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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작가 Oct 14. 2020

퇴사 일기 현실이 되나

신규 간호사 퇴사 일기 100장이면 퇴사도 면한다?

퇴사 일기 현실이 되나     

병동 생활을 할 때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꽤 자주 했었다. 어떤 기준에서 퇴사를 해야 할까, 힘들다고 막상 그만둘 수는 없었다. 퇴사를 위한 기준점이 필요했다. 입사를 준비할 때, 자소서 작성부터 면접까지 3달이 넘게 걸렸다. 이렇게 오랜 시간 걸쳐 들어온 병원을 퇴사하는데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사직서를 던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퇴사에도 분명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 그러다 오프 날 서점에 갔는데 퇴사 일기라는 일기장을 발견했다. 퇴사를 망설일 때 생각 정리부터 퇴사 후 필요한 서류 준비까지 가이드라인을 스스로 생각해 보고 정리할 수 있는 일기장이었다.   


그 날 홀린 듯 일기장을 샀고 근무가 끝나고 힘든 날마다 퇴사 일기를 썼다. 병동에서 퇴사를 생각했던 이유는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였다. 원래 대체로 건강한 편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가슴 안쪽이 찌르듯이 아팠다. 쉴 때도 운동할 때도 가리지 않고 아팠고, 한 번 아프면 15분 이상 넘게 통증이 지속됐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껴 바로 심장내과에 예약을 했고, 진료실을 찾아가서 심전도 검사까지 했다.     

 



병동에 간간히 회진 오시던 심장내과 교수님 진료를 보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교수님과 마주 앉아 환자 입장이 되어 이야기를 듣는 게 굉장히 낯선 느낌이었다. 교수님은 심전도 상 부정맥이 보인다고 젊은 사람이 벌써 왜 그러냐고 했다. 4-50대 이상이었으면 당장에 정밀검사와 약물 복용을 권유했을 것이라 했다. 일단은 통증이 더 심해지면 정밀검사를 하기로 했다. 규칙적인 생활, 운동을 하고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하셨다. 간호사에게는 둘 다 어려운 일이다. 병동에 회진 오실 때 아프면 다시 봐주신다고 했다. 마음의 병을 무시하려 했더니 몸으로 증상이 온 것 같아 굉장히 씁쓸해졌다.  

    

가슴 통증과 슬럼프 기간이 동시에 길게 찾아왔고 결국 퇴사 대신 부서이동을 선택했다. 부서 이동을 위해 수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짧은 침묵 끝에 “선생님, 저 정말 힘들었어요.” 한마디를 쏟아내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수선생님은 “오래 버텼다. 그동안 힘들다는 말 한마디 않던 게 오히려 대단했다.”라고 말씀하셨다. 내 상태가 말이 아니었는지 부서 이동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퇴사 대신 그렇게 부서이동을 했고 그리고 다행히 가슴 통증은 점점 사라졌다.      



내가 썼던 퇴사 일기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 부분은 퇴사 후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는 부분이었다. 나는 퇴사 후 임상을 아예 떠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간호사 면허로 할 후 있는 일 외에 어떤 일을 해봤었고 적성에 맞는지를 쭉 써내려 갔다.      

일단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중고생 시절 작가라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글 쓰는 일로 어떻게 먹고살지가 막막했다. 나한테 충분한 재능이 있는지도 불분명했다. 그래도 퇴사 후 한 번쯤은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나머지 일은 헬스장에서 트레이너로 일하거나, 아마추어 사진 모델을 하거나 치과에서 치위생사로 일하는 것이었다. 전부 아르바이트나 학생 때 잠시 경험을 해봤었지만 업으로 삼기에는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또 퇴사 일기에 기억에 남는 부분은 경제적으로 얼마나 준비되었는지에 대해 기록하는 부분이었다. 현재 얼마의 월급을 받고 있는지, 퇴사 후에도 불가피하게 지출해야 하는 고정지출은 얼마인지 적어보았다. 예상 퇴직금과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미리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의 경우 퇴사 후 300 만원 정도는 휴식기간 여행과 자기 계발에 사용하자고 다짐했다. 퇴사 후 통장 잔고는 빠르게 줄어들었고, 빠르게 내려가는 통장 액수를 보면서 잠시 동안은 바로 다시 취업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 들곤 했다. 하지만 미리 퇴사 후 어떻게 돈을 관리할지 계획해 둔 덕분에 그런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부서 이동 후 한동안 퇴사 일기를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도 힘들거나 부당한 일을 겪을 때면 다시 일기장을 펼쳤다. 그날 있었던 객관적인 상황, 내 입장, 감정을 써 내려가고선 퇴사 일기의 다른 한 부분을 펼쳐 그 부분도 채웠다. 이렇게 조금씩 퇴사 일기가 완성되었다. 그러다가 일기장을 완성하거나 진심으로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100번 하면 퇴사하자,라고 다짐했던 것보다 일찍 퇴사를 하게 되었다.     


결국 한 차례 퇴사를 하고 일기장에 적은 대로 공모전을 통해 작가에도 도전해보고 퇴사 일기대로 살아봤다. 결과는 낙방의 연속. 아직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병원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퇴사 후 짧은 휴식기간을 후회 없이 도전하며 보낼 수 있었다. 병원에 다니면서 보던 내 퇴사 일기와 퇴사 후 펼친 퇴사 일기는 정말 달랐다. 그 당시에는 응어리진 마음 그대로를 담아냈던 지라, 읽을 때마다 마음이 아플 때도 많았다. 퇴사 후에는 그 모든 순간을 회상하며 그땐 다르게 행동했으면 어땠을까, 나 참 잘 참았다, 등등 조금 더 다른 시각에서 지난 시간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거나 다음 직장에서 일을 시작할 때 일기장의 경험과 나를 향한 맞춤 조언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병원 생활을 하다 보면 힘든데 도망칠까?라는 생각에 응급 사직을 하거나 연락도 없이 잠수 퇴사를 하는 간호사도 가끔 있다. 그러다 후회하는 담에 수간호사 선생님에게 붙들려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단지 순간의 감정으로 퇴사를 했다 돌아왔다 하는 건 후회스러운 짓이다. 퇴사 일기는 이런 감정적인 퇴사를 막는다. 퇴사 없이 임상에 남아 하루하루를 버틸 예정이더라도 퇴사 일기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힐링이 된다. 마치 돈이 없어서, 이런저런 상황 탓에 독립은 할 수 없지만 독립 후 혼자 생활을 꿈꾸는 초년생처럼 말이다.      


1년 7개월. 퇴사를 하기 전까지 첫 직장에 적응하고, 고민하고, 버텼던 날들이다. 내 인생에 있어 이때만큼 많은 인내와 눈물, 노력을 했던 기간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1년 7개월 모든 날들을 사랑하고, 단 하루도 후회하지 않는다.     


내 마음속에 브레이크, 안전핀이 되어주었던 퇴사 일기가 너무나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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