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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Dec 09. 2019

혼자가도 좋다고? 일단 내년 표부터 구매 GOGO

내 영혼의 Holiday

다들 가는 발리. 같이 갈 사람도 없고, 가본 적도 없다.

가도 될까?


대답부터 하자면, 가도 된다. 오히려 혼자여서 더 멋진 발리.



하도 다들 발리 발리 하길래 좋다고 해서 도착한 발리 공항은 난장판이다. 온갖 담배 냄새에 무질서함에 후덥지근하고 사람들도 너무 많다.


'하아... 집에 가고 싶다'


일단 사람들이 다들 한다는 대로 유심칩도 사 끼우고 택시도 타고 꾸따 시내의 저렴한 가성비 숙소를 골랐다.


밤 12시에야 도착한 숙소는 에어컨도 시끄럽고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기도 좀 있고, 도마뱀도 기어 다닌다.


피곤한데 잠도 안 오고, 혼자 나가서 뭐 하나 싶다. 그래도 그냥 자기도 아깝고, 오는 길에 편의점이 있었는데 가서 맥주라도 한잔 해야겠다.



호텔이 있는 좁은 골목길에는 아직도 오토바이가 지나다닌다. 오토바이가 좌측인지 우측인지 모르겠다. 그냥 적당히 피한다. 편의점에 들어서자 직원은 굉장히 피곤한 얼굴이다. 나도 적당히 '헬로' 하고 던지고는 음료수 냉장고가 보이는 곳으로 간다.


발리에는 빈땅(BINTANG)맥주가 유명하다던데, 알아본 바로 빈땅은 '별'을 의미한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오랜 기간 식민 지배를 받아온 인도네시아는 그 시절에 전해진 네덜란드식 맥주 양조 기술을 토대로 빈땅 맥주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네덜란드 맥주라면 모두가 아는 하이네켄이 있다. 하이네켄의 초록색 캔에 빨간 별이 있는 것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빈땅 맥주 캔에도 빨간 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며, 그 별이 하이네켄의 별과 같은 별인지 아는 사람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뭐, 중요한 건 아니다. 빈땅맥주랑 현재 맥주 몇 개 집으려다가 옆에 'HATTEN'이라는 처음 보는 와인이 보인다. 발리에서 만든 와인? 호기심이 생긴다. 맛있을까? 냉장고에 시원하게 있는 화이트 와인이 맥주보다는 더 맛있을 거 같다. 맥주보다는 조금 센 술이 마시고 싶었는데, 발리 와인이라... 한 병 집어 들었다. 점원에게 와인 뚜껑을 돌리는 시늉을 했는데, 아 돌려서 뚜껑을 여는 와인이다. 컵은 호텔에 있는 컵으로 마시기로 생각하고 안주 꺼리를 골랐다.


유독 땅콩이 많이 보여 땅콩을 한 봉지 골라 집고 이십만 루피아 (단위가 적응이 안된다) 넘게 현금으로 계산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방 앞에 놓인 테이블 하나와 의자 두 개. 의자를 끌어와 앞으로 놓고 다리를 얹는다.


'발리 왔구나'


어디선가 흘러오는 은은한 향 태우는 냄새인지 모기향 냄새인지 마저도 이국적으로 느껴진다. 번잡했던 공항과 오토바이 다니던 좁은 골목과는 다른 고요한 평안함이 느껴진다. 밤은 까맣고, 별은 빛났다.


커피잔에 '하텐' 화이트 와인을 가득 따라 마신다.


와인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뭐라 맛을 표현하기 힘들지만, 가볍고 상큼하다. 얼마든지 마시고 싶은 맛이다. 그냥 한잔을 끝까지 비웠다. 딱히 안주로 사 온 땅콩도 필요 없을 정도로 뒷 맛이 깔끔하다.


큰일 났다. 술이 맛있다.


오기 전까지도 고민했던 이번 발리 행이었다. 멀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말도 안 통하고, 혼자 뭐 거기까지 가냐고 했다. 그냥 오고 싶었다. 남들 다 간다는 발리, 나도 오고 싶었다.


왜 고민했을까 싶다. 혼자 아무렇게나 앉아 커피잔에 대충 따라 와인을 벌컥 들이키자 문득 내가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에 잠이 깼다.


기어이 와인 한 병을 다 비워내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빳빳한 침대 시트에 발을 몇 번 비비다가 슬쩍 눈을 떴다.


발리다.


밤이라 몰랐는데 호텔 정원에는 예쁜 꽃들이 피어있었다. 곳곳에 바나나 잎으로 만든 상자에 꽃과 과자 향불이 피워져 있었다. 발리 힌두의 어떤 기도드리는 것 같다고 얼핏 어딘가에서 본 것 같다. 아.. 뭔가 이국적이다.


매일 아침마다 저런 정성으로 기도를 드리다니, 내 일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기도하고 그것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일상의 사치라고 느껴지는 삶을 살고 있다. 바쁘게 일어나 준비하고 좁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직장으로 나를 배송한다. 시간이 내 하루 일과를 마쳐줄 때가 되어서야 나는 또다시 지친 나 자신과 한 줌 남겨진 자유의 시간을 홀로 즐기려 한다. 그럼 한 줌들을 모아 떠나왔다.


아침을 먹기 위해 들어간 식당에서는 요거트 뮤즐리를 시켜먹었다. 그냥 다 맛있다. 나무 그릇에 담겨 나온 과일 가득한 뮤즐리에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혼자 왔다고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도 않고, 혼자 왔으니 나도 그들의 일상에 더 눈길을 준다. 타인의 일상을 보며 나의 일상을 비추고, 그들이 일상이 나에게는 이상이라 느꼈던 환상도 조금씩 흩어져 간다. 다만 나의 일상이 저들에게는 이상이던 환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디서든 한국에서 왔다면 엄지를 치켜세운다.


매일 같이 전 세계의 여행객들을 보지만 정작 자신은 이 곳에서만 머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일상에서의 탈출을 보며 자신의 일상을 지탱하며 살아간다. 한 달 꼬박 일해야 손에 쥘 돈을 아무렇지 않게 한 끼 식사에 쓰는 여행객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굳이 나도 힘들게 여행하면서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왠지 나도 모르게 감정이 이입된다.


발리에 혼자 오니 혼자 여행 온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기도 한다.


나는 특별히 무언가 보고 싶고 하고 싶어 떠나온 것은 아니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영화처럼 운명적인 깨달음이나 만남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나 자신을 찾고 싶었다. 나 자신을 마주하고 나 자신과 대화하며, 내 두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에 집중하고 싶었다. 어떤 방법으로 나를 찾아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막연히 이 곳에 오면 알게 될 것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금은 나 자신을 찾았다. 방법도 어렴풋이 깨달았다.


나와는 다르게 살아가는, 전혀 다른 일상을 살아가는 전혀 다른 사람들에 나 자신을 비추어 봤던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한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든 삶은 흘러간다.


꼭 발리여야 할까?


모르겠다. 나에게는 발리였다.


생각보다 엉망이지만, 생각해보면 또 그리 뭐가 엉망인가 싶고, 또 그리 뭘 그렇게 멀끔하게 정돈된 세상에서 살아야 할까.


유난히도 게으른 하루를 보낸 나 자신이 나무랄 것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그냥 사랑스러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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