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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뭇펭귄 Oct 26. 2019

동화와 아이돌이 만났을 때

TXT(투모로우바이투게더) - '꿈의 장 : MAGIC' 앨범 리뷰















모든 어른은 소년, 소녀 였던 시절이 있다. 너무 무거워서 철 따윈 들고 싶지 않았던 시절.


학교는 왜 그렇게 땡땡이 치고 싶었는지, 잠긴 옥상은 왜 그리도 올라가보고 싶었는지. 치기어린 반항이 쿨하다고 느껴졌던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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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히트는 요즘 상당히 '문학과 음악의 결합' 이라는 키워드에 꽂혀 있는 듯 하다. '데미안' 의 내러티브를 레퍼런스 삼았던 BTS의 경우에도 그렇고, 이번 TXT의 타이틀곡은 '9와 4분의 3 승강장' 이라는 익숙한 키워드에서 보이듯 '해리포터' 를 레퍼런스 삼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제목만 들었을 때는 '마법사' 컨셉으로, '해리포터 OST를 샘플링한'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예측을 했었다. 얼마전 SuperM의 Jopping이 어벤져스 OST를 샘플링한 것 처럼, 외국 영화들과 콜라보하는게 케이팝 추세일까 싶었는데, 속을 까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해리포터 시리즈와는 큰 서사적 관련성이 없고, 단숨에 호기심을 자아낼 만한 네이밍을 위해 이런 키워드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간에, 이 앨범에 관해 할 말이 정말 많다. 타이틀 곡부터 하나하나 뜯어보도록 하자.



1. 타이틀 곡 :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너를 기다려'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6yWPfUz0z94

                     

 BTS의 persona 앨범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작곡가 Slow Rabbit 이 TXT의 앨범에 계속 등장하고 있다. 2번 연속 타이틀곡 참여에, 앨범 대부분의 수록곡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아 앞으로 쭉 TXT의 메인 프로듀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뿐만 아니라 빅히트 프로듀싱의 또다른 핵심인 Supreme Boi 가 참여했는데, 이 두명의 프로듀서는 JYP의 이우민, 이해솔 작곡가 처럼 빅히트 프로듀싱의 양강구도를 형성하며 빅히트 만의 컬러를 공고히 하고 있다. (피독 작곡가는 이상하게 TXT의 앨범에 거의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번 앨범의 'Angel or Devil' 이 유일한 참여곡이다)

 Slow Rabbit, Supreme Boi 듀오 뿐만 아니라 Melanie, Lindgren 듀오 도 작곡에 참여했다. 둘은 팀은 아니지만 거의 함께 붙어다니며 작업하는데, '어느날 머리에서 뿔이 자랐다' 를 시작으로 '작은 것들의 시' 등 빅히트의 굵직한 프로젝트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그 외에 방시혁을 비롯해 몇 명의 해외 작곡가들이 더 참여했는데, 무려 8명의 이름이 크레딧에 올랐다. 협업과 송캠프가 일상화되어있는 시스템 상 많은 작곡가들이 크레딧에 올라오는 건 이제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앨범 설명에 따르면 장르적인 정의는 '뉴 웨이브가 섞인 신스 팝' 이라고 하는데, 뉴 웨이브 만의 펑크 록 적인 감성이 얼핏 느껴지지만 장르를 딱 특정짓기가 애매한 곡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장르적으로 너무 딱 떨어지면 곡의 컨셉이 장르 자체가 주는 뉘앙스에 잠식될 우려가 있는데, 이 곡은 이 점을 고려한 것인지 컨셉과 키워드, 핵심 가사와 멜로디를 명확히 정한 후 하나하나 조립해 나간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러한 시도는 이들의 음악과 메인스트림 EDM, 팝 과의 경계선을 명확히 구분짓는데, EDM,팝을 레퍼런스한 파생 음악로 치부되지 않고 'TXT' 라는 독자적인 하나의 브랜드를 형성하는 것이다.


 빠른 템포의 하우스 리듬이 마치 기차가 달리는 듯한 긴박감을 준다. 이는 '9와 4분의 3 승강장' 이라는 제목과도 잘 들어맞고 북받쳐 오르는 사랑의 감정, 위태로운 청춘의 정서를 표현하는데도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또 프리 코러스의 멜로디 라인이 상당히 독특한데, 반음계 계단식 진행으로 신비롭고 장난스러운 느낌을 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화룡정점이라 생각하는 파트는 브릿지 라인에서 무드가 빠지면서 디미니쉬 코드의 멜로디 라인이 전개되는 부분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무언가 음산한 듯하면서, 신비롭고 동화적인 이미지가 느껴지는데, 장황했던 곡 전체에 순간적으로 긴장감을 부여하면서 이어지는 마지막 훅에 더 큰 청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작가진의 편곡적인 센스가 잘 드러나는 부분. Hook은 8마디씩 두 파트로 나뉘어 전개되는데, 첫 파트에서는 하이 노트를 사용해 프리코러스에서 고조시킨 무드를 폭발시키고, 두번째 파트에선 미들 노트를 사용함으로써 분위기를 차분히 정리하며 여운을 남긴다. 또한 계단식 노트 배치와 특정 캐치프레이즈 및 멜로디 반복 (Runaway runaway runaway ~ 등의 반복을 말한다) 등 케이팝에서 아주 보편적으로 쓰여왔던 작법을 차용했다.

 '어머뿔' 에서 전반적으로 편곡과 사운드에 힘을 죽이고 청량한 멜로디라인을 부각시켜 '귀에 단박에 꽂히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면, 이번 곡에서는 사운드적인 웅장함과 공간감에 힘을 줘 조금 더 영화적이고 극적인 느낌을 주려 했다고 생각한다.


 전작과의 비교를 잠시 하자면 데뷔앨범 '꿈의 장 : Star' 에서는 '너를 만나 들뜬 감정상태' 를 표현한 곡들이 많았다. '너를 만나 내 뿔은 왕관이 되지', '너와 나는 보색같이 다르지만 우린 잘 어울려', '너를 만나면 강아지가 되지' 등의 가사들에서 알수 있듯 전반적으로 장난스럽고 들뜬 바이브의 곡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타이틀 곡은 '나와 함께 환상 속의 세계로 도망치자' 라는 일탈적이고 조금은 불안정한 느낌의 서사를 담고 있다. '꿈의 장 : Star' 에서는 너를 만남으로써 느끼는 '순수한 감정' 에 대한 고백을 했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이 순수함을 짓밟으려 하는 현실이 싫어 환상 속의 세계로 도피를 하고, 6번 트랙 'Magic Island' 에 와서 현실 도피는 순간적인 상황 모면일 뿐 임을 깨닫고 좌절을 느낀다. 개인적인 예상으로는 '결론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조금은 더 성숙한 사랑을 하게 된다' 라고 꿈의 장 시리즈를 마무리짓지 않을까 싶다. 순전히 개인적인 궁예 이기 때문에 아니라고 욕하지 마시길...


 가볍게 듣기에도 좋고, 극적인 무대 연출에도 걸맞는 보물 같은 곡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자극적 이미지가 난무하는 대다수 아이돌 뮤직비디오와 달리 따스하고 정감가는 연출이 마음에 드는데, '힐링 콘텐츠' 를 생산해 낸다는 빅히트의 뚝심을 반영한 듯 보인다. 멤버 한 명 한 명의 개성도 색다른 것 같고, 스타일링도 상당히 훌륭하다. BTS만큼 패션으로도 주목받는 아이돌이 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든다.


2. 수록곡 리뷰


 수록곡들을 쭉 듣고 나서 놀랐던 점은 굉장히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스타일적 다양성 뿐 만 아니라 한 곡 한 곡의 완성도도 굉장히 훌륭해서 플레이리스트에 두고두고 저장해 놓고 듣고 싶을 정도다.


1. New Rules


 Caesar & Loui 듀오, DJ Swivel 과 Candace 듀오 가 참여한 곡. Caesar & Loui 는 짐살라빔, 빨간맛, ICY 등 걸그룹 곡에 참여한 이력이 많은 작곡가 그룹이다. 소녀시대의 All night, EXO CBX의 Girl Problems 등의 레트로 트랙 부터 시작해 코다 쿠미의 on and on, EXO CBX의 Diamond Crystal 등의 어쿠스틱 발라드 트랙도 잘 만들어 내는데 학창시절 재즈, 록 밴드에서 피아노와 기타를 연주했었다고 한다. 때문에 짐살라빔, ICY 등의 EDM 뿐만 아니라 어쿠스틱한 곡들도 잘 만들어 내는듯 하다. Olof Lindskog (Ollipop) 라는 작곡가와도 자주 뭉쳐다니는데, 원래 트리오로 활동했었고 현재 Ollipop은 독립한 상태라고 함. Everglow의 Adios, You don't know me 를 작곡한 이력이 있다. 세 명이서 레드벨벳의 짐살라빔의 작곡을 맡았는데 참고로 Everglow의 You don't know me 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Ollipop 특유의 작곡 색깔이 있는 듯 하다.


 DJ Swivel 은 청량한 느낌의 곡에 많이 참여한 작곡가로 Euphoria, Magic Shop, Answer : Love Myself, Love Maze 등의 숨은 명곡들을 만들어냈다. Candace 라는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로 둘이 뭉쳐다니며 활동하는 듯 하다. 참고로 크레딧에 올라온 Max 와 Matty 와는 '소우주' 에서 합을 맞춘 바 있다.


 Funk 장르의 곡으로 커팅 연주되는 기타와 리드미컬한 베이스 라인이 특징이다. 또 다른 특징이라면 브릿지에서 곡이 마무리되는 형식이라는 점이다. verse 1 - hook - verse 2 - hook - bridge (Finale) 의 구성인데, 일반적으로 브릿지에서 라스트 훅으로 마무리짓는 것과 반대로 브릿지에서 곡을 끝내 버리면서 무언가 미완성인 듯한 느낌을 준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곡인 만큼 여운을 남겨 놓으려는 의도였다고 생각한다.



3. 간지러워 (Roller Coaster)


 UK garage 장르의 곡. 인트로의 필인과 계단 진행의 신스 베이스 라인에서 뉴잭 스윙인 줄 알았는데 훅을 들으면 영락 없는 garage 다. Garage 특유의 시니컬한 느낌에 몽환적인 멜로디가 어우러져 구름 속을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매니악한 장르인 만큼 아이돌 곡 치고 실험적인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PA5uuBCtZ5k&list=PLmutGYdNIhMF246_h2VAlnRC-pykqRkqc&index=1



4. Poppin' Star


 트랩 팝 장르의 곡인데 장난스러운 멜로디 때문인지 Bubblegum Trap 이라는 명칭이라고도 불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5XK4v2fgMPU

                          

대강 이런 느낌의 장르. 어둡고 퇴폐적인 대다수 트랩과 달리 긍정적인 바이브가 느껴진다.



5. 그냥 괴물을 살려두면 안 되는 걸까


 트로피컬 + 뭄바톤 장르의 곡. Melanie 와 Lingren 이 또 한번 참여했다. 아이돌 곡에서 아주 자주 차용되는 장르이고 특히나 여름 시즌에 쏟아져 나오는 스타일 이기도 하다. 가사가 상당히 재미있는데, 가상현실 게임 속에 있는 듯한 멤버들이 최종 보스를 잡고 엔딩을 보기보다는 보스를 잡지 않고 게임 속에서 계속 머물고 싶다는 가사다. 판타지 컨셉을 잡은 앨범이니만큼 적절한 스토리텔링이긴 한데, 개인적으로 가사가 트로피컬 트랙에는 잘 붙지 않는 느낌이다. 던전이 떠올라야 되는데 해변이 자꾸 떠오르는다.



6. Magic Island


 어쿠스틱 팝 장르의 곡. 타이틀 곡에 등장하는 Magic Island 가 이곳을 말한 걸까? "결국 물거품이 될까, 꿈도 다 추억이 될까 / 회색 현실의 끝에 또 어둠이 날 부를 때" 등의 가사에서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찾아온 Magic Island 지만 결국에 회색 현실 속으로 돌아가야 하는 절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언젠가는 우리들도 어른이 되고 차가운 현실을 맞이해야 하겠지만, 소년기 때의 추억을 잊지 말자며 약속한다. 소년들은 언젠가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아마 다음 앨범에서 이런 스토리를 담아내지 않을까?



7. 20cm


 모든 수록곡 들 중에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90~2000년대 Slow Jam 을 아이돌 앨범에서 들을 줄은 몰랐다. 내 최애 장르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돌 R&B 중에 이정도 퀄리티의 곡을 처음 듣는 것 같다. 한국적인 R&B 발라드가 아니라 완벽히 본토 느낌의 그루브와 멜로디...(까지는 아닌가?) 멤버들의 보컬은 좀 아쉽긴 하지만 아이돌인 것을 감안해 들을만 한 수준이고 애초에 멜로디가 사기다. 원래 Slow Jam 하면 끈적한 사랑노래나 Bedroom Music이 많은데, 이 곡의 화자는 청소년들인 만큼 '너의 속눈썹 개수를 수학공식처럼 외워 버리고 싶어', '도서관 맨 윗칸에 있는 책 대신 빼줄게', '떡볶이 멤버가 필요할 때 내가 같이 가줄게' 등의 귀여운 가사들로 가득 채웠다. 남성적인 멜로디라인과 달리 너무 가사가 아기자기해서 빵 터졌다.



8. Angel or Devil


 Ratchet 장르의 곡인데 요즘 유행하는 Tyga 스타일의 808의 질감에 올인하는 래칫은 아니고 옛날 Chris Brown - Loyal 같은 파티느낌의 래칫이다. 그리 특징 지을 만한 요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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