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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도 Nov 25. 2021

나를 용서 못하는 나를 용서하다.

문득 늦잠 자고 일어난 나에 대한 깨달음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늦잠 자는 것을 어려서부터 싫어했다.

늦잠을 자면 게으름뱅이라고 생각이 되었고, 게으르다는 것을 인생을 충실히 살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찌 보면 일종의 강박과도 같았다.


어린 시절에도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TV를 켜고 만화동산을 보았으며, 만화동산이 시작되기 전부터 재미없는 교양 프로그램을 보기도 했다. 


주말 아침이 이런데 평일 아침에도 다름은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랬으니 수험생이 된 고등학생 때 내게 졸음은 죄악이었고, 잠을 줄이는 방법이 최대의 관심사 중 하나였다.


고1 겨울 방학 때는 1개월 동안 새벽 6시 30분에 있는 영어 수업을 듣기도 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별 도움 안됐던 것 같다), 아버지를 따라 새벽 산행을 1 개월 동안 한 적도 있다 (1개월 하고 나서 폐활량이 좋아진 것이 좀 느껴지기는 했다). 


고 2 때는 새벽 2시까지 학원 수업을 듣고 3시에 잠이 들어 8시에 간신히 일어나 학교에 가는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가끔씩 도저히 못 일어나고 9시에 학교에 간 적도 많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졸았다. 졸았다기보다는 그냥 잤다.


고3 때는 좀 방식을 바꾸어서 12시 취침, 6시 기상 후 6시 30분 등교 (집이랑 학교가 가까웠다) 패턴을 고집했다. 


이렇듯 아침 시간은 항상 나에게 무언가 해야 하는 시간이었고, 아침을 헛되이 보내는 것은 하루를 망치는 것만 같았다. 


공부 열심히 했다고 자랑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미련한 짓이고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잠은 꼭 자야 한다.


안 자면 결국 몰아서 자게 되는데, 그러고 나면 더 리듬이 깨진다.


사람이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이든 공부의 양은 정해져 있고, 어쩌다 한번 무리할 수는 있지만 이것을 장기간 지속하면 몸이나 정신 중 무언가는 혹은 둘 다가 망가지게 되어있다. 내가 의학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것만은 장담할 수 있다.


그렇게 살아오던 내게 대학생 시절 어느 날,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그런데 며칠을 그렇게 연달아 늦잠을 자던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몸에 무리가 많았던 것 같다), 그날은 유독 일어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는 늦잠을 자도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는데 곧바로 나는,


'왜 내가 늦잠을 자는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지? 늦잠을 잘 수도 있는데!'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나는 얼마나 무리해서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가. 피곤하고 졸리면 잠을 자고, 아침에 더 자고 상쾌한 기분으로 남은 하루를 더 열심히 살 수 있는데 말이다.


그때부터 나는 늦잠을 편안하게 잤다 (물론 편하게 잘 수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는 가끔 무언가에 맹목적으로 열심히일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러한 습관과 노력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가 명확해야 하고, 명확하지 않을 때 과감히 그것을 버리거나 바꾸지 못한다면 스스로를 괴롭히기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여전히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무언가 하는 것을 내가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무언가 하고 시작하는 것이 내 하루를 보람 있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나는 미라클 모닝 실천에 대한 브런치 북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맹목적'인 것만큼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은 없으며, 나의 노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가 명확하지 않다면 과감히 바꿔야 하는 습관이나 믿음이 누구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가끔은 열심히 한다고 해도 되지 않는 일들도 많다. 그럴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열심히 해야 하는 순간을 위해 에너지를 충전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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