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나 작가 <혼모노>

'진짜'란 무엇인가?

by 윤작

'진짜'란 무엇일까?


우리가 '진짜'라고 생각하는 것,

'참된 것'이라 정하는 기준은 무엇이고,

'진짜'와 '가짜'는 어떻게 구분하며,

내가 '진짜'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진짜'일까?


최근 나는 서점 베스트셀러 칸을 지키고 있는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를 읽고

'진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안게 됐다.




책 제목인 '혼모노'라는 말은 일본어로 '진짜', '진품'을 뜻하는 단어다.

의미 그대로 원래는 긍정적인 맥락에서 사용되는 말이지만,

어쩐지 우리나라에서는 부정적인 맥락으로 해석된다.

'혼모노'라는 단어가 온라인에서 일종의 밈처럼 가볍게 소비되면서

특정 분야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소위 '오타쿠'를 지칭하고,

공공장소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극성팬을 비하적으로 지칭하는 은어로 사용됐다.


'거짓 없는 참된 것'을 뜻하는 좋은 의미의 단어가 어떻게 이렇게 우스운 단어가 됐을까.

성해나 작가는 이 지점에서 <혼모노>라는 단편 소설을 쓰게 됐다고 한다.


성해나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원래 긍정적이었던 이 단어가 변질된 의미로 사용되었듯 거짓말일지라도 다수가 믿으면

진실이 되어버리는 작금의 시대상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다시 말해 <혼모노>로 하여금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진짜'란 무엇인가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책 <혼모노>는 총 7편의 단편소설로 이뤄져 있는데,

'작금의 시대상을 이야기 하고 싶다'는 작가의 의도처럼

우리 사회의 다양한 면면을 반영하고 있다.


그중 나는 표제작인 단편소설 <혼모노>가 단연 인상적이었다.


<혼모노>는 무당들의 이야기다.

이제 막 신내림을 받은 스무살 남짓의 '신애기'와

30년 동안 무당으로 살아온 주인공 박수무당 '문수'가 그리는 이야기다.


어느 날 문수가 영업하는 바로 앞집에 새로운 무당 '신애기'가 점집을 연다.

이를 본 문수는 터가 센 이곳에서 또 얼마나 가려나 두고 보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내 알게 된다. 신애기가 나의 라이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아니, 나의 밥벌이를 빼앗아 가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신애기는 이사온 첫날 문수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는다.


'장수할멈이 점지해줬어. 네놈 앞집에 들어가라고.

신빨이 다했다더니 진짠가보네. 할멈이 나한테 온 줄도 모르고'


장수할멈은 문수가 모시는 신으로 흡사 모자처럼 30년을 지내온 사이다.

그런데 처음 본 신애기가 장수할멈이 자신에게 왔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신애기는 살기 어린 눈으로 문수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




문수는 이러한 말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실제로 모시던 신들이 언질도 없이, 홀연히, 죄다 떠나버렸다.

한마디로 신빨이 떨어졌다.


문수는 두 달 전에 있었던 굿판을 통해

30년을 함께한 장수할멈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평소처럼 칼춤을 추고 호기롭게 날이 선 칼을 뺨에 갖다대기도 하지만

어쩐지 사람들의 탄성과 환호가 아닌 하얗게 질린 사람들의 얼굴만이 보일 뿐이었다.

문수의 뺨에는 칼이 스친 흔적으로 벌건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날의 망신이 유튜브에 박제되면서 문수의 점집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하지만 신애기의 점집은 날마다 호황이다.

간판 하나 제대로 없어 찾아오기도 힘든데 늘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애기와 문수의 갈등이 깊어지는 또 다른 사건이 생긴다.


문수에게는 형, 동생하며 지내는 존재가 있다. 바로 '황보 국회의원'

황보 의원은 문수가 지금껏 뒤를 봐주던 인물로

그가 정치판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면서 친하게 지내게 됐다.

그런 황보 의원이 이번엔 시장 선거를 앞두고 문수를 호출한 것이다.

그리고 둘은 시장 선거의 승리를 위해 굿판을 벌이기로 약속한다.


이후 문수는 어떻게든 이 기회를 재기의 계기로 삼기 위해 애처로운 노력을 한다.

서슬퍼런 작두대신 모형품을 찾고, 유튜브를 보며 접신한 무당의 연기를 하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진짜 무당인 척 연기하기 위해 굿판을 준비한다.

그러던 중 뜻밖의 소식을 듣는다.

황보 의원이 문수의 감이 다 죽었다는 이유로 굿판을 신애기에게 맡겼다는 소식이었다.


그길로 문수는 신애기를 찾아가는데,

그곳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장수할멈을 신애기를 통해 만나게 된다.

문수는 할멈이 원하던 게 이런 거냐며 배신감에 몸부림치지만,

자신에게 절대적 존재였던 장수할멈은 이제 더 이상 자신에게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 대목까지 소설을 읽다 보면 신애기는 신빨이 좋은 영험한 '진짜 무당' 같고,

문수는 무당인 척하는 '가짜 무당'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신애기와 문수가 굿판을 벌이는 마지막 장면까지 읽고 나면 달라진다.




하늘빛이 맑고 구름 한점 없는 소만, 일년에 몇번이나 될까 싶을 만큼

복덕이 넘치는 대길일에 신애기의 굿판이 벌어진다.


문수는 신애기의 굿판에 초대받지 않았지만

밤새 숫돌로 날카롭게 벼린 신칼과 쌍작두를 꺼내며

신애기와 단 둘만의 판을 벌인다.


신애기는 칼춤을 추고 작두를 타도 아픈 기색조차 없이 태평하게 의식을 치른다.

피는커녕 피멍울조차 비치지 않는 채로.


문수는 달랐다. 밤새 매섭게 벼러놓은 칼날이 살갗에 닿고 피가 흐른다.

하지만 문수는 아픔과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 사람처럼 굿판을 벌인다.


'이제 누가 더 오래 버티나의 싸움이다.

이 서사의 주인공을 가르는 건 그것이다.

과장되게 눈을 까뒤집고 억지로 몸을 떨며

신접 흉내를 내는 것은 지금 내겐 무용한 짓이다.

.

.

삽십년 박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목도, 진짜와 가짜까지도.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결국 신애기와 문수의 굿판은 신애기가 나가떨어지면서 끝나게 된다.

진짜 무당처럼 보이던 신애기가 아닌 가짜 무당처럼 보이던 문수의 승리.


그리고 이 단편 소설은 이야기 초반에 신애기가 문수에게 했던 말로 끝맺는다.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냐만'




이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 한참을 생각했다.

'뭐지? 그래서 누가 진짜고 가짜라는 거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장수할멈이 문수에게 다시 온 건가, 아니면 진짜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자 한

문수의 처절한 몸부림이 가짜지만 진짜라는 승리를 얻어내게 된 것인가.


그렇게 한참을 소설을 곱씹다 보니 결국 '누가, 뭐가 진짜라는 거지?' 이 질문이

작가가 하고자 한 말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소설 내내 진짜와 가짜의 싸움이 이어져 오다

끝내 마지막에는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모호해지는 결론을 통해

과연 진짜가 무엇이고, 가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판별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책.png


<혼모노>에는 문수가 황보 의원의 굿판을 앞두고

편의점에 놓인 '바나나 우유'와 '바나나맛 우유'를 보며 뭐가 다른지 한참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허위로 진실을 가리는 요즘 같은 시대에

바나나로 만든 우유인지, 바나나맛이 나는 우유인지,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가려내는 일이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가,

그 경계에서 '진짜', '혼모노'를 묻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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