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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환 Sep 06. 2016

비극 1

<낯선 여행자의 시간 | 개정판> 연재 #14

이 <비극> 편은 내용은 물론 구조적으로도 매우 부실한 장이다. 개정판 작업을 하면서 거듭나야 하는 부분이 비단 여기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많은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 브런치 연재를 위해 작업하던 중 만나는 문장들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이 장을 비롯해 <낯선 여행자의 시간>은 앞으로도 수회에 걸쳐 전면 개정될 예정이다.


...모욕이 강도가 강해질수록
그리고 시간이 지속될수록 저항의 의지는 훨씬 더 배가되고
이 저항의 의지를 실현할 수 없을 때에 그 의지를 기억하고
심지어 유산으로 물려주고자 하는 의지까지 맹렬하게 생성된다...


비극은 끔직한 것이다. 이러한 끔찍한 일들은 한 인간 존재가 타자에 대해 인격적인 모욕을 가하면서 시작된다. 아마 이러한 단편적인 문장에 선뜻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지도 모른다. 어떻게 비극이라는 것이 그렇게만 시작될까 하는 의문과 함께 말이다. 장담하건데 인간에 대한 모욕에서 비롯되는 비극보다 끔찍한 것은 없다. 인격에 대한 모욕은 순간에 이루어지지만 이 모욕을 당하는 자의 수모는 순간으로 끝나지 않는다. 만일 이것이 의도적인 것이라면 가해자는 훨씬 더 오랫동안 그리고 계획적으로 집요하게 타자의 인격에 모욕을 가한다. 수모를 겪게 되는 자의 의식에서 저항의 의지를 파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욕이 강도가 강해질수록 그리고 시간이 지속될수록 저항의 의지는 훨씬 더 배가되고 이 저항의 의지를 실현할 수 없을 때에 그 의지를 기억하고 심지어 유산으로 물려주고자 하는 의지까지 맹렬하게 생성된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인격적인 모욕으로부터 발생하는 비극을 막고 싶다면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의도적이고 계획적이며 지속적인 인격 모욕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제시가 너무 공허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인격체와 인격체의 관계가 아닌 힘과 인격체의 관계에서 본다면 이것은 결코 허무한 단편적인 결론이 아니다. 이러한 요건의 하나를 실행에 옮겨 이미 타자에 대한 모욕의 행위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루어졌다면 가해자는 그의 행위로 인해 자신에게 되돌아올 잔인한 재앙을 피할 길이 없다. 즉, 모욕은 부메랑처럼 그대로 자신에게 되돌아간다.


개인에 대한 것이든 어떤 집단에 대한 것이든 힘에 의한 인간에 대한 모욕은 결국 그 반대의 작용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힘을 가진 상태에서는 인식하기가 매우 어렵다. 힘의 작용이 균형을 갖기 어려운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해자—이들은 대부분 영웅적 망상에 도취되어 있다. 자신에 대한 마땅한 사회의 지탄이나 비난은 영웅의 운명이며 새로운 초인적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숙명이므로 자신이 곧 정의라는 절대적 확신을 갖는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한 반대는 곧 악이다—는 이러한 재앙을 보복이나 복수의 관념으로 이해할 것이다. 이 관념은 자신의 악랄함을 뛰어넘는 악랄함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구체적인 공포의 모습을 이루고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의 실행으로 옮겨지는 모욕과 가해하는 폭력의 강도를 더욱 배가시키는 합리화의 기제로 사용된다. 


결국 가해의 단계에서 가해하는 모욕의 기본 기제도 자신의 것이고 그 이후에 되돌아오게 될 비극, 즉 가해자 자신이 생각하는 보복 내지 복수로서 비극에 대한 가해적 폭력 역시 자신이 원인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그의 공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폭력성으로부터 시작되어 가장 원초적인 고통으로 끝을 맺게 된다. 합리적 혹은 합법적 힘을 가장한 맹목적 권력의 최후는 언제나 비참하다.


정치 보복이라는 것이 그것의 전형이다. 역사를 되짚어보면 정치권력 쟁취를 위한 암투에서 오간 피의 보복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또 얼마나 추잡한 것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동시에 얼마나 의미없는 것인지도 알게 된다. 권력 쟁취를 위한 보복은 계속해서 앙갚음의 대물림만 이어질 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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