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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환 Dec 11. 2016

죽음보다 두려운 자유

<작가의 생각 | 노트>

나는 하느님을 믿으며 진심으로 죽음을 두려워 한다. 인간의 죽음은 어쩌면 신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다. 적어도 살아 있는 한 인간의 영혼은 하느님의 절대 권능도 넘보지 않는 자유가 있다. 오히려 인간의 자유가 스스로 하느님의 절대 권능에 복종하려 하기는 한다. 인간은 넘볼 수 없는, 그러나 인간의 자유는 넘볼 수 있는 하느님의 권능, 그것과 직접 맞닿는 것이 죽음이다.


하느님과 관계된 영역 이외에 인간의 세계-사실 하느님을 믿는 인간의 모든 세계는 절대자와 관계가 있다-에도 자유가 있다. 구속 당하지 않고 한 인간 존재로서 온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유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종종 권력의 힘과 다수의 위력 앞에서 무기력하게 짓밟힐 때가 많다. 


나는 죽음처럼 자유가 두렵다. 얼마나 많은 인간들의 피와 뼈를 자유의 뿌리에 묻었는지를 생각한다면 두렵지 않다는 말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 내 삶을 지배하기를, 또한 나의 생이 두려움의 소용돌이 속에서 춤추듯이 자유의 강 건너편으로 지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바로 궁극적으로 바라는 나의 자유이다. 비록 비열하게 번민으로만 몸부림칠 뿐이지만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개인의 감정까지 다수에 동참하라고 하는 곳이므로 그 자유란 어쩌면 죽음보다 더 가혹한 두려움을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계의 그들은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자유를 원하고,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살기를 원한다. 어쩌면 무지가 욕망하는대로 욕망하는 맹목이 세계의 그들이 사는 삶의 정체가 아닐까.


나는 때로는 자유라는 말이 죽음보다 더 두렵다. 그래서 종종 나는 온전한 나의 자유를 위해 나 이외의 인간들의 요구를 냉정하게 거부하곤 한다. 나는 그들이 아니며 그들이 무엇이든 내게 그들처럼 되거나 그들이 원하는 어떤 인간이 되지 않을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뻐할 때 나는 슬퍼할 것이며 그들이 슬퍼할 때 나는 고요한 사유 속에서 기뻐할 것이며 그들이 분노할 때 나는 냉철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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