름이자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차우'는 영어 단어 'Chaw'의 '질겅질겅 씹다'라는 의미와 충청북도 방언으로 덫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낯설기는 하지만 식인 멧돼지를 사냥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이 영화의 줄거리와 잘 어울리는 제목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다른 맥락에서도 이 영화의 제목이 영화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차우: ‘덫’의 방언(경기, 충북)


영화 <차우>는 공포와 코미디를 섞어 색다른 재미를 주었던 <시실리 2km>의 신정원 감독의 2번째 장편 작품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진지한 괴수물을 기대하고 본 분들은 아마 '덫'에 걸린 느낌을 받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신정원 감독이 전작 <시실리 2km>에서 코미디 장르에 스릴러 장르를 더했듯이, 이번에는 코미디 장르에 괴수물을 가미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장르 혼용이 아닌 '가미'라고 표현한 것처럼 이 영화는 괴수물로서의 재미보다, 코미디가 더욱 부각되는 작품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괴수물인 줄 알았던 '덫'에 걸린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코미디 영화인가 하면, 개인적으로는 '덫'에 걸려 생긴 상처만을 안고 가게 되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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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물? 코미디?


Chaw: (방언) 질겅질겅 씹다


영화는 초반부터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코미디적 제스처를 숨기지 않습니다. 슬랩스틱부터 반복되는 상황으로 만들어 내는 코미디까지 이 영화는 쉬지 않고 관객들에게 '재미'를 주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런 유머들이 만들어내는 '재미'는 이 영화가 영화적 '재미'를 그 제물로 바쳐 질겅질겅 씹어나가며 만든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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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특징은 영화 <차우> 초반부 씬 구성에서부터 알 수 있습니다. 영화는 초반부임에도 괴수물의 분위기를 형성하거나, 캐릭터 설명을 위해 씬들이 등장하기보다는 유머가 있는 장면이 나온 뒤, 또 다른 유머가 있는 장면으로 넘어가는 방식입니다. 코미디 장르에 괴수물을 가미했듯, 유머가 주(主)인 장면에서 캐릭터나 상황 설명들은 살짝 곁들여지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영화 <차우>는 어릴 적 '최불암 유머 시리즈'처럼 웃긴 이야기들이 모여있는 유머집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야기 진행도 개연성도 캐릭터 설정도 모두 유머만을 위해 작위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영화를 2시간 동안 연속적으로 보게 하는 재미들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영화가 가장 최우선의 목적으로 두고 있는 유머마저도 위태롭게 합니다. 영화 속 모든 소재들도 코미디의 재료로 사용되는데, 음담패설이 나오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다양한 폭력적인 모습들 또한 (관객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웃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직 웃음을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자기 역할 하나 제대로 못 해내는 캐릭터들을 통해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라고 블랙 코미디라 말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캐릭터들의 바보스러움 또한 그저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차우>


조금만 이야기에 신경을 썼더라면, 조금만 캐릭터들을 설득력 있게 그렸더라면, 조금만 웃음에 강박을 덜어냈더라면, 조금만 건강한 웃음을 고민했었더라... 영화 <차우>는 '웃음'으로 모든 부족함을 만회해 보려했지만 결국 이 '웃음'까지도 문제가 되는 영화가 돼 버렸습니다. 비슷비슷한 느낌의 한국 영화들이 쏟아지는 지금, 이런 개성 있는 영화들이 분명 필요하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개성'만' 있는 것은 특별함이 아닌, 특이함이 돼 버린다는 것 또한 잊어선 안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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