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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Aug 29. 2022

홍콩과 중국을 오가는 보따리 상인들

갑자기 가게 된 홍콩에서의 프로젝트. 두 개의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는데 그중 첫 번째는 '홍콩에 있는 900개의 일반 소매점에서 판매되는 우리 회사의 제품 매출을 개선하기'였다.


나는 1차적으로 900개 소매점의 최근 2년간 월별 매출 데이터를 분석했고, 다른 자료들을 종합하여 데이터 분석자료와 함께 홍콩 시장에 대한 몇 가지 인사이트를 얻었다. 


그리고 지금, 상위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점들이 있는 홍콩과 중국의 접경지대, '쉥슈이(Sheung Shui)'에 왔다. 과연 이곳의 소비자들은 어떤 식으로 물품을 구매하는지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보통 이런 식으로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을 보면 데이터에서 의문을 가졌던 부분들에 대해 그 원인을 파악하는 힌트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구매 패턴을 알기 위해서 나는 '미스터리 쇼퍼 (Mystery Shopper)'를 해보기로 했다. 보통 리테일 업계에서 '미스터리 쇼퍼'란 손님을 가장하고 매장에서 물품을 구매하면서 매장의 물품 진열 상태, 광고 홍보물의 설치 상태, 가격, 판매 직원의 소비자 응대 능력 등을 파악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회사의 직원으로서 방문하지만, 회사 직원이 아닌 소비자로서만 행동을 한다.


이곳 쉥슈이의 소비자들은 대부분 한눈에 봐도 '보따리 상인'들이었다. 캐리어에 가득 물건을 싣고 중국 국경을 넘어 본토에서 물건들을 판매하는 목적으로 보였다. 당연히 나는 보따리 상인 역할을 할 수는 없으니, 방법을 생각했다. 바로 몇몇 실제 보따리 상인들을 내 마음속으로 아바타 삼아서 어떻게 구매를 하는지 관찰하는 것이었다.


먼저 쉥슈이 역에서 딱 봐도 보따리 상인처럼 보이는 무리를 따라서 움직였다. 사실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캐리어를 들고 같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가서 어느 골목으로 들어서자 내가 따라온 캐리어 무리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미 쇼핑을 하고 있었다.


쉥슈이의 대형 소매점. 이름은 '약방'이라고 되어있지만 사실상 생활용품 대부분과 식품까지도 판매를 하고 있다.


매장으로 들어서자 캐리어를 들고 온 사람들은 구매를 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온 물품 리스트를 꺼내 들었다. 핸드폰으로 적어온 사람들도 있지만 직접 종이에 적어온 사람들도 많았다. 한자로 쓰여있어서 어떤 제품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충 한자 몇 글자 옆에 숫자가 쓰여있는 것을 보니 구매 수량까지 적어놓은 것 같다. 그런 리스트들을 그냥 매장 직원한테 주고 찾아달라는 것이 아니라, 리스트를 들고 매장 이곳저곳을 다니며 개별 물품의 가격이 얼마인지 비교를 했다. 이 매장에서 취급하지 않는 제품은 옆에 매장을 가보고, 가격을 비교하고, 가격이 맞는다면 주저 없이 원하는 수량만큼을 구매했다. 하지만 종종 물품 재고가 없는 경우도 있었는데 재고가 없을 경우에는 비슷한 제품으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우선순위의 물품을 구매하는 것 같았다. 


당연히 나의 경우에는 우리 회사의 제품과 경쟁사의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구매 과정을 주로 보았다. 내가 가보려고 마음먹었던 10개 매장을 포함하여 주위에 20개 매장을 추가로 보니, 소비자의 구매 패턴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이해한 점들은 언어의 한계나 내가 매장을 방문한 당일 해당 매장의 특수한 경우가 있을 수 있으므로 공통적인 사항들 위주로 보고, 궁금한 점들은 별도로 정리했다.


내가 이해한 소비자들의 구매패턴은 몇 가지로 압축이 되었다. 당연히 담당하는 팀과 해당 문제에 대한 사실 여부 판단 (Validation)이 필요할 것이며, 그 원인은 추가로 이해해야겠지만 그전에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사항들을 소비자의 물품 구매 단계에 맞추어 정리했다. 


1. 매장 방문 전 단계: 우리 회사 제품의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실제 매장을 방문하는 구매자가 아닌, 실제 중국 본토에서 물건을 구매하여 소비하는 소비자에 의해 결정이 됨. 목적구매이기 때문에 매장에서 구매하는 물품을 변경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쉽지 않음.


2. 제품 입점 상태: 원하는 제품 구매 리스트에 우리 회사 제품이 있을 때, 제품의 재고가 있는 것이 중요함. 원하는 제품은 대부분 향/ 사이즈까지 결정되어 있으므로 원하는 향이 없을 경우 다른 향을 선택하지 않는 경우도 많음. 사이즈가 다른 경우에는 다른 사이즈로 구매하는 경우도 있음. 매장 안에서 충분한 재고를 진열하고 안전 재고를 보유하는 것이 중요. 하지만 우리 회사 제품 매대가 비어있어 구매를 포기하는 소비자들을 많이 보았음. 여러 점포에서 공통적으로 재고가 없는 것에 대한 원인 파악 필요. 


3. 제품 진열 상태: 우리 회사의 주력 제품들은 보통 전용 매대나 좋은 위치가 확보되어 있어 진열 상태에 대한 문제는 없어 보임. 인기 제품과 비인기 제품의 매대 진열 비중에 대한 차이를 두어야 할 것 같음. 비인기 제품은 과감하게 퇴점을 하고 인기 제품의 진열을 확대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고려해볼 만 함.


4. 제품 판매 가격: 판매 가격은 대체적으로 매장 별로 큰 차이 없이 유지가 되고 있음. 



결국 가장 큰 문제는 소비자가 제품이 매장에 제대로 공급이 되고 진열되어 있는 것이 최우선 순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매장마다 텅텅 빈 매대들을 보니 도대체 어떤 문제 때문에 이런 매출 공백이 있는지를 파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글은 저의 해외 프로젝트 경험에 대한 시리즈의 글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 현실성 있고 생동감 있는 이야기를 이어갈 예정이며, 홍콩 생활이 궁금하신 분, 해외 프로젝트, 트레이드 마케팅, 영업 전략 기획에 관심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되고자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모쪼록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나눕니다.


1화: 갑자기 홍콩에 프로젝트를 가라고요? (brunch.co.kr)

2화: 여보, 우리 홍콩 가서 살까? (brunch.co.kr)

3화: 그렇게, 홍콩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brunch.co.kr)

4화: 처음 가본 홍콩에서 매출 분석이라니 (brunch.co.kr)

5화: 홍콩과 중국의 접경지대, 나는 미스터리 쇼퍼가 되었다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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