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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작가 Jun 24. 2021

치매와 건망증 사이 어딘가

깜빡깜빡하는 나, 사라진 전화기의 행방은?

처치실에 있어야 할 무선 전화기가 아침부터 보이지 않았다.

있을 만한 곳을 다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명히 방전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신호는 가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전화기 찾기를 거의 포기했을 때쯤이었다.  환자 한 분이 119로 내원하셨는데, 90살이 넘은 할아버지셨다. 그날 아침 침대에서 떨어져서 골절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밀 검사를 위해 처치실에 대기 중이었다.


얼른 집에 가자고.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갑자기 할아버지는 집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아침에 넘어져서 119를 타고 오신 것 자체를 기억을 못 하고 있었다. 밀 검사 시간 전 대기하느라 누워서 기다리다 보니 허리 통증도 덜해져서 그런 것 같았다.


"당신이 아침에 침대에서 떨어져 가지고, 119 타고 겨우겨우 여기 왔잖아. 부러진 것 같대."


아내 분의 설명에 납득한 듯하더니, 또다시 집에 왜 안 가냐며 역정을 내셨다.

"당신이 침대에서 떨어져서 119 타고 병원 온 거야."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환자와 보호자의 무한반복 실랑이가 이어졌다.


사실 아흔 살 넘은 연세에 기억력이 또렷하기 쉽지 않으실 거다. 보호자들은 할아버님이 '건망증심하시다.'라고 말했다. 치매 초기인 것 같다고도 말했지만, 치료는 받지 않고 계시다고 했다. 당 의사는 생각보다 심한 치매일 수 있다며 치매 관련 치료도 필요한 것 같다고, 골절치료 후 관련 검사를 권유한 상황이었다.


보호자분들은 환자가 검사에 비협조적인지라 수면 검사까지도 바랄 정도였지만 고령이어서 위험이 컸다. 이대로는 도저히 MRI 검사를 하지 못할 것 같아 검사실에 가기 직전까지도 걱정이었다.




환자가 검사실로 이동한 직후였다. 보조기와 각종 기구가 들어있는 수납장을 열었는데 거기에서 잃어버렸던 무선 전화기가 나왔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예상치 못한 전화기의 등장에 모두 빵 터졌다.


전날 바쁜 전쟁통에 전화를 받고선 보조기를 꺼냈던 기억이 났다. 범인은 나였다. 사람들이 핸드폰을 냉장고에 넣곤 하는 게 치매 초기 증상이라던데... 가장 어리고 또렷한 정신이어야 할 20대가 깜빡깜빡하다니 일이었다. 그래도 종일 찾아 헤매던 전화기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나오자 어이가 없어서 실실 웃음이 나왔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산만하게 처리하는 습관이 건망증에 아주 안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았다. 이제 통화가 완전히 끝난 후 전화기를 내려놓고 업무를 하나씩 처리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후 검사가 끝나고 돌아오실 할아버지를 위해 한 가지 준비를 하기로 했다. 할아버지가 검사 후 돌아왔을 때 또 혼란스러워하실 것 같아서 침대 옆에 큰 글씨로 메모를 붙여  것이다.


'넘어져서 119 타고 병원에 오셨어요. 지금 정밀 검사하고 치료하셔야 해요.'


 다행히도 환자분은 정밀검사 어떻게 어려움 없이 잘 받고 돌아오사 후에는 조금 진정이 되신 것 같았다. 그토록 거부하시던 입원이었지만 결국에는 동의하셨다. 귀가 잘 안 들려서 큰 목소리로 역정을 내지만, 또 할머니 말씀만큼은 잘 들으셨던 할아버지 환자분.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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