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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Jul 15. 2021

양양고속도로, 나는 살아 남았다

살아남지 못했다면 못 봤을 지금의 풍경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운전자만 보게 되는 광경들이 있다. 


신호등에 멈춰 섰을 때 하품을 하는 다른 차의 운전사 모습이라던가, 멍하기 창밖을 보는 풍경 등.


가끔은 작은 동물들이 운나쁘게 길에 뛰어들었다가 안 좋은 일을 당한 모습 등 썩 유쾌하지 않은 광경들도 있다.


운전하는 사람으로서 별로 좋지 않은 광경을 봤을 때, 함께 탄 가족들에게는 굳이 그런 광경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 혼자만 기분 상해도 되는데, 운전자로서의 책임감에서랄까?


고속도로를 막힘 없이 달리는 중이었다. 갑자기 빗방울이 세차게 유리창을 때렸다.


타다다다다다닥


와이퍼를 가장 빠르게 켰음에도 시야가 좋지 않았다.


삑삑삑삑삑


순간.


콱.


텅.


맞은편에서 오던 중형 승합차가 중앙분리대를 세게 박았다. 부딪힌 차량은 충격에 살짝 붕 떴다. 순간 뒷바퀴가 들려 차의 윗 부분이 그대로 내 측면 시야에 들어왔다. 다행히 차량은 중앙분리대를 넘어 내가 운전하던 차와 부딪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충격에 의해 파손된 그 자동차의 파편이 내가 운전하던 차의 어딘가에 부딪혀서 '텅'소리가 난 것이다.


으악.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 나.

하지만 그 순간에도 가족들을 태우고 있었기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앞을 향해 운전을 계속해나갔다.

정말 무서웠지만 멈출수도 없었고 비는 계속되고 뒤에 차들도 계속 따라왔다. 


놀란 가족들은 이유를 물었다. 나는 설명했다.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빗속을 뚫고 20km정도를 더 달렸다.

이윽고 휴게소 간판이 보여 들어갔다.


차를 멈추고 잠시 마음을 진정시켰다.


'만약 중앙분리대가 없었다면? 흰색 카니발 차량이었는데, 만약 더 작은 차였다면? 중앙분리대를 박고 내차 위로 날아왔다면? 정신 못 차린 내가 다른 차와 충돌했다면?'


안좋은 생각들이 들면서 공포에 휩싸였다. 

모든 '먄약'은 너무나도 끔찍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사고 장면을 보지 않은 와이프가 대신 운전을 해줬다. 

며칠을 놀란 마음이 다잡아 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이러고 있는 자신이 싫었다. 


어떻게 다시 회복할 볼 수 있을까.


그래. 살아남았다.


살아남지 못했다면 지금 내 눈앞에 어떤 풍경도 볼 수 없었겠지.

살아남지 못했다면 오늘 하루도 없었겠지.

그 모든 '만약'이 없었기에 지금 여기 있다.


그러자 조금씩 긴장이 풀렸다.


그래. 살아남았다.


자잘한 고민들이 자잘하게 느껴졌다.


그때 사고 난 차량 안에 타고 있던 분들이 부디 무사하시길 기원하며.


너무나도 뻔한 말이지만, 너무나도 당부하고 싶다. 안전운전 하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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