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내일이다

by 윤작

최근 몇 년간 꽤 괜찮은 날들이 이어졌다.


지난한 과거를 뒤로하고

마치 나의 전성기가 찾아온 것 마냥

몸도 마음도 어느 때보다 건강하고,

특히 그토록 나를 매번 고민하게 하고

수렁으로 빠지게 하던 방송 일도 안정기를 찾았다.


성실히 일하고

힘들어도 씩씩하게 해오다 보니

얻는 것들이 있구나 뿌듯했다.

이 흐름을 잘 타다 보면 내가 하고자 하는 건

내 마음먹기 달렸겠구나 자신감도 가졌다.


그런데 언제나 인생은 반전의 연속이라 했던가.

별 탈 없는 잔잔한 호수 같은 일상에

돌멩이가 던져졌다.




오늘 하루, 나는 국장의 전화를 여러 번 받았다.

평소 통화할 일이 거의 없는 인물인데,

나에게 친히 전화를 걸어주신 이유는

다름 아닌 방송에 대한 지적이었다.


심의실로부터 '방송에 야마가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야마.. 다시 말해 방송의 핵심 주제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야마 없이 원론적인 이야기만 반복했다는 거다.


전화기 너머의 국장 목소리에는

단 몇 마디였지만 불만이 잔뜩이었다.


'방송을 이렇게 하면 안 돼. 항상 말하잖아.

새로운 사실. 뉴팩트!

필요하다면 본인이 직접 발로 뛰어서 취재도 해야 해!

앞으로 원고 쓰면 나한테도 공유하세요.'


국장의 말에 나는 짧은 대답을 하곤 전화를 끊었다.

'그래, 그간 편하게 일했지 뭐.

누군가의 지적, 정말 오랜만이다'

여기까진 쿨하게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또 전화가 와서는

당장 이틀 후에 있을 녹화 원고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이건 20년 전에도 했던 이야기예요.

지금 할 수 있는 내용들을 업데이트해야지.

이렇게 하는 건.. 나는.. 이거는 정말 용납 못 해요.

반드시 수정해야 됩니다.'


앞선 전화보다 더욱 강한 목소리로 비판을 하는데,

나는 침묵으로 내 감정을 티 낼 수밖에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도 많았지만, 말해서 뭐 하랴,

이미 내 잘못인 걸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것을.


나는 간신히 침묵을 깨고

국장의 말에 대한 수용의 답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생각해 보면 오늘의 일화는

방송국에선 비일비재한 일이다.

방송국에서 10년 넘도록 일하면서

아이템 선정부터 섭외한 사람, 구성, 원고..

지적 당하지 않은 게 어디 있을까.

말 그대로 많이도 뜯기고 살았다.


방송을 만들면서 으레 있는 일이라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참 많이 힘들었다.


마치 나 자신이 부정당한 느낌,

내 나름 열과 성을 쏟았는데

그런 과정들이 다 바보짓이었다 느껴지는 기분,

프리랜서이기에 늘 누군가의 평가에

불안함을 느끼는 일이란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은

어찌나 확장력이 좋은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나를 괴롭히고,

결국 그 끝엔 내가 나 자신을

이리저리 평가하기에 이르고,

스스로 반성문을 쓰게 했다. 앞으로 더 잘하자고.


'잘해야 이 바닥에서 살아남지. 핑계가 무슨 대수야.

네가 탁월하면 이런 일이 생기겠어? 더 잘하자.'

냉정하게 다그치기만 하곤 했다.




나는 오늘도 그럴 뻔했다.


처음에는 '왜 연출한테 전화 안 하고 나한테 이러지?

내가 만만한가?' 하는 반감도 가졌다가,

'어이가 없네. 갑질이야 뭐야.

왜 지적질을 그렇게 하지?' 짜증도 났다가,

'내가 그동안 너무 불성실했나.

경력이 10년도 넘었는데 실력이 없나'

자기 의심도 했다가,

'이러다 내 발로 나가는 게 아니라 나가라고 해서

일을 관두게 되면 어쩌지?'

불안해도 했다가, 별 시나리오를 다 썼더랬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이 있기에

나는 얼른 불필요한 생각들을 털어 버리려

곧장 러닝 머신 위에 올랐다.

냅다 뛰었다.

멈추지 않고 뛰며 땀 흘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일하면서 지적도 받고 그럴 수 있는 거지 뭐~

이미 일은 벌어졌고, 어쩔 거야?

앞으로 개선하면 되는 거지!

오늘 일이 삐끗했다고 내 인생이 삐끗하나?

다시 자세 고쳐 잡고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위축되지 마.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내일이야!'


한때는 내가 정말 탁월한 능력자이길 바랐고,

그렇지 못한 나를 탓했다.

그러나 나는 탁월한 능력자도 아니요,

일이란 것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함께 하는 것이며,

언제나 크고 작은 변수와 실수들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이젠 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내 인생을,

나 자신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내일이다!

괘념치 않고 당장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자.


그리고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건,

내일을 맞이할 몸과 마음의 체력을 비축하는 것!

고로 푹 자는 것이다.

오늘 하루 고생했다 나 자신! 굿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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