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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Jan 06. 2022

=vlookup("나", $세상$, 사랑, false)

엑셀만 잘하면 회사 생활 성공하는 줄 알았다.


"엑셀은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이야"


헛소리 같지만 나는 이런 친구의 말에 공감했다.


그렇다.


나는 엑셀만 잘하면 회사생활 잘하는 줄 알았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데에는 엑셀이 꼭 필요하니까.



내가 엑셀에 처음 눈을 뜨게 된 것은,


"피벗도 못 돌려?"


라고 면박을 주던 신입사원 시절의 팀장의 말이었다.


자극을 받아 나는 회사에서 유명한 엑셀 고수한테 갔다.


이 분은 거의 엑셀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수준이었다.


"피벗과 Vlookup은 기본이지."


마치 무협지에서 절대고수에게 기본 호흡법과 보법을 전수받은 신출내기 주인공처럼 피벗과 vlookup의 개념을 배우고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엑셀을 잘 알고 나니 3시간 걸릴 일이 30분도 안 걸렸다.


어슴푸레 말로 설명하던 논리를 뒷받침 해줄 만한 확실한 근거자료가 되어주기도 했다.


이것은 뭐랄까, 많은 선배님들의 '짬바(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를 한 번에 뛰어넘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절대신공을 얻은 것만 같았다 (구양신공을 터득한 장무기같다고 표현하려다가 참았다).


원래 이과적 성향이 강한 문과생이었던 나는, 나의 논리와 주장을 뒷받침 해주는 데이터 분석 자료와 함께 회사 생활에서 큰 힘을 얻게 되었다.



나의 엑셀부심은 강해져만 갔고, 심지어 나는 지금의 와이프와 결혼하는 순간을 페이스북에 이렇게 쓴 적도 있다.


"=vlookup("나", $세상$, 사랑, false)" =너


웃으시는 분은 엑셀에 일가견이 있으신 분들이다. 웃으면서도 알아보는 걸 부끄러워하실 수도 자랑스러워하실 수도 있다.


대략, '이 세상에서 나라는 사람의 완벽한 사랑을 찾으면 너'라는 뜻이다.


'엑셀에 감성까지 더할 수 있는 나는 엑셀의 마법사인가?'라는 착각까지 할 정도였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이 데이터 분석 능력을 지금까지도 내 실무 능력 강점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고, 잘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엑셀을 잘하는 능력은 '혼자 잘하는 사람(Self-contributor)'과 '팀을 이끌 수 있는 사람(People Manager)' 사이에 가장 중요도가 크게 바뀌는 능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신입부터 어느 정도 위치까지는 혼자 일을 잘해도 인정을 받는다. 사실 그 '혼자 잘하는 능력' 중 하나가 엑셀 능력인 것 같다. 아무래도 빠른 분석능력은 다른 사람보다 빠르게 일을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상사가 결정을 내릴 때 명확한 근거를 제공해줄 수 있어서 능력을 인정받기 쉽다. 또한 이렇게 탄탄히 기초를 쌓는 것은 여전히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팀을 이끌 수 있는 사람(People Manager)'가 되기 위해서 엑셀 능력은 '있으면 좋은(Good to have)'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엑셀을 잘하면 팀원이 분석을 하는 데 있어 가이드를 잘 줄 수 있고, 데이터에 오류가 있는 것을 빠르게 알아챌 수는 있다.


하지만 팀원보다 엑셀을 더 잘하면,


"줘봐 내가 할게"


"아 여기서는 이렇게 분석해야지"


"이게 다야?"


이런 말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내가 지금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적이 있었다고 솔직히 고백하겠다. 지금도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그냥 차분히 왜 그렇게 했는지 물어보고 방향성을 잡아주려고 노력한다.


비단 엑셀 능력뿐만은 아니다.


다른 개별 업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매니저가 되면 보통 많이 겪는 부분이다.


본인이 잘한다고 생각하는 업무 능력에 대해서는 팀원이 가져왔을 때 '왜 이것밖에 못 하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본인이 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그만큼 할 수 있다고 믿는 착각 때문이다.


하지만 본인이 어떻게 그 능력을 기르게 되었는지, 고생했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면 스스로 그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코칭하고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이 매니저로서 더욱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피벗도 할 줄 몰라?"


라고 얘기한 신입시절 나의 팀장도 나의 능력을 키워주기 위한 자극이었을까?


그런 의도였다 하더라도 나는 너무 싫었기 때문에 그런 말은 절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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