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비어

'에세이 빠나콘' 여섯 번째 이야기

by 스미스

개인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메일링 서비스인 '에세이 빠나콘'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곳입니다.

구독자분들께 전달된 메일이 2주 후, 이 곳에 공개 될 예정입니다.

구독 문의는 인스타그램 DM이나 댓글을 이용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운로드.png


2020년 8월 1일 여섯 번째 메시지 : 타이완 비어


타이완 비어라고 부르고 싶은 친구가 있다. 공식적인 명칭은 아니고, 혼자 생각해 놓은 별명이다.

이 별명을 친구가 알게 된다면 내게 문제를 제기할지도 모른다. 타이완 비어는 운동을 좋아한다. 스키면 스키, 수영이면 수영, 웨이트 트레이닝 등 뭐 하나 싫어하는 운동이 없다. 좋아하는 만큼, 실력도 괜찮은 편인 것 같다. 어떤 운동이든 쉽게 익히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하나의 단어로 타이완 비어를 표현한다면 ‘활동적인’이 가장 적합하다.


친구가 내게 타이완 비어로 불리게 된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나는 20대 초반이 끝나갈 때쯤, 대만 여행을 하게 됐는데 함께 떠났던 친구가 바로 타이완 비어다.

별명은 그때 만들어졌다.


여행을 즐기는 스타일은 사람마다 매우 다르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가용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다. 버스나 자전거도 괜찮은 교통수단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그에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여행 일정도 마찬가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꽉꽉 채워서 관광지를 둘러봐야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여유롭게 호캉스를 즐기고 싶어 하는 인물이 있다. 이런 것들을 고려할 때 여행이란 수많은 보기 중에서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골라야 하는 선택의 연속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와 나는 여행 스타일이 너무 달랐다. 나는 저녁까지 부지런히 관광지를 둘러보다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해야 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친구는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낮에는 여행, 밤에는 휴식‘이 내 모토였지만, 친구에게는 ’낮 여행’과 ’밤 여행‘이 따로 있었다. 저녁마다 나는 친구에게 숙소에서 피로를 풀자고 제안했고, 그럴 때마다 대개 “타이완 비어 마시러 가자.”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렇게 그 친구는 내게 타이완 비어가 됐다.


다행히도 여행 기간 동안 큰 트러블은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자기의 주장은 있었지만, 그것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성격은 아니었다. 낯선 땅에서 즐거운 기억만 남기고 돌아갈 수 있도록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도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약간의 빈정상함은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하고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하루는 늦게까지 놀고, 하루는 조금 일찍 들어가는 식이었다. 여전히 내게 타이완 비어는 타이완 비어로 남았지만, 여행 자체는 즐거웠다.


여행 이야기를 꺼낸 건, 사실 타협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일찍이 나와 타이완 비어가 경험했던 ‘다름을 인정하는 타협’ 말이다.


어린 시절에는 다른 사람과 부딪혀서라도 내질러야 했던 어떤 주장이, 지금 보면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을 때가 있다. 내가 누군가의 말을 꼭 따라야 하는 게 아닌 것처럼, 꼭 내 손으로 다른 사람을 고칠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새삼 느낀다. 모두가 꼭 하나일 필요는 없고, 그저 비슷한 점이 있으면 비슷한 대로 뭉치고 다른 점이 있으면 다른 대로 흩어지면 된다. 다름을 인정하는 타협이 가능하다면, 어떤 친구들과도 부딪히지 않고 균형점을 유지하는 게 가능해진다는 점도 나이를 먹어갈수록 체감하는 부분이다.


나와 타이완 비어는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액티브’한 영역을 함께 할 때는 둘도 없는 팀원이 된다. 다만, 누군가 운동에 관하여 이야기하거나, 글에 관해 이야기할 때 서로는 잠시 멀어지는 방식을 택한다. 개인적으로는 딱 적당한 밀도라고 생각한다.


과거와 달리 지금의 나는 친구를 많이 만드는 것보다 ‘비슷한 친구’를 만드는데 더 큰 비중을 두는 것 같다.

만약 성향이 비슷하지 않다면 앞서 말한 균형점을 유지할 수 있을 만한 친구인지가 관건이다.

타협이라는 것도 의지가 깔려있어야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협상 테이블에 앉을 의지가 없다면 과감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도 좋다.


협상의 여지만 충분하다면 타이완 비어와 다시 한 번 여행을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불확실성이 여행의 재미를 더했던 부분도 분명히 있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누구와 함께 가든 혼자 가든, 여행은 어차피 불확실함을 선택하는 과정이지 않은가. 지금 당장 떠나지 못할 여행을 상상만 해보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햄스터에게 용서를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