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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뜨끈한 콜라 Dec 15. 2023

중국 도시의 원형을 탐구하다 - 대당서시①

대한민국(大韓民國) 그리고 대당서시(大唐西市)

예전에 한 장의 사진 때문에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한국변호사협회”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대한변호사협회”라고 하면 어색하지 않으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명해 드렸습니다. 나는 전혀 쑥스럽지 않다. “대한”이라는 단어는  태어날 때부터  나라의 이름이기에, 그대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지, 여기에 전혀 어떤 거만한 은 없다고 말입니다.


그때는 서로 수긍하면서 대화가 일단락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이후에 계속 그때의 짧은 대화가 제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그리곤 정말로 “대한”이 포함된 단어를 보면 약간 쑥스러운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찌된 영문일까요. 언제나 자기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 한다는 동아시아 특유의 기질이 발현된 것일까요?     



도르곤이 인조에게 보냈던 칙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대청의 관온인성황제가 조선의 왕에게 초유한다.” 이를 읽고 나서, 만주인을 미개인 취급했던 인조와 신하들이 받았을 충격은 어떠했을까요.


또는 매일신보에 실린 “한국의 통치권을 대일본제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하기로 하였다.”는 순종의 조칙을 접한 조선 백성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아마 참담하지만 동시에 두려운 무언가 복잡한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강대국의 이름에 붙은 “대(大)”라는 글자 하나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이렇간단치가 않습니다.


어쨌거나 오늘날 대청은 그저 청나라로, 대일본제국은 그저 일본이라고 불릴 뿐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한민국입니다. 이는 1919년 상하이의 우리 정부가 치열한 논쟁 끝에 국호를 그렇게 정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늘의 대한민국도 영원할 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먼 훗날 우리 후손은 어떤 이름을 선택하게 될까요? 그리고 대한민국이란 이름을 들으면 어떤 감정이 들게 될까요?긍금해집니다.


대당서시 당시에는 그저 서시라고 불렸습니다. ‘서시’는 서쪽 시장이라는 뜻일 뿐입니다. 어쩌다가 이름 앞에 '대당'이 었을까요? 그건  정부가 2000년대 중반 서시의 복원사업을 추진하면서 서시가 상징하는 바를 최대한 살려, 이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의 이름을 “대당서시”라고 정하였기에 그렇습니다. 1음절보다는 2음절, 2음절보다는 4음절이 입에 붙으니 호칭하기 좋고, 대당, 대송, 대원, 대명, 대청 등 중 그래도 가장 그 이름에 걸맞다고 할 면모를 가진 나라는 역시 당나라라 할 것이니 의미상으로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만, 개인적으로는 계속 그냥 ‘서시’였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 같습니다. 당나라는 "대당"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위대한 나라이고, "서시"는 "대당서시"라고 부르지 않아도 그 자체로 고유한 명성이 있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적인 감상입니다만, 재개발 프로젝트가 완료된 후에도 대당서시는 어딘가 낙후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과거 당나라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시도와 현대적인 개발 사이에서 어딘가 미묘한 괴리가 있습니다. 개발 프로젝트가 힘이 달려 끝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당나라의 영광에 그늘을 드리웠다고 하면 지나친 평가일까요? 


그래밤에 가면 흥겨운 느낌이 니다. 화려한 조명과 전통 양식의 건물이 어우러져 마법처럼 당나라의 낭만이  살아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다음 날 아침이 되면 호박 마차가 사라져 터벅터벅 집에 걸어오는 신데렐라 처럼 소박한 처지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저는 이곳 근처에 좋아하는 찻집과 카페가 있고, 특히 인테리어가 깔끔한 스타벅스도 있고, 무엇보다도 대당서시 박물관이 있어서 이곳을 즐겨 찾았습니다. 개발의 결과가 마음에 차지 않는다 도, 당나라 시절 동서교류의 최전선이었던 곳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독서하는 기분은 엄청 괜찮습니다. 내가 서시 안의 어느 찻집에 앉아 있는 신라 상인이라고 상상하면 더 즐겁습니다. 종종 아이들도 데리고 이곳에 오곤 했습니다만, 아쉽게도 아이들에게 어떠한 감흥도 일으키진 못했습니다.  

    


유럽의 물건이 서시까지 배송되어 팔리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


아니면, 서시의 물건이 신라까지 배송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


아니면, 유럽의 물건이 신라까지 직배송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


생각보다 엄청 짧은 시간이야.  맞춰볼래?     


아니요.     

 

(정답은 다음 다음 글에)



그냥 종이 한 장씩 주고 그림 그리게 해주어도 아이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인데, 어째서 나만 즐겁게 하는  이야기를 가지고 그렇게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어 했을까. 뒤늦게 반성해 봅니다.

     


어쨌거나 실크로드 시스템에서 서시는 종의 핵심 허브로서 기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각양각색의 물품들이 전 세계로부터 서시로 흘러들었고, 또한 각양각색의 물품들이 서시로부터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이는 오늘날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진출하고 있으며, 중국의 저렴하고 품질 좋은 제품들이 다른 나라로 확산되는 현상과 비슷한 듯합니다.


그리고 신라가 당나라를 매개로 한 교역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었던 것처럼, 현재 한국도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상호 이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호혜적인 무역 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양국이 공동 번영을 추구하며 협력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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