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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Jan 09. 2022

"팀장님, 저 싫어하시는거 맞잖아요." 팀장님의 반응

진짜 말해버렸다. 속마음을.

신입 사원 시절이었다.


2개월 간의 인턴 시절을 거쳐서 들어간 회사였기 때문에 회사 자체에 대한 적응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팀장님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A를 해오라고 해서 가져가면 B를 지적하고, B를 다시 고쳐가면 이미 괜찮다고 한 A를 다시 말하는 느낌이었다.


"너 토익 900은 넘냐?"


라면서 반말로 영어 실력을 뭐라고 하기도 했다.


한 번은 다른 동료 팀원, 그리고 팀장님과 셋이 점심을 먹으러 간 적이 있다.


다른 동료 역시도 나와 같은 신입사원이었는데 무언가 굉장히 친근하게 대했다.


하지만 같은 말을 해도 나에게는 너무나도 못 되게 군다는 느낌이 들었다.


혹독하게 일을 시켜도 배울 것이 많다면 잘 따르겠지만, 뭔가 그냥 괴롭히는 느낌이 든다는 생각이 들고 특별히 배울 것도 없다고 느껴졌다.


인턴 때 다른 팀장님과 일을 할 때는 배우는 것도 많고 일하는 것이 즐거웠는데, 정식 입사 후 만난 팀장님과는 왜 유독 힘들었을까?


같은 슬라이드를 다른 팀의 팀장님은 보시고 칭찬하시고 더 좋은 의견을 주셨는데 유독 왜 우리 팀장님은 내게 도움이 되는 조언도 안 해주고 그냥 트집만 잡는다고 느껴질까?


내 동기 신입사원에게는 살갑게 대하면서 왜 나한테만 이럴까?


특별히 살면서 어느 조직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너무 괴로웠다.


그날도 저녁 늦게까지 야근을 했다.


팀장님이 시킨 PT발표자료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세 차례 정도, 팀장님과 봤던 PT자료를 최종적으로 완성이 되었다고 생각되어 팀장님한테 슬라이드를 보여줬다.


하지만 팀장님은


"야 내가 얘기한 게 이거야?"


하고 시작하면서 명확하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지시를 이것저것 내리고, 지시 사항을 바꾸고 내가 만든 슬라이드 문구 하나하나를 꼬투리를 잡았다.


나는 속으로 '와 진짜 너무하네'하고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한 숨을 푹 쉬었다.


평소에는 묵묵히 들으며 '네, 네'하고 대답하던 내가 평소와 다르게 한 숨을 쉬자 흠칫 놀랐던지 좀 부드러운 톤으로,


"야 내가 널 싫어해서 그런 게 아니잖아. 일을 더 잘해보자고 하는 거지."


순간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아, 저를 싫어하셔서 그러시는 게 맞는 것 같은데요? 팀장님 솔직히 저 싫어하시잖아요."


하고 정색하며 말했다.


팀장님은 움찔하더니,


"아니야 인마, 내가 너를 왜 싫어해. 나도 신입사원 때 너처럼 많이 헤맸어. 선배들한테 많이 혼나기도 하고. 너 보면 나 신입 때 생각나서 더 가르쳐주려고 그런 거야."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냥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서 팀장님은 나를 대할 때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잘해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괴롭힌다는 느낌은 줄어들었던 것 같았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마치 감정을 표현하거나 나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내가 너무 힘들고, 너무 힘들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가 된다면 솔직하게 본인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프로답지 않게 감정 표현을 울거나 화내거나 하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본인의 감정을 상대방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할 때는 돌려 말할 필요도 없이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팀장님을 보면서 내가 나중에 팀장이 되면 나는 절대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것 다섯 가지 원칙을 세웠다.


1) 절대로 반말하지 말자. 아무리 나보다 나이가 어리고 친해져도 반말은 하지 말자. 말이 편하면 태도가 편해지고, 그러다 보면 의도하지 않게 감정을 상하게 할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도 나는 절대 회사 동료나 후배들에게 반말을 하지 않는다. 존댓말을 쓴다고 친해질 수 없다는 것은 핑계라고 생각한다.


2) 지시사항은 명확하게 이야기하자. 단순히 어떤 일을 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업무를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도 이야기를 해주자는 점이다. 만약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솔직하게 모른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론 '왜'해야 하는지 나 스스로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 절대 업무 지시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3) 무시하지 말자. 사람마다 능력도 다르고, 장단점이 다른데 단순히 단점만 보고 무시하는 말을 하는 것은 사람이 발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꺾어버리는 것 같다.


4) 의견을 물어보자. 내가 이야기하는 내용이 이해가 가는지, 납득이 되는지, 더 좋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지 않으면 대답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물어보다 보면 물어보지 않아도 대답을 하게 되고, 나를 들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서 의견을 준다. 실제로 나보다도 더 좋은 의견들을 많이 내기도 한다.


5)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자. 회사에서 돈을 받고, 나의 팀원이니까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니다. 작은 업무라도 완료하면 고마움을 표시하고, 나의 상사와 다른 팀에도 그 사람의 성과를 축하하고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팀장님은 곧 다른 팀으로 떠났고, 3년 뒤 다시 나의 팀장님으로 오게 되었다. 3년간 내공과 실력을 쌓은 내게 그 팀장님은 역으로 나의 경험과 능력을 필요로 했다.


나도 명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질문하고 명확한 답을 구하고 일을 하였다.  이상은 실력으로 뭐라고 내게 뭐라고   없을 정도가 되었고, 고맙게도 팀장님은 나를 팀에  필요한 사람으로 생각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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