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인환 Sep 04. 2016

삶 3

<낯선 여행자의 시간 | 개정판> 연재 #13

정치권력에 의한 폭력과 범죄가 일상적으로 난무하는 곳에서
별 볼 일 없는 무명 시민이라는 인간 존재의 삶은
참으로 고달프고 비참한 것이었다



나는 어느 카페 앞을 오랫동안 서성거리며 배회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잠시 스치듯 지나가는 인간에 대한 그리움이 어쩌면 가을이라는 시간일 수도 있겠다는 감상에 빠져든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하늘 아래 세계 어느 곁에 기대고 싶다가도 높고 파란 하늘에 반해 넋을 놓고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다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제자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사람을 만나고 무엇보다 차가운 바람이 가슴 속에서 일렁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 파문의 그림자 속에서 잊고 싶은 기억들과 대면하게 될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은 그 기억으로부터 지워버리고 싶고 어떤 사람은 다시 되새기고 싶어 한다. 되새기고 싶은 그 사람이 한 때 고마운 사람이었기에 좀 더 따스한 기억일 수 있다. 지워버리고 싶은 그 사람이 한때 그러한 따스한 사람이었기에 스산한 바람이 살짝 스칠 때 그 자리가 눈을 맵게 하고 가슴을 아프게 한다.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다. 부스럭부스럭 뒹굴고 있었다. 부쩍 차가워진 공기에 몸을 움츠렸었다. 모진 강바람이었다. 정처 없이 발길은 시내를 걷고 또 걸었다. 걸었다기 보다 헤매고 또 헤맨 날이었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마포대교 위를 걸었다. 세상도 자신의 자리를 잃었고 마음도 제자리를 잃었던 날이었다. 홀로 한참을 거니는 동안 문득 베듯 지나가는 날카로운 강바람이 나를 일깨웠다. 노을 진 한강이 붉게 그리고 단풍처럼 아름다운 노란색으로 얽히며 조화롭게 물들어있었다. 사악한 여의도의 밤섬은 쓸쓸하게 하늘로부터 구름을 뚫고 쏟아지는 빛내림을 받고 있었다. 서둘러 어두워지는 하늘 물길도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무심하게 서쪽을 향해 흐르고 또 흐르기만 했다. 한강을 가로지른 마포대교 위를 요란하게 지나가는 자동차들, 홀로 그 다리를 거닐던 나는 시끄러운 소음들 사이에 버려진 듯 존재하였으며 부정한 세상을 바라보며 한탄하였다. 


정치권력에 의한 폭력과 범죄가 일상적으로 난무하는 곳에서 별 볼 일 없는 무명 시민이라는 인간 존재의 삶은 참으로 고달프고 비참한 것이었다.<계속>

작가의 이전글 낯선 여행자의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