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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Aug 24. 2022

그렇게, 홍콩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홍콩에 한 달짜리 프로젝트를 다녀오면 어떻겠냐는 회사 상무님의 제안에, 주말 동안 아내와 의논을 하고 결정을 했다. 회사를 다니며 아내와 4개월째 운영하던 프랜차이즈 세탁소를 접을 각오까지 하면서 말이다. 한 달짜리 프로젝트가 더 길어질 수도 있고, 왠지 이 프로젝트 이후에도 홍콩이나 다른 국가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나이 서른셋, 그래 도전해보자!' 하는 생각이었다.


결정을 한 나는 상무님께 찾아가 말씀을 드렸다.


"상무님, 저 홍콩 가겠습니다."


상무님은 잘했다는 듯이 미소를 띠며,


"그래. 알겠어. 제수씨랑 다 얘기한 거지?"


"네 상무님. 뭐 좋은 기회일 것 같아서요."


"오케이 빨리 얘기해줘서 고마워. 내가 그럼 홍콩 쪽이랑 얘기해보고 또 알려줄게. 아마 한번 같이 콜 하자고 할 거야."


"네 감사합니다 상무님!"


"감사하긴 뭘. 능력 있는 사람이 가는 거지."


"아닙니다 상무님. 그럼 말씀 기다리겠습니다."


상무님 방을 나와서 곰곰이 생각을 했다. 나는 두 번의 이직을 거쳐 이 회사는 내게 세 번째 직장이었고, 이번 회사는 입사하자마자 공교롭게도 이런저런 해외 프로젝트에 한국 담당자로 참여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아시아 본사나 인도, 영국의 실무자들과도 원격으로 업무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면서 본사 관점에서 하나의 마켓을 볼 때 어떠한 관점에서 봐야 하는지, 어떠한 기준으로 평가를 하고 개선점을 찾는지에 대한 어느 정도 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많은 생각들을 했다.


'과연 어떤 프로젝트를 하게 될까? 내가 과연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홍콩의 마켓을 잘 이해하고 좋은 제안을 할 수 있을까?'


월요일 오전에 출근하자마자 상무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오후 4시쯤 바로 콜이 잡혔다. 홍콩의 대표와의 1:1 콜이었다. 홍콩의 대표는 중국계 일본인 여자분으로, 전에 만난 적은 없지만 내가 처음으로 근무했던 회사의 일본 지사에서 마케팅 부서에서 일을 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 회사가 워낙 신입 교육을 철저하게 시키기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왠지 묘한 동질감과 믿음이 생겼다.


지금처럼 화상 회의가 활발하지 않은 시점이라 콜은 비디오 없이 전화로만 이루어졌고, 나는 작은 회의실에서 혼자 콜에 들어갔다. (회의는 영어로 진행되었으며, 편의상 평어체로 구성했다. 중간중간 한국어로 번역이 어색하다고 느낀 부분은 원래 내가 썼던 영어 단어들을 넣었다)


콜에 들어가자마자 스피커폰을 통해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 Nice to e-meet you! (직접 만난 것은 아니라서 e-를 붙여서 인사를 했다) 나는 OO이야. 홍콩 마켓을 담당하고 있어."


한 번에 들어도 뭔가 힘이 넘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다. 목소리와 말투만으로도 쉽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 Nice to e-meet you too. 나는 CS라고 해. 현재는 영업 기획 (Sales Planning) 업무를 하고 있어"


"대략적인 내용은 들었을 것 같은데, 일단 오늘 내가 너랑 전화를 하자고 한 목적은 (Objective) 우리가 어떠한 상황인지 대략적으로 알려주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그리고 네가 생각하기에 네가 그러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인지 알아보고 함께 할 수 있을지 논의를 해보기 위해서야."


역시 그 회사 출신이 맞다고 느꼈다. 전화를 시작하자마자 '목적(Objective)'를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 회사에 들어가면 처음 배우는 것이 미팅 시작 전이나 이메일, 모든 업무상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목적을 명확히 알리고 시작하라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나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을 만난 기분이었다.


"명확해 (Clear)"


하고 내가 짧게 대답하자, 홍콩 대표는 말을 이어갔다.


"응. 먼저 우리 쪽 상황을 설명하기 전에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랑 이전에 하고 있던 업무를 대략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적합한 경험이 있는지를 먼저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예상했던 질문이라 준비한 내용들을 대답했다.


"지금은 영업 기획 (Sales Planning)을 담당하면서 한국 지사의 영업 관련된 성과 지표, 예를 들자면 채널 별 매출 목표 관리랑 예산 관리 등을 하고 있어. 관리라 함은 매출과 예산의 목표치를 세팅하고 각 팀에게 공유하고 각 팀에서 예상하는 매출과 예산 지출 계획 등을 취합해서 상품 공급 (Supply Chain) 팀과 재무 (Finance) 팀과 논의해서 매니지먼트팀에 보고하고 설명하는 역할을 주로 하고 있어. 요약하자면 (To make long to short라는 표현을 썼던 것 같다), 회사 전반의 매출과 성과 지표를 영업부서 측면에서 큰 그림과 작은 그림을 관리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 부서들과 영업부서를 대표해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조율하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지. 그 전에는 다른 회사에서 직접 영업도 했었고, 영업 전략도 짰고, 거래처랑 거래 계약 네고 등 영업부서에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본 것 같네."


대답을 마치고 기다리자,


"와우, 그쪽 상무가 왜 널 추천했는지 알겠다. 지금 나한테 딱 필요한 사람이네."


하면서 이제 본인의 상황을 이야기해도 되겠다는 듯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알겠지만 마케팅 쪽의 경험을 갖고 홍콩의 대표를 맡은 지 이제 한 두 달 밖에 안됐어. 그런데 와서 보니까 회사가 돌아가고는 있는데, 뭔가 개선해야 할 점들이 있을 것 같아. 그런데 내가 세일즈 쪽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까, 세일즈와 관련해서 부서 간에 어떤 식의 정보교환과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좋은지, 과연 그러한 구조를 통해서 성과 지표들이 적절하게 관리가 되고 있는지를 보고 구체적인 개선책을 제안해줄 사람이 필요해. 그리고 그중에서도 현재 홍콩 시장에서 매출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일반 소매점 (General Trade)' 채널에서 운영상의 개선점이 많을 것 같은데, 그 부분도 같이 볼 수 있었으면 해. 그 부분도 같이 볼 수 있을까?"


듣고 보니 프로젝트가 두 개의 주제였다. 일반 소매점의 개선은 공교롭게도 내가 첫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 프로젝트로 했던 주제였다.


"사실 굉장히 비슷한 프로젝트를 몇 년 전에 한국에서 내가 한적 있었어. 그때 그 회사 영업 전무님이 일본인이었는데 아마 너도 알걸? OOO 씨라고. 그 전무님이 시켜서 했던 프로젝트였는데 엄청 고생했었지. 결과적으로는 제안한 내용이 반영이 되었고, 만약 새로운 마켓에서 한다면 대략적으로 어떤 기준으로 뭘 봐야 할지는 알 것 같아."


본인도 아는 이름이 나오자 반가워하며 좀 더 믿음을 가지는 눈치였다.


"잘됐네! 우리도 여기 담당자들도 있고 나도 있으니까 네가 혼자 프로젝트를 한다는 부담은 안 가져도 돼. 우리가 많이 도와주면 충분히 프로젝트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프로젝트 기간은 한 달인데 가족들은 괜찮겠어?"


"고마워. 응 안 그래도 주말 동안 아내랑 얘기했고 다행히 지지하고 있어 (Supportive). 그동안 딸 둘을 혼자 보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내 커리어상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해서 논의하고 결정해서 얘기한 거야."


나는 은근슬쩍 나의 개인적인 상황도 말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아내와 두 딸이 있는 것을 이야기했다.


"아 그렇구나! 정말 감사한 일이네. 너무 잘 됐다. 그럼 내가 인사부랑 이야기해서 네가 우리 쪽에 와서 일을 하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할지, 그리고 어떤 지원을 해줄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안들을 논의해보고 인사부 통해서 알려줄게. 대답은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또 나한테 궁금한 사항 있어?"


"일단 궁금한 건 많지만 당장 가는 것 관련해서는 인사부에서 얘기하는 걸 들어보고 그쪽이랑 얘기할게. 그런데 대략 언제부터 내가 가면 좋을지에 대한 계획은 있어?"


"아 내가 그걸 얘기 안 했구나, 다다음주 월요일부터 오면 베스트일 것 같은데 그건 아무래도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진행되는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에 달렸겠지? 모든 상황이 괜찮다면 (Ideally), 다다음주 월요일부터 4주간! 괜찮을까?"


"괜찮을 것 같아! 내가 홍콩 가는데 특별한 결격사유는 없을 것 같아서. 그럼 인사부랑 얘기해보고 갈 수 있는 날짜 등 확정해서 다시 한번 공유할게."


"좋아! 그럼 우리가 오늘 콜에서 하려고 했던 논의는 다 마친 것 같고, 당장 해야 할 다음 일 (Next step)도 정리가 된 것 같네.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 남은 하루 즐겁게 보내!"


역시 그 회사 출신답게 미팅의 마지막에 우리의 미팅 목적 (Objective)가 달성되었는지 확인하고 해야 할 다음 일 (Next step)이 합의(Align)되었는지 확인하고 마무리를 하는 것을 보고 내가 다녔던 첫 번째 회사가 얼마나 대단한 회사인가 새삼 느꼈다.


"그래! 오늘 시간 내줘서 고마워!"


"나야 말로! 오늘 시간 내줘서 고마워!"


면접 아닌 면접은 이렇게 끝이 났고,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긍정적으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다음 날, 인사부를 통해 이런저런 내용들을 받았다. 하루 체제비라던가 항공료, 숙박료 등에 대한 안내 사항이었다. 이 회사가 이렇게 업무 처리가 빨랐나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이 글은 저의 해외 프로젝트 경험에 대한 시리즈의 글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 현실성 있고 생동감 있는 이야기를 이어갈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화: 갑자기 홍콩에 프로젝트를 가라고요? (brunch.co.kr)

2화: 여보, 우리 홍콩 가서 살까?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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