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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Sep 18. 2019

내가 살면서 포기한 것들 1- 첫 번째 창업

첫 번째 창업, 프랜차이즈형 세탁소


2017년 1월, 나는 아내와 인생에서 처음으로 '창업'이라는 것을 했고, 그 첫 번째 창업으로 프랜차이즈형 세탁소를 골랐다. 그리고 2017년 7월, 이 것을 '포기'했다. 

당시 우리 가족이 살고 있던 곳은 지하철역이 인접하고 마트 근처에 있는 방 두 칸짜리 오피스텔로, 어린 두 딸과 부부가 살기 부족함이 없었다. 하나 아쉬움이 있다면 근처에 변변한 세탁소가 없다는 점이었다. 


동네 세탁소는 현금만 받을 것 같아 왠지 불편하고, 비쌀 것 같아 잘 안 가게 되었으며, 프랜차이즈 세탁소는 마트 건물 6층에 있었지만 왠지 굉장히 불친절해서 가기 싫었다. 그렇다고 집에서 옷을 손질하자니 어린 두 딸이 있는데 다리미를 켜는 것은 왠지 내키지 않았다. 오랫동안이나 그런 불편을 감수하고 사는 중, 집 앞에 다른 오피스텔이 생겼다. 원룸 오피스텔 100여 세대 정도가 살고 있었고 1층 상가에도 제법 가게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 상가를 구경가게 되었는데 공실이 한 칸 있었다. 여기에 세탁소가 들어오면 참 좋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아내에게 '우리가 해보면 어떨까?' 하고 물어봤다.


나는 멀쩡히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고, 가게를 운영한다면 온전히 아내의 몫이 될 터인데 두 아이 모두 어린이집에 가서 9시부터 4시까지의 아내의 시간이 있었고, 아이들이 하원 하면 1시간 정도 가게에 데리고 있다가 5시부터 8시까지 아르바이트를 써서 8시까지 가게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집에서 가게 자리는 불과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30초면 갈 수 있는 바로 길 건너였기 때문에 부담이 적었다.


우선 1위 업체를 알아보았는데 인근 마트 6층에 이미 매장이 있기 때문에 내줄 수 없다고 했다. 가맹사업법이나 계약상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 매장의 매출이 마트 입점 매장인 것에 비해 매출이 낮아서이기 때문에 '상도덕'상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2위 업체를 찾아봤는데, 2위 업체는 1위 업체와 많은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마진 구조나 세탁 공장에 하청으로 운영하는 것은 동일한 구조라 생각되어 나쁘지 않은 결정이라 생각되었다.


가게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부동산 중개 사무소를 갔고, 마침 상가 주인도 입주 후에도 몇 달 동안 공실로 있는 것이 불편한 상황이라 합리적인 선에서 가격을 제시했다.


이제 모든 정보를 얻은 상황에서 동네 상권 분석과 매출 예상을 짜 보기 시작했다. 입점할 오피스텔은 약 100여 세대,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이 1동에 100여 세대에 총 4개 동이 있었고, 주변에 크고 작은 원룸과 빌라 등을 합치면 1,000여 세대가 잠정적 고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동네 세탁소가 몇 군데 있기는 했지만 젊은 단독 세대와 신혼부부, 어린아이를 키우는 우리와 같은 세대가 많다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실제 1,000명의 고객 중 300명 정도가 회원으로 가입하여 1주일에 10개 세탁물을 맡긴다면 3백만 원, 4주면 1,200만 원, 가맹 본부에 마진을 주고 (절반 이상을 내야 한다) 월세를 내고 아르바이트비를 지급하고 기타 공과금을 낸다 해도 한 사람 월급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추후 본사 직원이 분석해준 내용도 비슷했다. 또한 다른 지역의 매장 매출 자료도 비슷해서 어느 정도 확신이 생겼다. 다만 영업 사원이 추가적으로 조언해준 점은, 목표 회원 수를 1,000명으로 잡고 그중 300여 명이 꾸준히 오는 고객으로 보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처음 1년 동안 1,000명을 모으는 것이 현실적이라고도 했다. 


업종을 프랜차이즈 세탁소로 정한 것은, 일단 본사에서 모든 세탁과 배송을 해주기 때문에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재고가 쌓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재고 소진이나 보유에 대한 부담이 없었고, 공간도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 투자 자본이 다른 프랜차이즈 창업에 비해 낮았고, 다른 프랜차이즈보다 매장 별 자유도가 높은 편이어서 강제성이 적어 본사와의 갈등도 크게 없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러한 예상들은 추후에도 크고 작은 차이는 있었지만 대개는 맞아떨어지는 부분이었다.


첫날 오픈, 비가 왔다. 손님은 우리를 응원하러 와주신 양가 부모님 정도였다. 떡도 돌리고 상가 사람들한테 인사도 했다. 손님이 오지 않는 매장에서 우리끼리 있는 시간은 매우 초조했다. 다행히 저녁 퇴근 시간이 되자 건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고 첫 3개월 동안 300명 정도의 회원을 모을 수 있었다. 당연히 손님이 그냥 온 것은 아니다. 출근 전 새벽부터 전단지를 돌리고, 퇴근 후에도 전단지를 돌렸다. 길 건너 잘 사는 아파트에는 광고료도 지불하고 광고 전단을 게시했고 그러면서 동네 세탁소의 항의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순조로운 편이었다.


하지만 접었다. 회사에서 갑자기 해외로 발령이 났고, 좋은 기회라 생각한 우리는 당연히 기러기 가족이 될 생각이 없어 함께 접고 떠났다. 두 가지에 대해 가치 판단을 했고 우리가 더 큰 가치가 있을 것이라 믿은 시나리오를 선택한 것이다 (후에 이것은 또 다른 포기의 상황으로 이어지고, 다른 스토리의 주제가 될 예정이다). 다행히도 단골손님 중에 관심 있는 분이 있어 손해보지 않고 가게를 인도할 수 있었다. 


실제로 가게를 운영해보니 힘들었던 점은, 머릿속에 예상했던 위험요소들이 생각보다 크거나 없었던 것들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첫날 계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반나절을 기다리다가 시스템 업체에서 수리를 받은 일. 외상으로 맡기고 가서 물건을 찾지 않는 손님한테 연락하는 일. 그 외에도 오해를 해서 화를 내는 손님. 손님을 불쾌하게 한 이유가 알바분이었던 사실. 비 오는 날 손님이 없어 마음 졸이던 일. 세탁 공장에 세탁이 밀려 수십 개의 고객 겨울 패딩점퍼를 두 달 동안이나 돌려줄 수 없었던 일. 작은 세탁소 하나 운영하는 것이 이 정도인데 더 크고 복잡한 사업은 어떨까? 


배운 점도 몇 가지 있다. 120% 정도의 현실적인 확신이 있어야 70% 정도의 성취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요소를 파악하고 계산했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장사였지만 생각만큼 잘됐다면 해외 발령이 났다 해도 그냥 유지했을 것이다. 사람을 모으는 것은 거저 되는 것이 아니다. 길거리에서 전단을 나눠주는 일이 내가 몇 년을 사는 동네에서 퇴근하고 술 한잔 하고 싶은 금요일 밤에 한다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다음날 전단보고 왔다는 사람들을 보면 힘이 나서 하게 된다. '내 일'이고, 내가 열심히 한 만큼 성과로 돌아오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하게 된다. 과연 회사일을 이렇게 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다르다. 


평생 창업을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지는 않는다. 자의에 의해서 건 타의가 섞여서 하게 되건 창업은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만화책의 한 대사가 생각난다. '회사는 전쟁터지만 바깥은 지옥'이라고. 전쟁터에서는 사람인 적군과 싸우지만 지옥에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악마와 싸워야 한다. 웬만큼 준비가 되지 않는다면 섣불리 시작하지 않는 것이 돈 버는 일이다. 


창업에 대한 나의 판단은, '포기'가 아닌 '미뤄두는 것'이다. 그리고 포기가 아니기에 내가 지금 해야 하는 것은 미래의 창업을 위해 현재 회사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오너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너무나 건전한 결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지옥 같은 전쟁터는 있지만 전쟁터 같은 지옥은 없다. 무사히 지옥을 통과하려면 전쟁터에서 전투력을 올려놓는 것이 제일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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