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로 일한 이후 글쓰기란 나에게 그저 일에 지나지 않았다.
일이니까, 써야만 해서 쓰는 글,
매번 백지 위에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 보며 머리를 쥐어 뜯어야 하는,
글쓰기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압박이 오죽 심하면 주기적으로 꾸는 단골 꿈도 있었다.
방송 시간은 다가오는데 원고가 안 써지는 꿈.
온에어에 불이 들어오기 직전인데,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도통 한 문장도 완성하기 힘든 그런 상태를 마주하는 꿈.
그렇게 시달리다 잠에서 깬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물론 지금도 종종 그런 꿈을 꾼다.
이렇다 보니 방송 원고를 쓸 때가 아니고서야
개인적인 글쓰기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원고가 아닌 다른 글을 쓴다고 하면
선배 작가들은 '너 아직 원고를 덜 썼구나? 그럴 힘도 남아 있고'
이런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그런데 서른 즈음, 나는 일로써 쓰는 글이 아닌 나를 위한 글을 쓰면서
글쓰기의 또 다른 의미를 깨달았다.
그때 당시 나는 마음이 좀 많이 아팠다.
대학을 졸업하고 23살부터 곧바로 실전에 투입돼
쉼 없이 일하고, 쉼 없이 채찍질을 하고 나니,
마음에 아주 지독한 몸살이 찾아왔다.
열심히 하면 뭔가 이뤄질 줄 알았는데,
욕심만큼 성과는 따라주질 않고,
일도, 사람과의 관계도 너무 힘들고 버겁게만 느껴졌다.
꾸역꾸역 써내던 원고도 그만 쓰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나를 살린 건 글쓰기였다.
왜였는진 모르겠지만 너무 힘들어 뭐라도 부여잡아야 했을 때
나는 노트를 펼치고 연필을 들었다.
그렇게 매일 아침 글을 썼다.
매일 아침, 내 마음 속에 있는 말들을 노트에 그대로 쏟아냈다.
그렇게 꼬박 3개월을 썼고, 나는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내가 나를 만나는 경험이었달까.
'나'라는 존재는 분명히 하나인 줄로만 알았는데,
글을 쓰다 보니, '노트 속에 무수한 말을 쏟아내는 나'와 '그걸 듣는 내'가 있었다.
글을 쓰면서 나라는 사람이 마치 화자와 청자로 분리되는 듯한 느낌,
나는 글쓰기를 통해 나 자신과의 대화를 처음 해본 것이다.
내 안의 이야기를 온전히 듣고 나를 알아가는 작업은
뻘에 빠진 듯 아무리 발버둥쳐도 나오기 힘든 나를 서서히 꺼내주었다.
'나의 슬픔과 힘듦을 비웃진 않을까, 혹여 비난하지는 않을까',
노트 속 작은 공간 안에서만큼은 이런 걱정과 불안 없이
마음껏 나 자신과 대화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에게 귀 기울이며 깊숙이 공감했고,
이러한 경험은 어떤 누가 해주는 공감보다 강력하고 든든했다.
이때의 경험을 통해 나는 글쓰기라는 인생의 무기를 얻었다.
앞으로 긴 시간을 살아가면서 또 얼마나 많은 고비들을 마주하게 될까 생각하면
한편으론 두렵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건
이제 나에겐 글쓰기라는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노트 한 권과 연필 한 자루,
이것만 있다면 언제든 나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생계 수단을 넘어 이제는 인생의 무기가 된 글쓰기,
한때는 애증의 존재이기도 했지만
이젠 글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금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