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ξ factor크사이 팩터> : 변수의 조건들

전시 서문

by 크시

<ξ factor크사이 팩터>

: 변수의 조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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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 물리학에서 ξ(크사이)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 때로는 '잡음'을 뜻하는 그리스 기호입니다. 고정된 값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변화하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때 ξ(크사이)는 "Xi(ξ)", 혹은 "크시"라는 과학적 기호가 '사이(between)'라는 철학적·관계적 개념으로 확장된, 일종의 언어적 혼종(hybrid)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전시는 이 기호를 회화의 언어로 번역하며, 세 작가의 작업이 불완전성 속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고 관계 맺는지 탐구합니다.

세 작가에게 ξ factor(크사이 팩터)는 우연, 오류, 불확실성, 변화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작가들은 그것을 실패나 결핍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회화가 변주하고 의미를 생성하는 조건으로 수용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와 흔들림은 고정된 형식을 해체하고 서로 다른 존재와 감각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개입시킵니다.



작가별 변수의 조건( ξ )


김아연은 회화를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지금도 변화하고 관계 맺는 살아 있는 현상으로 다룹니다. 작가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들(피부, 깃털, 말의 근육, 핏줄, 사체, 파이프, 돌, 폭포, 불기둥 등)을 해체하고 변형하며 연결시킵니다. 작가가 그린 대상들은 '어떠한' 사물을 닮는 대신 여러 형상과 감각이 상호 침투하며 서로 '되어가는' 과정 그 자체로 존재합니다. 이를 통해 경계는 흐려지고 대상들 간의 새로운 관계성과 의미를 형성합니다. 또한, 캔버스를 구기고 겹치면서 물감의 흐름은 달라지고 캔버스의 주름은 압력과 중력에 의해 변형됩니다. 이 표면은 시간과 시선, 빛에 따라 또 다른 형태로 드러납니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요소들은 작가의 의도와 협업하는 공동 창작자가 되어 우연성과 유동성을 극대화합니다. 김아연에게 ξ factor(크사이 팩터)는 인간과 비인간, 의도와 우연 간 경계를 흔들며, 예측할 수 없는 변화 속에서 회화가 스스로 형상을 만들어가게 하는 유동적 힘입니다. 즉, 그에게 회화는 완결된 이미지가 아니라 되어가는 중인 공생의 장으로 존재합니다.


오수지는 관계 속에서 비롯되는 분명하지 않은 순간과 감정의 미묘한 어긋남을 흑연으로 섬세하게 기록합니다. 작가는 타인과 자신 사이에서 생겨나는 불안정한 감정의 진동을 감각적으로 포착합니다. 흑연의 작은 입자가 모여 선이 되고 선이 겹쳐 면이 되듯, 과거의 기억, 현재의 인식,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한 화면에 공존하는 시간적 층위를 이룹니다. 특히 그의 주재료인 연필은 섬세하고 불안정한 재료입니다. 선은 날카롭지만, 여러 겹으로 중첩되며 다층적인 감정과 관계의 흔적을 남깁니다. 즉, 선의 흔들림과 중첩은 감정이 살아 있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기록하는 장치가 됩니다. 그는 감정의 불확실성을 포기하지 않고 그 예민한 떨림과 진동이 지나간 자리를 시각적 언어로 번역합니다. 따라서 오수지에게 ξ factor(크사이 팩터)는 감정의 미세한 충돌과 관계의 불안정성 속에서 생겨나는 진동으로 나타납니다. 그의 회화는 감정의 경계에서 생겨나는 이러한 변수들을 적극 포용하며 불안정한 감정의 균형을 탐색하는 과정이 됩니다.


황지현은 불완전하지만 다층적인 여성의 정체성을 탐구합니다. 그의 회화 속 인물은 단일한 정체성으로 고정되지 않습니다. 인물은 복합적인 감정과 기억, 해소되지 않은 내면의 질문들이 뒤섞여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존재로 표현됩니다. 그의 회화는 외부의 사건-기억과 관계-이 감정과 충돌하는 지점에서 형태와 색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그 진동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발생합니다. 작가는 꽃잎, 덩굴, 뿌리, 씨앗 등 자연의 형상과 기능을 탐색하며, 재생과 순환, 증식의 유동성을 회화의 구조로 끌어들입니다. 이러한 유동성은 여성의 내면을 단일한 서사로 환원시키지 않고, 감정과 시간, 기억이 교차하는 복합적 장으로 확장시킵니다. 즉, 황지현에게 ξ factor(크사이 팩터)는 불완전하게 흔들리는 정체성 속에서 일어나는 예측 불가능한 감정과 기억의 변화이며, 바로 그 진동이 회화를 살아 있게 하는 내적 동력으로 작동합니다.



본 전시는 이처럼 각기 다른 ξ(크사이)를 탐구하는 세 작가를 한 공간으로 불러 모읍니다. 김아연은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얽힌 공생의 장을, 오수지는 감정의 미세한 충돌과 관계의 불안정성 속에서 생겨나는 진동을, 황지현은 불완전하게 흔들리는 정체성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기억의 변화를 통해 ξ(크사이)의 조건을 형성합니다. 세 작가의 변수들(ξ)은 한데 모여 서로에게 미세한 파장을 일으키며 바로 그 불완전한 조율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드러냅니다. 이곳에서 회화는 세계를 재현하는 창이 아니라, 관계와 변화, 흔들림 자체를 언어로 삼는 생생한 현장이 됩니다. 결국, 이 전시는 불완전하기에 살아 움직이고, 예측할 수 없기에 새로운 관계를 여는 회화의 생명력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일정 : 2025년 11월 7일 (금) - 11월 22일 (토)

오전 11시 - 오후 6시

장소 : M.COLLECT.19(엠 컬렉트 나인틴)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11가길 23, 2층

참여 작가 : 김아연, 오수지, 황지현

포스터 : 오수지

서문 및 기획 : 김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