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학과 가라고 등 떠미는 부모님들을 위한 조언
간호학과만 가면 취업도 걱정도 없고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된다. 90년대 생인 내가 고등학생 때 진로를 결정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그 말을 참 많이 하셨다. 우리 집안에는 간호사는커녕 의사나 의료인 심지어 병원 사무직 직원까지도, 병원 일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아는 간호사라곤 학창 시절 엄마의 옛 친구 정도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병원 수간호사는 억대 연봉이라더라, 대학병원 5년 차인데 월급이 800만 원이라더라(한 번도 본 적 없음)'라는 말을 어른들을 통해 꽤나 여러 번 들었다. 이 결과 실제로 여고시절 상위권 학생 10명 중 3~4명 정도는 간호학과에 지원했다.(문과 기준) 나 역시 그 당시 품었던 꿈을 내려놓고 간호학과로만 원서 9장을 썼다.
대학교 2학년 겨울, 주말인데도 학교 도서관에 남아 기말고사 공부를 하고 있었다. 다른 과 학생들은 이미 기말고사 기간이 끝나갈 무렵이라 학교 도서관에는 간호학과와 약대의 빨간색 과잠을 입은 학생들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친구들과 열람실에서 열심히 푸념을 하며 공부하고 있었는데, 낯선 사람들이 열람실 안으로 들어왔다. 학교가 상당히 외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외부인이 많지 않았다. 자연스레 외부인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들은 나와 친구들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간호학과 학생이세요?" 고등학교 3학년 진학 예정인 딸과 함께 학교에 방문한 가족이었다. 그 당시 나의 모교는 고등학생들을 위한 학교 투어와 설명회를 열고 있었다. 그 학생 가족은 학교를 선택하고 진로를 결정하기 앞서 실제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 열람실까지 찾아왔다고 했다.
간호학과의 공부량, 대학생활은 어떤지, 간호사로 진로를 정하는 것이 어떤지 몇 가지 질문을 받았다. 나와 친구들은 건강사정이라는 과목의 리포트 준비와 아동간호학 같은 고난도 과목의 시험공부에 눌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하나같이 제발 간호학과에 오지 마세요, 라면서 말렸다. 자세한 내막을 들려주자, 예비 고3 아이는 잔뜩 겁을 먹은 듯했다. "간호학과에 오면 고 4, 고 5의 연속이에요."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간호학과를 한 번에 졸업하기가 쉽지 않아서 한 번 일 년간 휴학하며 힘들게 졸업했다. 간호학과 시절도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복병은 졸업 후에 있었다. 취업은 어렵지 않았다.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서울 빅 5 병원은 몇 군데 떨어졌지만 졸업 전에 자대 병원에 합격이 확정되었다. 국가고시 합격 후에 웨이팅 기간을 거쳐 간호사가 되었다. 하루에 2~3시간의 연장 근무는 기본이고 일하기도 벅차 밥도 많이 굶었다. 태움도 많이 당했다. 일주일에 2, 3번씩은 울면서 퇴근했다. 일 년 새에 10킬로 넘게 빠졌다. 20명의 같은 부서 동기들 중에 4명이 남고 나머지는 만 1년을 채우지 못했다. 손찌검도 두 번이나 당했다. 한 번은 담당 의사에게 한 번은 간호사에게 등짝을 맞았다. 물론 손찌검은 참지 않고 바로 신고했지만 가해자들에게 별다른 조치나 불이익은 없었다. 힘들다는 말을 1000번도 넘게 해서인지 이제 부모님도 간호사가 힘든 직업이라는 것은 안다.
결국 1번의 부서 이동과 한 번의 이직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 병원에서도 간호사의 처우는 취약하다. 코로나도 떨어진 병원 매출까지 간호사에게 압박을 주고 코로나 환자와 접촉해서 검사를 위한 격리기간에 개인 연차를 소진시킨다. 또다시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
그렇다면 간호학과 외에 다른 과에 진학한 친구들은 어떻게 됐을까. 사회복지사가 된 친구는 복지관에 5년째 잘 다니고 있고, 수의예과에 간 사촌은 졸업 후 군 대체복무 중인데도 나보다 많이 번다. 이밖에도 첫 직장에 자리 잡고 잘 적응하는 친구들이 많다. 물론 취업이 안돼서 공무원을 준비하거나 불가피하게 대학원에 진학하는 친구들도 있다. 반면 간호사 친구들은 4 년간 4번의 병원 이직 끝에 지방 간호직 공무원이 된 친구도 있고, 그냥 퇴사 후 아르바이트만 다니는 친구도 있다. 재직 중인 친구들도 몇 달안에 퇴사를 앞둔 친구가 꽤 된다. 왜 간호사 친구들은 힘들게 일하다가 중도 퇴사를 하고 취업 방황을 하는데, 간호학과가 아닌 친구들은 비교적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간호사 집안 동기들을 종종 만난다. 엄마도 언니도 간호사인데 간호사로서의 삶이 너무 만족스러워서 추천한 경우이다. 이런 경우라면 인정한다. 하지만, 왜 본인이 간호사도 아닌데, '간호사는 편하고 돈도 잘 버는 좋은 직업이다.'라고 말하는 걸까. 나름 위한다고 하는 조언이었을진 몰라도 솔직히 이해를 못하겠다. 겪어보지 않았다면 쉽게 얘기하지 말았으면 한다.
돈을 잘 버는 직업이라 해서 말인데, 남들이 생각하는 대기업 연봉 수준으로 받는 건 거의 서울의 빅 5 병원 (3차 병원에서도 페이, 복지가 좋은 대형병원 5곳) 위주다. 나머지 종합병원, 대학병원은 평범한 중소기업 월급과 비슷한 곳이 많다. 3교대, 연장 근무하는 것에 비해 페이가 너무 낮아서 놀라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대학병원을 나와서 local(동네 병원)로 이직한 경우는 월급이 정말 짜다.
일자리가 많은 것도 병원, 3교대 간호사 일자리는 많지만 외래나 상근직만 노린다면 일자리의 선택폭은 많이 줄어든다. 여기서 가장 문제인 것은 임상이 맞지 않는 경우이다. 임상이 체질에 맞지 않아 1~2년을 채우지 못하고 병원을 나온다면 갈 수 있는 곳이 드물다. 공기업이나 연구직 등도 최소 2년 이상의 임상경력을 요구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힘들게 4년 대학생활을 하고 국가고시까지 합격해서 병원에 입사했는데, '나는 임상 체질이 정말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면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정말 힘들게 힘들게 2년을 채우느냐, 아니면 퇴사 후에 취업전쟁으로 들어가느냐. 참고로 나는 나름대로 임상체질이라고 생각했는데도, 병동에서의 1년이 정말 힘들었다.
만약 나에게 간호사를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정말 많은 고민 끝에도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거나, 고생은 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은 학생에게는 추천하고 싶다. 등 떠밀리듯 취업이 잘돼서, 성적이 맞아서 간호학과에 진학하는 비극은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오랫동안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갖고 간호사로서 꿈을 키워온 학생들은 진심을 다해 응원한다. 힘들고 가시밭길 같아도 결국 임상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 다이아 같은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이 글은 사명감과 소명의식 없이 간호사라는 일을 택한 나의 푸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