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경험의 확장
언어라는 형태가 존재하지 않아도 사고를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상상해보아도 잘 와 닿지 않아 내 생각은 어떠한지 정리할 수 없었다. 오래전에 스쳐 지나갔던 문장도 비슷한 상황을 직접 겪어보면 불현듯 떠오른다.
‘맛있다, 예쁘다, 날씨 좋다, 기쁘다’와 같은 간단한 중국어 단어로만 대화하다 보니 자연스레 단순한 상태 표현만으로 한정되었고, 중국인 친구와 대화할 때에도 어려운 단어가 등장하면 사전을 찾아야 하거나 친구가 설명하느라 애쓰게 되는 바람에 대화는 곧 다른 주제로 넘어가곤 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된 느낌이었다. 느끼는 바는 있어도, 언어의 한계에 갇혀 표현해내고 사고를 더 확장 해나가지 못하는 답답함에 맞닥뜨리곤 했다. 이런 경험 후에 나는 우리의 머릿속에 언어가 존재하기 때문에 복합적인 사고가 가능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었다.
어학연수를 온 유학생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언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들도 많이 일어난다. 중국에는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인 유학생이 많다 보니, 한국어로 인사하는 외국인(여기선 나도 외국인이지만) 친구들이 자주 보이고, 한국어를 가르쳐달라는 친구들도 적지 않다. 한국어의 ‘안녕’과 ‘안녕하세요’가 어떻게 다른 건지를 묻는 친구에게 “안녕 이즈 니하오, 안녕하세요 이즈 닌하오(안녕 is 你好,안녕하세요 is 您好)”라고 설명하다가 방금 내가 말한 문장에 한국어, 영어, 중국어 세 개의 언어가 섞여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친구들과 웃음이 터져버렸다.
또, 나의 서툰 중국어로 인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몇 가지 있었다. 얼굴에 여드름이 났다는 걸 친구에게 말하고 싶었는데, ‘여드름이 났어’를 ‘여드름을 출생했어’라고 잘못 말해서 의도치 않게 중국인 친구를 웃긴 적이 있다. 어느 날은 한국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한국어인 수박과 중국어인 ‘시과(西瓜)’가 합쳐져 나도 모르게 ‘수과’라고 말했다가 친구들이 중국인 다 됐다며 놀리기도 했다. 한 번은 중국 친구가, 내가 중국어 단어로 말할 수 있는 음식만 먹는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다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게 되자 무안하게도 게임은 중단되었다.
사실 처음에 나의 중국 유학은 일종의 도피 수단으로써의 역할이 더 컸다. 외국에서 휴식을 취하는 김에 공부도 조금씩 하려던 처음의 생각과는 다르게, 날이 지날수록 중국인들과 말이 통한다는 게 신기해서 흥미를 가지고 공부하다 보니 욕심이 커졌다. 표현의 한계에 부딪히는 이유는 단어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여겨 도서관 문을 닫을 때까지 단어를 외웠고, 회화 연습을 위해서 일부러 중국인들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사실 어학연수생들은 외국인들끼리 수업을 듣기 때문에 직접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중국 친구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하루는, 어느 곳을 찾아가야 하는데 지도를 보지 않고 현지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며 찾아가기 미션을 나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지도 어플의 방향을 따라 간단하게 찾아갈 수도 있지만, 여러 사람에게 물어봐 가면서 중국어를 한 단어라도 더 말해보고 들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의 성취감 또한 훨씬 크게 느껴졌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는 그날 하루 말했던 문장을 떠올려 보고 어순을 틀리게 말했던 문장을 혼자 고쳐보거나, 말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문장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생각하다가 2~3시간이 훌쩍 지나 잠들기도 했다. 스스로가 흥미를 느끼는 일에 열정과 의지가 자연스레 따라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향상되는 언어 실력에 대한 뿌듯함과 언제쯤 저 정도로 유창하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조급함은 동반되어 오는 듯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막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보면 분명히 어느 정도 향상되어 있다는 것, 새로운 언어를 익히면서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내 경험의 폭도 점점 넓어진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