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찐작가 Jul 18. 2021

생신규가 들어왔다(1)

중소형 병원의 신규 간호사

내가 일하는 병원과 같은 애매한 규모의 2차 병원에는 원래 생신규(=간호사일이 처음인 신입)가 보통 잘 들어오지 않는다. 가끔 대학병원 웨이팅 기간에 로컬 병동 알바를 하는 경우는 있지만.


거의 1달 넘게 면접 보러 오는 간호사들이 없었다던데, 어쨌든 모처럼 구해진 귀한 신입이었다. 그리고 나의 퇴사 가까워진 만큼, 인력 부족 상황을 코앞에 둔 병원에선 당장 어떤 직원이라도 귀하게 여것이다.


입사 후 물어보니 생신규는 대학 졸업한 지 몇 년 지난 나이였지만 공시 준비로 병원 생활은 처음이라고 했다. 솔직히 우리 부서 업무는 신규가 감당하기에 업무 범위도, 강도도 높은 일이라 걱정이 앞섰다.


정형외과 외래, 처치실, 주사실(내과 등 타과 환자 포함) 업무를 모두 수행해야 한다.

말하자면 정형외과 진료실 안내를 도와주다가도 골절이나 외상환자가 있으면 각종 splint(반깁스), 드레싱, 봉합술 어시 같은  처치실 업무를 해야 한다. 또 그 와중에 내과나 신경과 주사실 환자가 오면 IV(정맥주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정말 드물지만, 어쩌다 응급환자라도 오면 CPR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안타깝지만 새로 신입은 병원생활이 익숙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회경험이 전무한 것 같아 보였다. 일단은 출근해도 인사를 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를 건네도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네.. 이러고 그만이었다. 나에겐 인사를 안 한다 해도 수선생님이나 간호부장님을 마주쳐도 인사를 하지 않았다.


더 심한 것은 인사는커녕  대답 한마디 듣기가 힘들었다. 업무에 대해 설명해줘도 네, 알겠습니다 대답이 돌아오는 건 세 번 중에 한 번 될까 말까 한 수준이었다.


수선생님은 거의 유치원 교사처럼 신규를 가르쳤다.

"출근하면 먼저 출근한 다른 선생님 들한테 인사하는 거예요."

"대답이 거의 안 들리는데, 내일부터는 밥 많이 먹고, 큰 목소리로 대답해줘요~"


신입을 보면서 '내가 신규였을 땐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라는 생각과 '신규 간호사 생활이라니.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곧 나갈 사람이라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처음 신입이 우는 사건이 터졌다. 출근 3일 차에 신입 교육을 맡은 다른 간호사가 suture(봉합술) 어시스트를 시켜봤는데, 다소 이른 감은 있었다. 어시스트는 엉망으로 끝났지만 정말 단 한 명도 지적하거나 혼내는 사람 없었고, 오히려 '잘했다. 앞으로도 이런 방법으로 하면 된다'라는 분위기로 끝이 났다.


그런데 봉합술이 끝나고 갑자기 신입이 복도 한 구석으로 숨더니 나오질 않았다. 잠시 한숨 돌리고 싶겠거니 생각했는데 훌쩍훌쩍 우는 소리가 났다. 수선생님이 신입을 달래며 왜 우는지, 일이 버거웠는지, 긴장감 때문인지 물어보았다. 런데 아무런 대답도 주질 않고 계속 울기만 했다고 한다. 눈물을 그치고 업무에 복귀한 신입에게 다들 '그래, 첨이라 다 어렵지.  괜찮아요'라고 토닥였고 신입도 민망한 듯 보였다. 그런데 남은 업무시간 내내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그쳤다 반복을 했다.

 

수선생님은 신입을 불러서 물어보았다.  


"일은 어떤 것 같아요? 힘들어요? 아니면 할 만해요?"


 신입의 대답은 의외로 보통 신입들의 '일이 다소 어려운데 노력 중이다.',  '아직 모르는 게 많아서 걱정이다' 등의 예상 답안을 뛰어넘었다.


 "할 만해요."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다른 간호사를 만나면 우울해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