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
출장을 준비한다.
업무 특성상 꽤 많이 국내외 출장을 다녔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다.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출장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여러 번 준비해 봤지만, 이번에는 좀 더 이번 출장에서 내가 겪는 일상과 그 일상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서 기록해 보고자 시작했다.
오늘은 출장을 떠나가 2일 전.
어제 회사에서 출장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준비해서 집으로 가져오고, 오늘 하루는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면서 준비를 하겠노라고 이야기하고 왔다.
아무리 회사에서 마음 편히 다녀오라고 하지만, 출장을 통해 성과를 가져와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부담감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책임감과 안전하게 돌아오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정리해 본다.
보통 출장을 자주 가는 곳으로만 다녀왔지만, 작년부터는 태어나서 처음 가는 곳을 많이 가보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스마랑부터, 미국 시카고, 캘리포니아 LA, 와이오밍 잭슨홀, 텍사스의 샌 안토니오까지.
출장 가는 곳 한 곳 한 곳마다 구글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곳들만 다녀왔다.
이번 출장지는 미국 콜로라도의 덴버와 브라질 상파울루이다.
심지어 직항도 없는 곳들이라 시애틀 타코마 공항에서 환승을 해야 하고, 덴버에서 상파울루로 갈 때는 텍사스 휴스턴에서 환승을 해야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상파울루에서 카타르 도하로 와서 환승해서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그야말로 지구 한 바퀴다.
'미국 간 김에 브라질도 갔다 오지'라는 단순 무식한 발상으로 출장 계획을 잡은 것도 있었는데, 실제로는 '한국 간 김에 인도도 다녀오지' 수준의 무지함이었다.
출장이 2일 앞으로 다가오자 비즈니스 계획도 비즈니스 계획이지만, 출장지에서의 생존과 의식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시작했다.
숙소 근처에 식당은 어디에 있는지, 근처 한인마트나 식당은 어디에 있는지. 이상하게 놀러 갈 때는 별로 한국음식이 생각나지 않는데, 일하러 외국에 나가면 그렇게 한국 음식이 먹고 싶다.
옷은 어떻게 맞춰 입을지 (사실 어차피 가져갈 옷은 정해져있느면서), 휴대폰 날씨 어플에 내가 갈 도시를 추가해서 온도를 실시간으로 보았다.
한국보다 더울 거라고 생각했던 상파울루도 한국보다 덜 덥다. 최고기온은 비슷했지만 최저기온이 10도 정도 낮았다.
그래도 한국보다 덜 덥다니, 에어컨이 말썽을 부려 더위에 고생하는 가족들에게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다.
이왕이면 처음 가본 나라들에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지역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가자는 주의인데 (꼭 비즈니스 매너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흥미로워서), 브라질의 역사는 유럽의 대항해시대와 식민지배, 포르투갈 왕정의 천도 등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았지만 덴버의 역사는 생각보다는 단순한 느낌이 있었다.
지금껏 출장지에서 흥미롭다고 생각했던 역사를 보유한 곳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한국과 비슷한 식민지의 아픔을 딛고 성장한 나라들이었다. 나라들이 성장하는 데는 다양한 동력이 있으며 이방인으로서 알지 못하는 부작용도 있었을 테지만, 분명 배움이 있다.
비행기표 좌석 배정도 중요한 것 중 하나다.
이코노미를 타고 가는데, 돈을 내고라도 맨 앞자리를 선택하려고 했지만 이미 맨 앞자리는 만석이라 차선책인 뒤로 최대한 의자를 제칠 수 있는 뒷 좌석이 없는 좌석으로 선택을 했다. 물론 앞사람이 뒤로 젖히면 좀 짜증스럽기는 하지만, 그 사람도 힘들 테니 뭐 그냥저냥 차라리 낫지 않을까 싶다.
시애틀 타코마 공항은 환승 난이도가 매우 높은 공항이라고 한다. 짐을 찾고 입국 수속을 하고 다시 짐을 부치고 타야 하는데, 보통 2-3시간은 걸린다는 후기를 보고 상당히 긴장해 있다. 내가 가진 시간은 3시간 30분 정도, 상당히 아슬아슬할 수 있는 시간이다.
아내에게 시애틀 공항에서 예쁜 자석 기념품을 사겠노라고 이야기했지만, 과연 저 환승 미션을 모두 클리어하고 기념품 획득까지 가능할지 모르겠다.
잠시 환승하는 도시까지 이번 출장지에서는, 인천 - 시애틀 - 덴버 - 휴스턴 - 상파울루 - 카타르 도하 - 인천, 지구를 한 바퀴 빙 도는 여정이다. 인생에서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지구 한 바퀴 여행이지만, 막상 업무상 하려니 상당히 부담감이 크다.
어찌 됐든, 이제 현지에서의 일정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시간이다. 짐도 한 번 더 챙기고, 아주 기본적인 계획들부터 다시 한번 점검하는 시간.
내일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한다. 컨디션 관리도 잘하고. 이래저래 할 일이 많은 기분이지만 차분히 일정을 준비해야겠다.
진짜 나는 '차분히'가 잘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