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사랑 나라사랑이라는 말 들어봤을까? 대형병원 간호사들에게 동기란 소중하고 각별한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첫 입사한 병원의 경우 예비 인력을 많이 뽑아서 웨이팅이 긴 편이었다. 그래서 2월에 들어온 신규도 있고 12월에 들어온 신규도 있고, 심지어 내년으로 발령이 밀리는 경우도 있었다. 다 같은 동기이지만, 2,3 월 발령 신규 거나 경력직 신규들이 늦게 들어온 신규들을 답답해하며 핀잔을 주거나, 태우는 경우도 상당히 있었다.
처음 5월에 입사했을 때 우리 병동에는 이미 10명의 신규들이 있었다. 다들 친한 편이고 챙겨주는 동기도 있었다. 처음 병동 회식 때 1차 때 이미 만취해서 집에 일찍 들어가서 동기 들끼리의 2차 술자리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리고 하루는 프리셉터 기간인데 내가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처음으로 프셉아닌 다른 선생님에게 태움을 당했던 날이었는데, 병동에서 한바탕 울고 벌게진 얼굴로 일을 하고 있었다. 경력직 신규 언니(이후 동기 언니 B라 지칭) 한 명이 끝나고 동기들끼리 술 한잔 하자고 얘기했다. 나를 위로해 줄 생각인지, 친해질 겸 동기들의 술자리에 끼워줄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기분이 너무 안 좋기도 했고 끝나고 프리셉터 선생님과 잠시 면담하기로 해서 못 갈 것 같다고 얘기를 했다. 퇴근 후 밤에도 다시 연락이 왔지만, 기숙사에서 쉬겠다고 거절했다.
이 일로 서운 했던 탓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병동에 신규 태우기로 유명한 차지 A 선생님의 타깃이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동기 언니 B도 나를 태우기 시작했다. 사소한 실수를 해도 "야!! 너 이제 4개월 차인데 이것도 몰라?!" 라며 스테이션에서 큰 목소리로 무안을 줬다. 하루는 이브닝이 끝나고 새벽 2시에 카톡이 왔다. 본인은 한참 먼저 퇴근해 놓고선 내가 차지 선생님보다 왜 먼저 퇴근했냐고, 사회생활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며 나무랐다.
한 번은 내가 메인 스테이션에서 가장 멀리 따로 떨어진 서브스테이션과 그 앞 병실을 맡았는데, 환자 한 명이 수술 후 바이탈이 흔들리고 상태가 안 좋아지는 일이 있었다. 스페셜 바이탈과 쏟아지는 lab 처방, 추가 처방을 받아내야 했다. 다행히 응급 상황은 겨우 넘겼지만, 그 환자 한 명을 간호하느라 다른 환자들의 차팅은 다 밀리고 인계 시간이 되고야 말았다. 내 뒤를 받을 사람은 그 경력직 신규인 동기 언니 B였다. 인계를 시작하기 전 이러이러한 상황이 있었고, 차팅을 할 겨를이 없었다, 부족한 차팅은 다 메우고 가겠다고 설명했다. 인계는 잘 될 턱이 없었고, 다시 제대로 정리하고 인계를 달라고 했다. 한 시간 이상 지나서 다시 인계를 줬다. 아무리 상황이 그랬어도, 제대로 정리를 못한 내 능력이 부족한 거다, 남들한테 언제까지 폐를 끼칠 꺼냐 등등의 말을 한참 한 뒤에야 인계를 넘길 수 있었다.
다음날 다시 이브닝으로 출근한 내게 데이로 일한 2년 차 선생님이 말했다. "어제 차팅 보니까 진짜 힘들었겠더라. 늦게까지 퇴근 못했었지? 고생했어."
'다음날 데이로 일한 선생님마저 힘들었을 것이라 위로하는데, 일 마무리 까지 다하고 간 나에게 사정을 다 듣고서도 쏘아붙이던 동기 B는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인계가 끝난 시간에 추가 처방된 채혈업무를 자기가 하겠으니 고맙게 생각하라고 생색내던 모습이 떠오르니 더 어이가 없었다. 당연히 내 인계 후에 난 추가 처방이니 본인 일인데.
이후 우리 병동에 나 다음으로 10여 명의 동기들이 더 들어왔다. 업무 속도가 빨라지고 조금씩 일에 익숙해지자 나를 향한 태움은 다른 동기들을 향했다. 11월쯤 나이 많은 동기가 들어왔는데 이 신규 선생님도 일 속도가 조금 느린 편이었다. 2명의 숙련된 신규와 그 새로운 신규가 함께 이브닝 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신규들끼리 같이 해야 하는 ‘막내 잡’으로 저녁 7시부터 8시 인젝(주사약) 준비를 해야 했다. 60여 명의 환자에게 투약될 양이라 주사가 많긴 했지만 2명 이서도 준비가 가능한 양이었다. 11월 신규는 저녁때쯤 막 수술실에서 돌아온 수술 환자 처치를 하느라 일에 허덕이다가 8시가 다되어서야 투약 준비실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런데 절반이 넘는 약물이 그대로 준비되지 않은 채 남겨져 있었다. 놀라며 허둥지둥 약물 준비를 하는데. 동기 언니 B 가 와서는 “네가 신규 잡을 하는지 안 하는지, 시험해 보려 했다.”라는 말을 했다.
동기 언니 B와 친한 2,3 월 입사 신규들을 그 뒤로도 2개의 신규 잡이 있으면 둘이서 쉬운 일 하나를 하고 어려운 일 하나를 나머지 신규 한 명이 하도록 일을 넘기는 일이 잦았다. 또 다른 신규 에게는 입사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친해지자며 데려간 식사자리에서
“네 프리셉터는 다른 선생님들이 싫어해서 너도 다른 선생님들이 싫어할 거야.”
라고 지레 겁을 주기도 했다.
윗년차 선생님들에게 신규의 잘못을 일러바치고 이간질하는 것도 신규들을 힘들게 했다. "(윗년차 선생님에게) 아 선생님, ㅇㅇ이가 저한테 뭐 물어봤는지 알아요? 이렇게 기초적인걸 물어본다니까요."
결국 내 이후로 들어온 동기들은 1명을 제외하고 전부 퇴사를 했다. 퇴사 이후로도 몇몇은 연락하고 지내는데 다행히 다들 새로운 좋은 직장을 찾은 듯하다.
그 동기 언니 B는 3년 차가 되어 이제는 프리셉터까지 맡았다는데 여전히 편애와 편 가르기를 하고 있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일로서는 연차에 비해 아는 것도 많고 흠잡을 것 없는 사람이었지만 동기나 후배의 입장에서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조금 더 배려하고 본인의 신규 시절을 생각하며 친절히 대해 줬다면, 그래도 좋은 동기 사이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