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때 처음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맨 처음에는 집에서 태권도 사범 경험이 있는 아버지께 배웠다. 1년 정도 재미 삼아 배우다가 정식으로 태권도 체육관에 가서 배우게 되었다.
솔직히 정말 가기 싫었다.
태권도에 가면 어린 시절 소극적이었던 내 성격에는 맞지 않게 약간은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기술을 가르치고 운동을 시켰다. 기합이라는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발차기와 주먹치기는 운동의 일부였지만 뭔가 과격하게 느껴졌다.
체육관에 들어가면 국기에 대한 경례를 먼저 하고, 운동을 가르치는 사범님께 경례를 하며 하루의 수련을 시작했다.
그다음에는 체육관의 기술을 1번부터 10번까지 두 가지씩, 총 20가지를 복창했다. 정신적 부분과 육체적 부분의 수련에 필요한 이 구절들을 복창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 구절들 중 일부는 기억이 난다.
신라시대 화랑도에서 왔는지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르겠는 그 규율은, 처음 태권도를 시작한 그 순간부터 20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복창하게 되었다. 시선, 기합, 중심과 중심의 이동과 같은 신체적인 것부터 임전무퇴 같은 정신적인 것도 있었다.
오랜 기간 수련 동안 기계적으로 외웠던 그 구절들은 쉬운 기술부터 어려운 기술까지 몸에 익히고 실력을 쌓는데 실력 향상이 정체된다고 느끼는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체육관에서 수련에 대한 구절을 모두 복창하고 나면 준비운동을 했다.
준비운동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하나하나 관절을 풀어가고 근육을 풀어주며 본격적인 태권도 수련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영어로는 워밍업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몸을 데워주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준비운동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충 하고 그냥 운동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혹은 준비운동만 천천히 하다가 운동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가 40이 되어 아침에 동네 운동하는 곳에 갔더니, 나이가 많은 분들이 준비운동에 쓸 것 같은 운동기구에 몰두하여 열심히 수련하고 계신다. 누가 봐도 준비운동을 한다기보다는 훨씬 비장한 표정으로 정성껏 운동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 얼마 전부터 허리가 좋지 않아 이런저런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가벼운 스트레칭부터 시작하며 몸을 풀어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정성스레 내가 아픈 부분, 혹은 수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준비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효과는 좋았다. 밤새 찌뿌듯했던 몸이 부드럽게 풀리며 기분도 좋아졌다. 준비운동은 준비운동이지만 이제는 준비운동에도 집중해서 정성껏 해야 할 시기가 됐다고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일상 동안 우리는 회사에 가고, 학교에 가고, 집에서 일을 하며 준비운동으로 풀어낸 몸을 통해 또 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왜 어린 시절 그렇게 준비운동을 열심히 해야 했는지 이제는 그것을 알 것 같다.
태권도를 통해 배운 것들이 비단 운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규칙적이고 꾸준한 준비운동이 건강한 몸을 유지하게 해주는 것처럼, 일상 속에서도 꾸준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삶의 다양한 도전 앞에서도 그 준비운동의 중요성을 떠올리며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야겠다. 준비운동이 단순한 운동의 시작이 아닌, 삶의 모든 시작에 필요한 기본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