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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Aug 31. 2022

내일부터 스타트업으로 출근합니다

12년 전 나의 결정이 바꾼 나의 현재와 미래

나는 2010년 여름, 대학교 4학년 때 외국계 기업에서 인턴생활을 시작으로 2022년 7월까지 외국계 기업에서 일을 해왔다.


학점 4.3 만점에 2.97, 4.5로 환산해야 3점이 간신히 넘는 학점으로 당시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외국계 기업에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취업을 했다.


학점이 낮은 내게 취업이 잘 된 무기는 단 한 가지다. 바로 남들과는 다른 '경험'을 학창 시절 동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학교 1학년부터 동아리 활동이나 각종 아르바이트, 대외 활동들을 열심히 해왔다. 사실 그때그때 재미있어 보이지만 좀 더 어려운 일들에 도전하며, 계속 나 자신을 새로운 환경에서 힘겹게 적응할 수 있도록 내몰며 살아왔다. 사실 그런 경험들을 위해 학과 공부를 조금 소홀히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만 할 수 있었던 경험들을 했기에 대학생활에 크게 후회는 없다.


그러한 대외활동에서 정점을 찍었던 것이 군 복무를 대체복무로 'KOICA 한국 국제협력단'에서 국제협력요원으로 근무를 한 것이다. 현재는 이 제도가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각종 분야에서 해외의 개발도상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의 인원을 선발하여 해외에 파견을 내보내는 것이다. 이 협력요원에 선발되기 위해 1년 정도를 열심히 준비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 파견이 되었다.


30개월 동안 한국인이 거의 없는 인도네시아의 지방 도시에서 지내고 오다 보니, 나의 현지 문화 이해력과 인도네시아어 수준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 되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고 학교 생활을 하면서도 인도네시아어를 통역하거나 번역하면서 학생 신분으로는 벌기 힘든 정도의 돈을 많이 벌었다.


실제로 통역을 하다 보면 엄청난 거래 규모의 협상을 하는 경우에 내가 통역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 번은 1주일 동안 인도네시아의 최고급 호텔에서 20명이 넘는 인도네시아 무연탄 공급업자들을 대면하며 한국 회사의 구매담당자의 협상을 도운 적도 있다. 인도네시아어가 희귀 언어이기 때문에 사실 그런 업무만 한다고 해도 한 달에 한 학기 등록금은 충분히 벌 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통역으로 도움을 주었던 작은 회사에서는 계속해서 담당 직원으로 나를 고용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 그 모든 요구들을 뿌리치고 대기업에 가서 제대로 된 비즈니스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즈니스 협상에 대한 통역을 하다 보면 양측 모두의 입장을 듣고 이야기를 하는데, 실제로 내 생각에는 비즈니스 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내용들에 대해서도 앵무새처럼 그 이야기를 떠들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초라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그런 비즈니스 협상 테이블에서 통역을 하는 사람이 아닌, 통역사를 고용해서 협상을 하고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하던 일들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추가적인 업무는 일절 받지 않은 채로 취업 준비에 돌입했다. 이왕이면 기본기를 탄탄히 다지고 배울 수 있는 오랜 전통이 있는 회사에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기업 중에서도 해외 경험을 쌓아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글로벌 회사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인도네시아 문화에 대한 이해력이나 인도네시아 언어적인 능력은 전혀 발휘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정규직 전환 기회가 있는 인턴십 기회를 두 군데 회사에서 얻을 수 있었다. 한 곳은 국내의 에너지회사 해외영업부, 그리고 한 곳은 미국계 생활용품 회사의 국내영업부였다. 결국 나는 미국계 생활용품 회사의 국내 영업으로 지원하여 이후의 커리어를 쌓았다. 에너지 회사의 해외영업부에 인도네시아 말을 하는 신입이 들어오면 얼씨구나 인도네시아로 파견을 나갈 것 같았고 (너무나도 좋은 커리어중 하나지만), 나는 또다시 벌어놓은 언어적 능력으로만 먹고살지 않을까 하는 치기 어린 생각 때문이었다.


사실  당시 나는 영어가 그렇게 까지 편한 사람은 아니었다. 외국계 기업에 취업할 정도로는 했지만, 외국계 기업에는 워낙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과 일을 하다 보면 나도  사람들처럼 일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지금은 회사를 다니며 영어 공부도 꾸준히 하여 영어로 업무하는데 어려움은 없어졌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렇게 12년을 다니면서 외국계 기업에서 다양한 부서 경험과 해외 지사 경험까지, 스스로 처음 회사 생활을 하면서 해보고 싶은 경험들은 거의 다 (안해도 되는 경험까지도) 해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회사 생활을 요약하자면 처음에는 영업사원으로 현장에서 실전에서 맷집을 키우고, 실제 그런 영업 활동을 기획하는 역할을 하며, 회사 전반의 영업 성과 지표를 관리하는 역할도 했다. 영업 조직의 조직 개편과 운영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운영하는 역할도 하며, 비슷한 프로젝트를 생산 현장이 있는 공장에서도 경험했다. 한국에서 배운 개념을 해외 시장에서 적용하여 성과를 내기도 하고, 해외에서 배운 개념을 한국 조직에서 적용하여 조직의 변화에 기여를  경험도 값진 경험이었다. 이렇듯 12간 나의 회사 생활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전략 기획'이다.


그리고 나는 내일부터 스타트업으로 ‘전략기획’을 하러 출근한다.


스타트업에서 일을 해보기로 결정하고 도전한 이유는 하나다. 또다시 나를 새로운 환경으로 내몰아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함이다. 나처럼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매일 치열하게 일을 한다면 서로에게 배우며 더욱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내가 다닐 회사는 의료기기를 제조하는 회사로, 창립 당시부터 약간의 투자를 하고 회사 이름을 함께 짓는 정도로 애정을 갖고 친구들과 함께 만든 회사다. 가정이 있는 나는 그 시점부터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회사를 키워낸 친구들과 동료들 덕분에 감사하게도 내가 가정에 책임을 다하며 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가 되었다.


올해 하반기와 내년에는 해외의 기업들과도 많은 협상과 대화를 해야 한다. 그때는 협상 테이블에서 내가 판단하고, 내가 협상 테이블의 주체가 되어 협상을 이끌어 갈 예정이다. 영어나 인도네시아어로 협상을 한다면 굳이 통역은 필요 없을 것 같다.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도전, 오랜만에 내일 출근이 기대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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