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파리 기록
“문제는, 우리들이 노동현장에 들어갈 때, 일생을 두고 그 현장에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에 있다고 봐. 죽을 때까지 말이야. 바로 그것이 일반 노동자들의 실제 삶이거든. 우리는 현장에 들어가더라도 되돌아올 수 있는 걸이 항상 열려 있지만 일반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아. 그들에게 노동 현장이 바로 생존이지만 우리들에겐 그게 생존이 아니라 의식을 뿐이거든.” - p.39 line 3~8
“당신과 나의 만남은 한 사회와 다른 사회의 만남입니다. 이 만남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 p.50 line 19~20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들을 하지만 그 말은 곧 ‘직업에 귀천이 있는 사회’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왜냐하면 ‘직업에 귀천이 없는 사회’에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강조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p.107 line 25 ~ p.108 line 1
‘한 사회’와 ‘다른 사회’는 서로 만나 ‘느껴야’ 되는 것이지 설명한다고 전달될 일이 아니었다. - p.146 line 13~14
나는 그때 사회를 지배하는 집단적인 무의식과 그 편견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당시의 나에게는 그 생각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은 없었고, 다만 무의식적인 편견은 의식적인 편견에 비하여 무의식이기 때문에 더욱 수정하기 어려우리라는 것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 p.168 line 11~14
빠리 택시운전자들에게 중요한 관행인 팁은 프랑스말로는 ‘뿌르부아르(pourboire)’로, 즉 ‘마시기 위한’의 뜻인데, 팁이라는 말보다는 솔직하고 재미있다. - p.178 line 14~16
나는 어느 글에서 “인종주의란 자기를 낳게 한 종자 이외엔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들의 열등감의 표현”이라고 쓴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무의식의 그 열등감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 열등감을 감추기 위하여 더욱더 인종을 내세우게 된다고도 씌어 있었다. - p.189 line 6~9
“인간이 인간을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도저히 용납하지 않는다” - p.208 line 4~5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권력을 잡았을 때 그 많은 사람들이 품었던 찬란했던 희망을. 당신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자유롭고자 하는 사람을 제거함으로써 ‘자유’를 없앨 수 없다는 것을. 인간의 역사란 다름 아니라 ‘자유’를 쟁취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 p.210 line 2~5
너희들은 꼬레앵이라는 뿌리를 잊어선 안 된다.
너희들이 여기에 이르게 된 그 긴 사연을, 식민지에 태어났던 너희 할아버지 세대의 그 어두운 역사를 나의 세대에서 끝내지 못하고 마침내 너희들에게까지 이렇게 남겨주게 된 그 노정을 너희들은 몰라선 안 된다. - p.226 line 18~21
나는 투철한 혁명가도 아니었다. 이론가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어떤 정치적 욕구도 나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내 삶의 의미를 되새겼고 그에 충실하고자 했다. 나를 사랑하고 나 아닌 모든 나를 사랑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분열에 저항하여 하나로 살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내 가슴의 요구였다. 그뿐이었다. - p.266 line 18~22
실제 사회생활에서 똘레랑스는 소수에 대한 다수의, 소수민족에 대한 대민족의, 소수 외국인에 대한 다수 내국인의, 약한 자에 대한 강자의, 가난한 자에 대한 가진 자의 횡포를 막으려는 이성의 소리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권력의 횡포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려는 의지로 나타납니다. - p.297 line 22~25
똘레랑스는 역사의 교훈입니다. 똘레랑스는 극단주의를 외면하며, 비타협보다 양보를, 처벌이나 축출보다 설득과 포용을, 홀로서기보다 연대를 지지하며, 힘의 투쟁보다 대화의 장으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권력의 강제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합니다. - p.308 line 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