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미스 Sep 06. 2020

덜 열심히 살아도 될 자유

머리를 자르며


내가 가끔 방문하는 미용실은 유독 사람이 많다. 인근에 다른 미용실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이곳은 갈 때마다 사람들로 북적인다. 파마와 염색을 핑계 삼아 ‘이야기’를 구매하러 온 아주머니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미용실의 가장 큰 장점은 미용사가 맞장구를 잘 친다는 점인데, 마치 십년지기 친구가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듯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아들 이야기부터,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 어제 본 드라마 내용까지 모든 주제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미용사분이 신기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언제나 묵묵하게 머리를 자르면서도 귀는 항상 그들의 대화로 향해있었다.


오늘도 역시 머리를 자르기 위해 미용실을 찾았다. 언제나처럼 가게 안은 사람으로, 또 소리로 북적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자연스럽게 그들의 이야기가 귓속으로 빨려들어 왔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들 이야기로 출발해 세상 모든 분야를 넘나들던 얼마 전과 다르게, 그들의 대화 주제가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식 이야기, 부동산 이야기 등 경제 분야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었다.


별거 아닌 거로 넘겨버릴 수 있는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문득 나와 내 친구 사이의 대화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주변 친구들 사이에서 취업, 생계, 내 집 마련, 적금, 재테크 등 경제에 관한 이야기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들 이야기와 영화 이야기, 드라마 이야기가 사라진 아주머니들의 모습과 현실의 삶을 살아내는 데 급급한 내 친구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언제부터인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과거보다 열심히 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것 같다. 예전부터 힘이 세던 돈이라는 녀석은, 점점 더 몸집을 키우고 힘을 과시하려 든다. 돈이라는 녀석에게 깔려 죽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쉴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어제 읽은 소설에 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경제 서적에 대해 말해야 하고, 영화 한 편을 다 볼 시간도 아까워 10분으로 요약된 유튜브 영상을 찾아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시간 활용도 최적화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잡담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미용실 아주머니들이 이들 이야기뿐만 아니라 딸 이야기도 하고, 옆집 강아지 이야기까지 했으면 좋겠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돈 버는 이야기보다 연애 상담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금은 덜 열심히 살아도 되는 자유가 우리에게는 필요해 보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항과 아버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