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기쁨
지난 주말 마지막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일명 '득근 멤버'와 함께한 여행.
'득근 멤버'는 2년째 함께 운동하고 있는 멤버로
방송국에서 만난 지인들이다.
작가 언니 한 명과 여자 피디 한 명,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모이면 힘든 운동도 견딜 만 해진다.
우리 셋은 일을 하면서 늘 만나는 사이였지만
사실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운동을 좋아하고, 운동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마음이 잘 맞아떨어져
절친보다도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
득근 멤버라는 이름답게
우리는 운동할 때가 아니면
따로 만나는 일이 잘 없었다.
그런데 올해 이렇게 여름휴가를 떠나기로 한 것은
다름 아닌 '봉선화'에서 시작됐다.
득근 멤버의 막내인 여자 피디가
어느 날 갑자기 봉선화를 키워보려 꽃을 심었다고 했다.
-'왜 갑자기 봉선화?'
-'그냥 옛날에 봉숭아 물들이던 것도 생각나고
한 번 해보고 싶어서 심었어요!'
처음엔 참 엉뚱하다 싶었다가
이내 나는 랜선 꽃집사가 됐다.
-'봉선화 좀 커요? 어때요?
-'잘 안 크는 것 같아요..
꽃 피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네요..'
-'봉선화 잘 커서 손에 물도 들이고 하면
추억도 되고 좋을 것 같은데, 방법 없나?'
이렇게 봉선화 꽃 피우기에 대한 이야기를
연일 주고받다
며칠 후 피디가 한껏 오른 텐션으로 소식을 전했다.
-'작가님들! 봉선화 서리해 왔어요!
제주도 놀러 갔다가 보여서 한 주먹 갔고 왔어요! 이걸로 물들여요 우리!!'
주인이 있는 화단에서 서리를 한 건지,
길가에 핀 꽃을 그냥 따온 건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도통 포기를 모르는 피디는 봉선화를 구하고야 말았다.
이후 우리는 '그럼 언제 봉숭아 물들이지?' 고민하다,
봉숭아 물들이려면 손톱에 꽃잎 올려놓고
한 밤 자야 한다며 쿵짝을 맞추게 됐고,
그렇게 우리는 1박 2일 여름휴가를 계획하게 됐다.
그렇게 떠난 경주 감포 여행.
득근 멤버답게 바닷속에서 수영을 한껏 하고,
먹고 마시고 떠들며 가열차게 놀았다.
그리고 이번 여름휴가의 빅 이벤트인
봉숭아 물들이기는
하루 일정의 제일 마지막,
캄캄한 어둠이 내려앉은 밤에 시작됐다.
봉선화를 잘게 찧을 절구대신
바닷가에 돌아다니는 평평한 돌을 찾아
직접 손으로 두드려 찧고, 미리 사둔 백반을 섞었다.
그리고 잘게 찧은 봉선화를
손수 한 땀 한 땀 올린 우리!
봉숭아 물들이기를 하면서 깔깔깔 많이도 웃었다.
'정말 옛날 생각난다'며 잠시 추억에 잠겨 보기도 하고,
'생각보다 복잡한데
어릴 적 엄마가 정성을 많이 쏟아주셨구나'
잠시 효녀로 빙의되기도 하며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기쁨을 느꼈다.
큰돈을 줘도 연출할 수 없는
시선강탈 천연 네일이랄까.
봉선화에 무지막지하게 물들었다^^
봉선화에서 시작해 봉선화로 끝난
득근 멤버의 여름휴가.
여름휴가를 떠나기 전부터
봉숭아 물들이는 이야기로 한참을 수다 떨고,
가서도 손톱에 봉숭아를 올리며
광대가 아플 정도로 웃었는데,
생각해 보면
'도대체 봉숭아 물들이기가 뭐라고' 싶지만,
우리 삶이라는 게 결국 이런 사소한 기쁨으로
웃으며 사는 게 아닌가 싶다.
큰돈 들여 대단한 이벤트를 하지 않더라도
함께 마음 맞춰 소소한 즐거움을 찾고,
소소한 즐거움을 기꺼이 즐길 줄 아는 유쾌함,
이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충만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
우리가 웃음 짓는 순간들은
언제나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기쁨에 있다.
'오늘은 뭘 먹을까?'
함께 메뉴를 고민하며 입맛을 다시는 순간,
퇴근 후, 시원한 생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순간,
선선한 바람맞으며 여유롭게 산책하는 순간,
그런 순간들이 우리 일상을 지탱하고
나아가게 한다.
가끔 현실에 쫓겨 사소한 기쁨을 잊곤 한다.
마치 큰돈을 벌어야만, 일적으로 큰 성과를 이뤄야만,
내 삶이 행복할 거라 착각하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물질적인 조건일 뿐
행복의 순간은 마치 봉숭아 물들이기처럼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기쁨에 있다는 것,
그러한 기쁨을 두 눈 부릅뜨고 찾는 시선과
기꺼이 즐길 줄 아는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언제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