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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작가 Feb 17. 2021

코로나가 휩쓸고 간 병원에서

12월 31일 격리 해제자들을 간호하다

12/31 길고 긴 2020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보통의 직장인 같았으면 평소보다 여유롭게 근무를 마무리하고 퇴근 준비를 할 것이다. 하지만 병원에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병원은 2주 전 한 입원 환자가 고열이 나서 퇴원 후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일이 있었다. 같은 병실, 동선이 같았던 환자들 모두가 자가 격리 대상자가 됐다. 11~14일간의 격리가 끝난 환자들이 모두 31일에 병원에 몰려든 것이다.


격리환자 중에서도 추가 확진자가 나온 사례가 있기 때문에 격리 환자 관리에 많은 신경을 썼다. 그런데 어느 날 격리환자가 아무 연락도 없이 병원에 내원했다.


 격리 중에도 상처 소독 등 의료기관 이용이 가능하다고 담당 공무원이 병원 가서 소독받으라 했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 격리 환자는 별도의 공간에서 레벨 D 수준의 방호복을 입고 진료해야 했다. 하지만 환자와 담당공무원이 미리 연락하거나 자가격리 중임을 알리지 않아서 5분여간 일반 대기 환자와 섞여 있어야 했다. 대기 공간을 소독하고 격리환자 진료실로 환자를 이동시켰다. 결국 추후에는 병원 발열체크 담당자가 자가격리 환자 명단을 가지고 일일이 체크하게 되었다.



격리 해제 환자 외래 진료 전, 지침에 따라 격리 해제 문자를 확인했다. 몇몇은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정도로 힘듦을 호소했다. 환자분들을 최대한 위로해 드리고 그동안 상처 소독을 제대로 못한 만큼 정성껏 드레싱을 해드렸다. 확진자 발생 현황과 방역 상황도 아는 만큼 자세히 전달했다.


이 기간 동안 간호사인 우리도 방호복, 수술가운을 입고 근무하고, 3일 간격으로 6번의 코로나 검사를 했다. 밀접접촉자로 분류된 직원들은 격리를 당했다. 나머지 직원들도 집과 병원 외에 개인적인 약속, 외부 식당 이용도 금지당하고 자가격리 수준의 예방적 격리생활을 했다. 가격리로 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코로나 감염에 대한 우려로 많은 주의가 필요했다. 같은 간호행위라도 철저히 통제되어 평소보다 몇 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격리 해제 문자를 확인하던 중 보호자 분이 매섭게 몰아붙였다. "뭐 이딴 배 째라 병원이 다 있어? 이런 상황이 있었으면 병원장이 직접 죄송하단 전화라도 해야 하는 것 아냐? 사람이 염치라는 게 있어야지..."


외래의 간호사일 뿐인 나에게 이렇게 불만을 터뜨려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내가 전화를 했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입원했던 환자가 첫 감염원이었고, 입원 당시 무증상이었다. 이 환자가 잠복기였는지 보호자나 간병인을 통한 전파였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 병원 직원이 첫 감염자도 아니고, 방역수칙을 어긴 것도 없다. 우리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희생자였을 뿐이다. 나는 억울하게도 분노의  표출 대상이 되어야 했다.


환자와 보호자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화가 나고 힘든 상황에 어떤 예고도 없이 떨어진 것이니까. 누군가 비난할 대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보호자에게 귀가 아플 만큼 욕을 듣고 나서야 조금 더 요령이 생겼다. 자가격리 해제자가 내원할 때면 최선을 다해 먼저 인사말을 건넸다. "격리하느라 많이 힘드셨죠~? 답답하고 힘드셨을 텐데 너무 고생하셨어요"

그래도 신경 써서 건넨 인사에 화를 내는 환자는 없었다. 정말 지쳤다며 하소연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지겨웠던 2020년의 끝과 함께 우리 병원의 격리, 검사도 끝났다. 집단감염으로 번지지 않아서, 확진자가 더 많이 나오지 않아서 감사하다. 오래 신경 쓴 나머지 만성두통과 부정출혈이 생겼지만,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새해가 되고 자가격리에 들어갔던 일부 의료진들이 돌아왔다. 익숙한 얼굴들을 보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복귀하자마자 바쁜 우리 부서에 지원 와주신 간호사 선생님도 계셨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와 함께 격리 해제를 축하했다. 모두에게 스트레스와 상처가 되었지만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하고 회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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