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중국 여행 : 산둥반도, 칭다오
내가 처음 만나본 중국은 산둥반도의 칭다오였다. 회사 입사 후 처음 떠나는 휴가였다. 당시 룸메이트가 중국어 번역 및 통역을 맡고 있는 중국인 친구였고, 덕분에 나는 한국어가 유창한 중국인 친구와 중국 여행을 떠나게 되는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되었다.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 친구가 있어 여행 내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맘껏 즐기고 왔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첫인상은 내게 여행지로서 합격이었다.
- 사연을 품은 칭다오를 만나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신호산(信号山) 공원’으로 향했다. 가벼운 등산이 필요한 높이였지만 산 아래의 시야가 점점 넓어지는 재미에 걷다 보니 어느새 전망대까지 올랐다. 전망대 내부로 들어가면 바닥이 천천히 회전하며 움직이기 때문에 가만히 서서도 해변가에 위치한 도시의 모습을 360도로 감상해볼 수 있다. 베이지색 건물에 붉은 지붕으로 이루어진 마을을 보고 있으니 마치 유럽의 작은 마을에 와있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는 독일 조계지 시절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름이 ‘신호산(信号山)’인 이유도 독일이 당시 이곳을 통신을 위한 기지국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칭다오 관광지 중 하나로 꼽히는 천주교당 성당도 그 당시 지어진 건물이며, 칭다오 맥주가 유명해진 것도 독일 맥주 양조기술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5.4 광장은 1919년 한국에서 3.1 운동이 일어난 직후 시기인 5월 4일에 중국에서 일어난 5.4 운동의 기념 조형물이 있는 곳으로써, 이 조형물은 칭다오 하면 떠오르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5.4 운동은 베이징의 대학생들이 시작한 운동인데 칭다오에 기념 조형물이 있는 이유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칭다오의 독일 조계지 문제가 도화선이 되어 발생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5.4 광장은 여행객들에게는 관광지이자, 현지인들에게는 산책하기 좋은 공간이다. 9월 초의 적당한 날씨에 바닷바람을 느끼며 여유롭게 걷다가 중간중간 들려오는 거리 예술가들의 노래가 가을 저녁 산책의 분위기를 한껏 올려주었다.
- 입맛이 허락한다면, 중국의 미식 즐기기
처음 접해본 중국 현지 요리는 생각보다 내 입맛에 아주 잘 맞았다. 마라(麻辣)향과 시큼한 맛 등 난생처음 맛보는 독특한 향신료의 자극에 미각은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악명 높다는 취두부를 맛보고도 꽤 괜찮다고 느낀 입맛이니 다른 음식들은 가볍게 합격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식사는 중국식 아침식사였다. 주말 아침, 광 장에서는 태극권, 에어로빅 등 아침 운동을 하는 무리들이 음악에 맞추어 몸을 풀고 있었고, 길 건너편 거리에 펼쳐진 간이 테이블에서는 아침 식사가 한창인 모습이 활기찬 하루의 시작을 보여주었다.
아침식사 메뉴 중 따끈한 도우장(콩국물)에 푹 담가 적셔 먹는 요우티아오(꽈배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중국 음식이 되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걸 먹으러 중국에 다시 가고 싶다고 했을 정도이다. 한 입 베어 물면, 바삭하고 기름진 요우티아오에서 따뜻하고 담백한 국물이 새어 나와 입안을 가득 채운다. 요우티아오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순방 중 아침식사 메뉴로도 알려져 있다. 중국에 유학 온 후로도 요우티아오 맛집 찾아다니기는 내 중국 일상 중 소소한 행복이었다.
오전 10시가 되면 길거리의 간이 테이블을 모두 정리해야 한다. 시간에 맞추지 못하면 공안 요원들이 순찰을 돌며 어서 길을 정리하도록 하는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중국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풍경을 마주친 것에 흥미로웠다.
한국보다 물가가 저렴한 것도 맛있는 음식을 실컷 누리는 데 한몫했다. 반도에 위치한 칭다오는 해산물이 특히 싱싱하고 싸기로 유명하다. 농수산물 시장에 가서 직접 살아있는 해산물을 골라 담아 구입한 후 근처 식당으로 가면 우리가 가져온 해산물로 요리를 해서 내주는 시스템이니 믿고 먹을 수 있는 싱싱함이었다. 과일 가격에도 크게 한 번 놀랐다. 저녁이 되어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망고, 귤, 복숭아, 무화과, 용과, 두리안, 유자를 한꺼번에 사서 과일 파티를 열었는데도 가격 부담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이렇게 보니 당시 세 명이 먹기에는 정말 많은 양을 샀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 칭다오의 밤과 맥주
1902년부터 100년 넘게 이어져온 전통시장 골목에 펼쳐진 ‘피차이위엔(劈柴院)’ 에는 각종 해산물, 꼬치, 딤섬, 디저트 등 다채로운 색의 중국 먹거리가 펼쳐져 있다. 중국에 오면 꼭 한 번 와보고 싶었던 상상 속 중국 먹자골목의 모습이었다. 골목으로 깊숙이 들어가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나도 함께 걸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양하게 바뀌는 음식 냄새에 후각을 한껏 활용하고 있자니, 내가 일상생활을 벗어나 멋진 곳에 와있다는 걸 실감했다.
골목 안 ‘강녕회관(江宁会馆)’이라는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에는 마치 중국 무협 드라마 속 한 장면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내부는 중국풍 건물에 홍등을 걸어둔 객잔의 모습이었으며, 무대에서는 음악을 연주하거나 스크린에 무협영화를 틀어주었다. 의상을 차려입은 종업원이 다가와 자신의 팔보다 훨씬 목이 긴 주전자를 들고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우리 테이블의 자그마한 찻잔에 따뜻한 차를 따라주었다. 흥미로운 광경에 카메라를 들자 종업원은 카메라를 의식하며 웃었고, 다음 찻잔에는 더 높이서 따르는 쇼를 보여주었다. 언제 끝나나 해서 계속 카메라를 들고 있자 그도 주전자를 놓지 않고 계속 따르다가 그만 넘쳐흐르고 말았다. 여행 온 사람들에게는 이런 사소한 일조차도 너무나 재미있게 느껴지기 때문에 종업원과 함께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밤이 되면 길거리에 테이블과 간이 의자가 펼쳐지면서 노상 꼬치 판매점이 열린다. 아, 말로만 듣던 칭다오 맥주와 중국식 꼬치요리였다! 숙소로 돌아가던 밤길에, 노란 가로등 빛 아래서 꼬치 굽는 소리와 연기를 배경 삼아 첫 중국 여행의 마지막 밤을 장식했다.
칭다오는 만족스러운 여행지이자 언젠가 또 와보고 싶은 곳이었다. 맥주박물관에서 맥주 시음을 하고 볼이 붉어져서 나올 때의 상기된 기분, 몇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내게 칭다오는 그만큼의 설렘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중국으로 단순한 여행이 아닌 유학을 오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