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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Aug 31. 2022

홍콩 프로젝트, 불편함을 피하지 않는 불편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홍콩의 시장에서 ‘일반 소매점 채널에서 우리 회사 제품 매출을 높여라’는 주제로 프로젝트를 경험한 적이 있다.


외국계 기업의 한국 지사에서 인턴 생활부터 시작해서, 한국 시장에서만 일을 해왔던 내게 갑자기 주어졌던 절호의 기회였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보다는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처음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던 것 같다.


낯선 홍콩 시장에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홍콩 시장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과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일반 소매점의 매출을 분석하고, 실제 매장을 방문하고 소비자들을 관찰하면서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홍콩 프로젝트에 가게 된 것부터 초반의 이야기는 홍콩과 중국을 오가는 보따리 상인들 (brunch.co.kr)를 참조해주세요.)


홍콩 시장의 일반 소매점에서 우리 회사 매출 손실에 대한 가장 큰 문제점은 ‘손님이 있어도 물건이 없다’는 점이었다.


홍콩 시장에서 80% 이상의 매출을 차지하는 ‘중국 본토의 보따리 상인들’, 결국 본토의 소비자들의 선호하는 물건을 '대리구매'만 하는 사람들이 어서, 중국 본토 사람들이 당장 우리 회사의 제품을 원하고 구매하도록 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당장 우리 제품을 원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당장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손님은 넘쳐나는 매장에서 물건이 없어서 못 판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그렇다고 제품이 정말 너무 잘 나가서 생산량이 못 따라가는 상황이라면 그나마도 그러려니 하겠지만, 회사의 창고와 대리점의 창고의 재고는 넉넉하다 못해 과다재고 상태였다.


정말 속이 터지는 일이다.


실제 홍콩의 매장에서 뻥뻥 뚫려있는 진열 매대 (퇴사한 회사의 정보를 노출할 수는 없어서 다른 회사 제품의 매대가 비어있는 사진을 골랐다) 


실제로 창고에서는 재고가 너무 많아서 과다 재고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재고가 많다 보니 거래처에서는 새로운 물건을 입고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이런 와중에 매장에서는 물건이 없어서 못 판다면? 물건이 없어서 구매를 못하는 소비자들은 결국에는 경쟁사의 제품으로 대체하고 되고, 물건이 원활하게 공급이 되는 상황에서도 결국 제품 판매는 이루어지지 않게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문제는 명확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창고의 재고를 신속하게 매장으로 제때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왜 이 부분에서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걸까?


이 문제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대리점과 일반 소매점 채널을 담당하는 책임자와 실무자들과 함께 매장 방문도 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대화하는 실무자들은 마치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치부하고 있는 점이 나를 너무 화나게 했다.


물류 배송 스케줄 때문에 어쩔 수 없어.’


배송 스케줄을 조정하려면 차량을 더 섭외해야 하는데 그러면 비용이 들잖아.’


아무리 장사가 잘된다고 해도 1주일에 두 번 배송을 할 수는 없어. 창고 자리 없다고 한 번에 많이 받는 것도 원하지 않는걸?’


실무자 입장에서는 기존의 문제들에 대한 개선책보다는 ‘네가 몰라서 그래’, '해봤자 안 돼'라는 식의 태도였다.


나의 제안은 간단했다. ‘영업사원의 매장 방문 스케줄과 물류 배송 스케줄을 최적화시키자’.

- 영업사원이 방문해서 발주를 하면 바로 다음날 배송을 할 수 있게 하자.

- 장사가 잘되는 매장은 1주일에 1번이 아니라 2번 방문해서 제품 입고 횟수를 늘리자

- 장사가 안 되는 매장은 굳이 1주일에 1번이 아니라 방문 주기와 배송 주기를 늘려서 장사가 잘되는 매장 방문 횟수를 늘리자


예상대로 담당자들은 ‘장사가 안 되는 매장도 자주 가서 관계를 쌓아야 한다’는 둥, ‘물류 시스템을 바꾸는 데는 대리점의 동의와 노력이 필요한데 비협조적일 것’이라는 둥 반발을 했다.


나는 당연히 일부 지역에만 테스트로 이러한 해결책을 테스트해보자고 제안했다. 테스트를 하다 보면 당연히 내가 몰랐던 문제들도 있을 것이며, 효과가 확실할 때야 비로소 담당자들도 이 해결책의 효과를 믿고 실행할 수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테스트를 하기 위해서는 제품을 배송하는 대리점과의 협력이 필요했다.


담당자에게 듣기로는 이 대리점이 변화를 원하지 않고 굉장히 비협조적이며, 우리 회사와 40년 가까이 거래를 했기 때문에 우리 회사가 본인들에게 냉정하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리점 대표 (창업자의 아들)와 우리 회사의 홍콩 대표와 함께 미팅을 했다. 대리점 대표는 해외에서 유학을 하고 온 깨어있는 사람이었으며, 미팅을 통해 본인들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위해 노력을 하고 투자하고 있는지를 피력했다. 더군다나 아버지로부터 이어온 사업을 현대 시대에 맞게 변화시키기 위해 애쓰는 후대 경영자의 모습은 매우 인상 깊었다. 솔직히 우리 회사의 담당자에게 사전에 들은 것과는 너무 달라서 놀라울 정도였다. 사실 지금껏 영업을 하면서 다양한 거래처를 만나왔고, 대부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면 누구나 항상 본인들은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하지만 나 역시도 많은 거래처들을 만나봤기에 정말 진정성 있는 이야기인지 아닌지도 판단할 정도는 된다. 그리고 이 거래처는 정말 노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개선적인 방향으로의 협력은 쉽지 않았다. 거래처와 자세한 내용들을 정리하면서 산재되어있던 묵은 문제들이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묵은 문제들은 그냥 유야무야 넘어가기에는 회사의 관리 규정상의 예외로 진행된 것들이 너무 많았고, 예외로 인정하기에는 타당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생각됐다. 이러한 묵은 문제들을 사실상 유발하고 묵인했던 담당자는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거래처와의 협력 이전에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었다. 이후의 진행 경과를 끝까지 보지 못한 채 나는 이후 홍콩을 떠나게 되어었지만, 내가 시장에서 발견한 운영상의 문제점들로 인해 심도 있게 파악하면서 이렇게 산재된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해결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명확한 문제를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누구나 아는 힘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보통 회사를 다니면서 ‘저기에는 문제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직접 뚜껑을 열어보고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은 많이 없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나의 회사 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며, 문제가 터지더라도 굳이 내가 연루되어 나까지 ‘불똥이 튀기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도 그런 것들이 불편했다.

하지만 내가 책임지고 진행하는 프로젝트이기에 문제점을 파악하고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담당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기도 했었지만 내가 그런다고 수면 위로 문제가 불거진 상황에서 그들을 보호할 수도 없었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실행하는데 나의 태도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불편했지만 과감하게 이야기하고, 결국에 불편한 것을 마주한 결과 많은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회사를 떠나게 된 담당자가 왠지 나 때문에 회사를 떠나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꽤 오랫동안 감정적인 괴로움에 휩싸여 있었다. 꽤 오랫동안 그 친구와 연락을 하면서 이야기를 했고, 그 친구도 그 당시 너무 힘들어서 원망스러운 사람 중에 내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그 상황에 대해서 본인도 문제를 문제라고 제기하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의 노력을 하지 않았기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고 커졌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도 그 친구는 지금 홍콩의 다른 회사에서 자리 잡고 본인의 커리어를 잘 이어가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가 엄청나게 뛰어난 사람이라서 문제를 발견하고 엄청나게 창의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복잡해 보이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중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했다. 물론 그 해결책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안된다고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회사에서 안된다는 핑계보다는 문제 해결의 중요성에 공감하여 실행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회사를 다니면서 이런 불편한 상황과 종종 맞닥뜨리게 된다.

그냥 적당히 넘어갈 것인지, 불편하지만 한번 문제점을 제시하고 올바른 방향을 이야기할 것인지.


하지만 - 굉장히 흔한 말이지만- 결국 그렇게 될 일은 그렇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를 발견한 즉시, 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 모두를 위해서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한 문제 제기의 방식이 상대방을 공격하는 형태로 되는 것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회사가 목표하는 궁극적인 가치와 연결할 때 비로소 모두가 한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말은 이렇게 해도, 정말 쉽지 않았다. 쉽지 않았지만 정말 중요한 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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