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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Aug 29. 2022

서울에서 다들 고생이 많아요.

태어나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 까만 밤하늘은 당연한 것이었다.

날씨가 많이 흐린 날이 아니라면 하늘에 별은 항상 있었고, 날마다 바뀌는 달의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산 아래 위치한 우리 집, 밤이 되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숲의 벌레들 소리와 모내기 철이 되면 논에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뿐이었다.

이따금씩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며 지나가는 술주정뱅이 아저씨마저도 내 엄마의 누구의 누구의 누구더라고 마을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았다.

잘 알았기에 불편했고, 잘 알았기에 안심하며 살았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공부를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던 날. 기숙사에서 쓸 짐을 잔뜩 싣고 부모님과 동생과 함께 고향을 떠났다.

내가 벌써 어른이 되어 고향을 떠나게 된다는 것이 감격스러우면서도 가족을 떠나 산다는 것에 감정이 북받쳐 갓 어른이 된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침이면 일어나 밥 먹고 학교가라던 엄마의 목소리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는데 텔레비전 소리로 잠을 깨우던 아버지도 안 계신 나의 아침은 너무나도 어색했다.

항상 넘치게 담겨있던 밥상 위의 밥과 반찬 대신, 간신히 영양 기준을 맞춘듯한 식판 위의 기숙사 음식은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시험 기간이면 참치 마요네즈 삼각김밥 두 개에 비타민 병 음료가 나의 한 끼였다.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는 있었지만 머릿속은 채워지지 않은 채 밤이 되어 기숙사로 올라가던 밤.

서울의 밤하늘은 너무나도 밝았다. 화려한 도시의 불빛은 별빛보다도 밝아서, 하루의 빛바랜 얼룩들을 닦아내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밤늦게 도서관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까만 밤은 어찌 됐건 지난 간 오늘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포근함이 있었다.

하지만 서울의 밝은 밤하늘은 밤에도 깨어있어야 할 듯, 밤에도 정신을 차리고 무언가를 해야 할 것 만 같았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그렇다고 깨어있지도 못하는 그런 밤들은 내게 서울을 더욱 낯설게 만들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기차를 타고 도착하면 마중 나온 엄마의 차를 타고 도착했다.

덜컹거리는 기차를 타고 남한강을 거슬러 소설 ‘소나기’의 배경이라고 하는 마을을 지나 터널을 하나 지나면 보이는 나의 고향 마을.

이따금씩 기차를 타고 집에 갈 일이 있을 때면, 나는 다시 그 시절의 집으로 돌아가는 대학생이 되어 반가움을 느낀다.


세상 모든 역경을 딛고 살아오신 것만 같은 외할머니는 자주 뵙지는 못 했지만 이따금씩 내 마음을 다 아는 듯한 말을 하실 때가 있다.


“서울에서 사는 건 어떠냐?:


“밤에도 하늘이 벌겋게 밝아요 할머니. 그래서 너무 이상해요.”


“그래? 밥은 잘 먹고 다니고?”


“공부하다 보면 그냥 주먹밥 같은 거 두 덩어리 먹고 공부해요.”


“고생이 많구나.”


특별히 살갑고 따듯한 할머니는 아니셨다. 하지만 무언가 무심한 듯 내게 물으시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나도 잊고 있던 나의 힘든 마음을 투정처럼 내뱉었다.

그러면서도 ‘고생이 많구나’라는 한 마디에 내 마음이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내 고생스러움을 고생스러움이라 이야기해주시고, 고생스러움에 대한 위로를 받아서일까?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여전히 화려하고 어둡지 않은 서울의 밤하늘에서 나는 새삼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갓 떠난 청년에서,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중년의 아저씨가 되도록 살아온 도시 서울.


잠들지 못하고, 내내 밝기만 한 서울에서 우리 모두는 여전히 참 고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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