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메 식당 투어

핀란드 3일째

by 초이

카드를 잃어버려


'블라디보스토크 2박 3일-시베리아 횡단 열차 6일-모스크바 3박 4일-핀란드 2주'

약 한 달간의 대장정이 모두 250만 원 내외의 가성비 여행(비행기 값 포함)이 되어버린 헬싱키 여행,

그 2일 차이다.


숙소에 돌아와서 모든 캐리어를 뒤져가며 찾아봤지만 숙소비 결제 영수증만 남아 있을 뿐 카드는 없었다.


카드를 잃은 슬픔은 하룻밤 지나고 나니 잦아들고 남아있는 현금으로 현재의 자금 상황 분석과 현금 융통 방안에 대해 고민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냥 다시 가방을 싸들고 나왔다.

오늘은 카모메 식당 투어를 할 것이다.


카모메 식당은 회사 다닐 때 출퇴근 길에 본 영화이다.

출퇴근 시간을 합치면 2시간 정도인데 카모메 식당을 보면서 강을 건너 출근하고 퇴근했다.


카모메 식당이란 핀란드 헬싱키를 배경으로 한 일본 영화이다. 일본인이 헬싱키 어느 동네에 식당을 차렸고 모종의 이유로 헬싱키에 여행 온 일본인 2명이 이 식당의 종업원으로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과 손님과의 해프닝이 주된 서사이다.


영화를 보면서 퇴사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나도 그들과 같이 어느 날 갑자기 헬싱키에 놓이고 싶었다.

그래서 원 없이 있어 보자 하고 2주의 일정으로 잡았다.


영화에 나온 장소를 둘러보는 카모메 식당 투어 첫 번째는 '카페 알토'이다.


1. 카페 알토


아카데믹 북스토어 2층에 있는 카페 알토에서 시작했다. 영화 본 지 2달 만에 덥석 회사를 그만두고 그 자리에 똑같이 앉아있는 것이 인생과 영화는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영화에 나온 그곳에 앉아 같은 구도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직원의 밝은 웃음과 그와 어울리는 인테리어의 조화가 인상 깊다. 카페의 손님들은 관광객들이 아니라 주로 지역 주민들인 것 같았다. 핀란드어가 따로 있어서 그들의 대화를 이해하기는 어려워 웅성거리는 소리가 주는 편안함이 있었다.


2. 카페 우르슐라


카페 우르슐라는 바다 옆 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공원을 가던 중, 이제 익숙해진 장면을 마주친다. 헬싱키 시내는 많은 사람들이 유모차를 끌고 아이와 산책을 하는데 주로 아빠가 아이와 함께 있다. 한국에서는 유모차를 많이 볼 수 없을뿐더러 아빠가 육아하는 모습은 생소하기 때문에 유달리 눈길을 끈다. 엄마는 어디 있을까. 집에서 청소를 하거나 요리를 준비하는 걸까. 핀란드 가정에 대해 상상하면서 길을 걷는다.


공원은 한적했고 가끔 가다 갈매기 우는 소리만 적적히 들려왔다.


이 날은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산책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발틱해를 옆에 두고 산책하거나 조깅하는 핀란드인의 모습이 아직도 한가한 날에 침대에 누워있는 나에게 경종을 울린다.


나는 발틱해가 없어서 누워있는 것이라고 합리화해본다.

카페에 도착해 가슴속에 품어둔 사진을 꺼낸다.

영화 장면 중 하나인데 영화 인물들이 이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는 장면이다.

다시 충격적인 핀란드 물가 체험. 이 카페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일반 카페와 다름없다.

화장실도 가고 싶고 앉아서 쉬고 싶어서 빵을 주문했다. 운이 좋게도 한 테이블이 비어 있었고 바로 옆에는 충전할 수 있게 콘센트도 있었다.


자리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카페의 기분 좋은 소음을 들으며 핀란드인의 일요일 오후를 즐긴다.


뒷자리 테이블은 선남선녀가 데이트 중이었는데 분위기가 약간 서먹한 것을 보아 만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옆 테이블은 노부부가 각자의 커피를 마시며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말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는 카페에서의 휴식은 핸드폰뿐만 아니라 나도 충전시킬 수 있었다.


왔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공원을 누볐다.

구글맵으로 나침반처럼 방향만 세워두고 발길이 닿는 대로 이곳저곳 걸어가다 보면 눈사람도 마주치고

이렇게 멋진 헬싱키 풍경도 마주할 수 있다.

일요일 6시면 모든 매장이 문을 닫아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숙소로 돌아와 카모메 식당을 다시 보았다.


3호선 지하철에서 사람들에게 치여가며 간신히 핸드폰만 붙잡던 흔한 시민 1이 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