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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환 Sep 09. 2016

비극 2

<낯선 여행자의 시간 | 개정판> 연재 #15

...권력 지향적 구조, 혹은 권력 도착적 의식 구조가
현재 우리 사회의 집단 무의식의 원형 자체 또는 그 저변을 이루고 있다...


비극은 참으로 끔찍한 것이다. 그것은 가장 완고하고 동시에 평범하거나 인간 이하의 영웅적 망상과 결부된 것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망상에 의한 충동, 또한 자신이 만들어 낸 정체불명의 증오와 분노에 의한 충동, 외부로부터의 충격과 내면적 상처에 의한 충동, 그리고 인식 부조화의 늪에 빠진 집단 내의 서열에 따라 형성된 폭력성, 비합리성, 맹목성들이 융합된 권력 야욕은 필연적으로 그가 속한 집단 모두를 비극으로 몰아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단순한 지식의 결여나 인격 결함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외부로 드러나는 혹은 드러내고 싶어하는 초인적 영웅 행태가 보여주는 미숙한 사회에서만 돋보이는 이른바 ‘제왕의 카리스마적’망상에 스스로 도취되어 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판단에 대해 절대적 확신—이것은 지배하려는 야망에서는 물론 한낱 인간을 우상화하는 노예들의 비열함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나는 이해하기 힘든 극단적 신념이다—을 갖게 된다. 바로 이것이 비극 중의 비극이며 재앙 중의 재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권력 야욕은 개인 자신의 불행에 대해 사회 체제 전체가 보상하도록 하는 보복으로 치닫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자신의 오류에 대한 인식의 문제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순환 논리 같지만 실제로 그는 자신의 지적 능력이나 논리를 확장할 수 있는 인지, 분석, 판단, 결정하는 인식의 통합적인 체계—이성적 인식 능력의 최소한이다—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기본적인 지적 인식 능력도 중요하지 않고 따라서 분석과 판단이란 있을 수 없다. 그에게는 타자의 논리를 단 한 마디의 확신으로 제압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관건일 뿐이다. 또한 그것이 자신의 사회적 존재감을 확인하고 입증하는 행동 양식이다. 이러한 확신에 찬 대답이나 제안이 상대로부터 수긍되었을 때에 ‘도박’을 통해 얻는 이익의 안도, 즉 돈을 따게 되었을 때 갖는 불로소득의 안도감 같은 쾌감을 경험하고 이를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지속적으로 축적해 나가게 된다. 만일 상대가 그의 확신에 반론을 제시하거나 제안을 거부한다면 그는 그 상대를 불쾌의 원인 내지 불행의 원형과 동일시—사실 현재 이 사회의 거의 모든 사람이 논쟁에 임하는 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하고 원수와도 같은 적대감을 갖게 된다. 그는 자신의 단호함이나 지도력에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적대감을 쉽게 노출하지는 않는다. 만일 그가 지식이 매우 부족하거나 이성에 의한 사고방식에 익숙지 않고 혹은 이러한 방식을 귀찮아하거나 지적으로 저열한 인간이라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자체를 모르거나 그 반대로 너무 쉽게 자기의 본래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다.


이 비극의 주인공은 어떠한 옷이나 액세서리, 시계 같은 것이 자신에게 어울리는가 아닌가 하는 이 두 가지 경우에도 흑백의 선택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지 그 옷 혹은 액세서리의 색감, 질감, 형태, 그리고 그것과 더불어 가졌던 느낌들 같은 것에는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 만일 그가 이러한 것에 관심을 보이거나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면 그것은 매우 공허한 그리고 스스로는 전혀 의미를 모르는 기계적 수사일 뿐이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고 살고 있지만 매우 한심한, 마치 안전핀이 달랑거리는 폭약같은 위험한 인간이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이처럼 그저 순박하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그의 원형은 권력 야욕 자체로 똘똘 뭉쳐져 있기 때문에 지배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마치 박탈된 것만 같은 상태에 놓여 있어서 그는 늘 우울하고 원형이 형성된 불행의 시기, 즉 과거의 한 시점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시간에 매여 살게 된다. 그의 지배에 대한 욕망은 아무렇지도 않게 인간과 세계 자체를 자신의 우울과 지배의 부속물처럼 여긴다.


그는 매우 과묵하고 신중하게 보인다. 그가 과묵하고 신중하게 보이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지배자에게 있어서 경거망동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므로 그것을 스스로 단속하고 억압한다. 이것은 또한 다른 편의 권력자들에게도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나 권한처럼 생각한다. 태생의 환경 자체가 그러한 절대적 힘을 누리고 있었다면 그 요구는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에게 명하는 당연한 지침이나 명령 같은 것으로 본능처럼 알고 있을 것이다. 그에게 경거망동은 그리고 경솔함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악덕이다. 경거망동이라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솔직함, 욕망과 그는 전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룰 수 없으므로 한 인간으로서 정체성을 상실하며 삶을 소모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외면과 달리 실체에는 걷잡을 수 없는 그리고 끝없는 욕정을 아무도 몰래—사실은 모두가 다 안다— 만족시켜야 하는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가 매우 과묵하고 신중한 또 하나의 이유는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자기 자신이 하는 말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서 타인에게 그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능력도 없다.


그가 위험한 존재인 이유는 자신의 개인적 불행에 대한 보상을 사회의 불행을 통해 보상받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적 불행을 송두리째 합리화하기 위해 권력에 집착하게 되고 권력은 곧 정치 행태로서 일정 부분 어쩔 수 없는 현실성을 확보하는 수단이며 도구가 되는 것이다.


정치는 모든 것이 성공하지도 실패하지도 않는 가장 안전한 부조리— 정치는 모든 것을 파탄낼 수 있다. 그러나 그 파탄 난 곳에서도 정치 자체는 파탄 나지 않고 안전하게 존재한다. 그러므로 정치는 가장 안전한 보상의 영역이지만 그는 이러한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한다. 정치는 인간이 창조한 가장 더러운 예술인 이유다—한 보상의 영역이 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비극과 사회의 비극을 동일시 할 수도 있다. 더구나 자신만을 위한 최악의 이기적인 노력을 모두를 위한 최대의 공익적 노력으로 포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역사적인 기록에 자신의 행적을 남길 수 있다는 소 영웅적 매력으로 인해 그는 절대로 권력 야욕을 포기하지 못한다. 이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곧 그와 자신을 탄생시킨 원형의 부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몰락은 자신 외에 또 다른 숙주의 생존을 보장할 수가 없게 되는 매우 절망적인 상황을 불러오게 되므로 권력의 위기는 곧 모든 세계의 위기보다 더욱 엄중하게 대처한다.


맹목에 의한 총력전, 바로 이것이 그의 생존의 비결이다. 그는 자신의 권력이 마침표를 찍는 순간에도 그 마침표가 새로운 진행형—어떤 면에서는 맞는 생각일 수도 있다. 다만 그 권력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만 그의 생각과 차이가 있다—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권력 지향적 구조, 혹은 권력 도착적 의식 구조가 현재 우리 사회의 집단 무의식의 원형 자체 또는 그 저변을 이루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의 많은 것들’에 관심을 두고 특히 어떤 지적 능력이나 사회적, 역사적 가치관, 정치적 비전 등에 대해 궁금해 한다. 적어도 내 생각에 의하면 그것은 매우 불필요하고 허무할 만큼 의미 없는 짓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동기와 과정의 어떤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심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결과적 치장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권력자 그 혹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 의미나 가치가 아니라 원형의 복원을 위한 앙심을 품은 보복일 뿐이다. 이를 위해 숙주로서의 사명을 다하느냐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그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유일한 역사적 가치이며 사회적 의미이며 정치적 목적이고 경제적 이이익이다. 이를 위해 우위를 점령하고자 한다면 그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고 그것을 성취한 뒤에는 보다 나은 안전—자신의 안위를 위한 권력의 보장—을 위해 또 다른 소모와 파괴적 희생을 강요한다. 이러한 소모가 사회의 합의나 법 절차에 반한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경계 의식이나 위험 의식을 가졌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역시 이유는 간단하다. 그러한 의식 구조 자체가 형성될 필요나 동기 자체를 가져 본 적이 없이 때문이다. 


‘필요한가. 그렇다면 할 수 있다.’ 그의 명제는 이렇게 간단한 맹목으로 집약된다.


그가 단 한 사람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말길 바란다. 그는 제3의 인물인 ‘그녀’이거나 ‘그’일 수도 있지만 다름 아닌 바로 ‘당신’일 수도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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