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미스 Sep 13. 2020

취중고백

2020년 9월 13일 스미스의 생각




“우리 아들 사랑한다.”


엄마에게서 이런 문자가 올 때쯤이면, 나는 엄마가 취해있음을 안다. 엄마는 맨정신으로 내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시절, 가끔 누군가가 불규칙하게 계단을 오르는 소리를 듣곤 했다. 터덜터덜 올라오는 소리가 잠잠해지면 곧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한 우리 엄마는 곧장 내방으로 와 말을 걸곤 했다.


“아들 공부하고 있었어?” 엄마는 꼭 술을 마시면 표준어를 구사했다.

“엄마는 오늘 OO 이모랑 한잔했지. 공부는 할 만해?” “예. 저 공부해야 해요.”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았다가는 말이 끊이지 않을 것 같아 일부러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엄마는 약간 서운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말하는 것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엄마가 아들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아들 사랑해”

엄마의 마지막 멘트는 항상 똑같았다.

“아들 공부해야 하니까 빨리 주무쇼” 언제나 이 정도쯤에서 아빠가 등장해 엄마를 퇴장시켰다.

“예 저도요..” 들릴 듯 말 듯 한 나의 대답은 허공에서 흩어졌다.


다음날이 되면 엄마는 숙취를 겪곤 했다. 엄마의 취중 고백은 만취 상태에서만 나오는 것이었다. 엄마도 나도, 어젯밤 이야기를 굳이 꺼내지 않았고, 숙취가 해소될 무렵이면 다시 무뚝뚝한 분위기로 돌아갔다. 우리 집은 술의 힘을 빌려야만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그런 집안이었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집에서 벗어났다. 불규칙하게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됐고, 엄마의 술버릇을 볼 기회도 당연히 줄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원래 없는 표현인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엄마의 술버릇을 카톡에서 보게 됐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아들 엄마는 이제 집에 가고 있어, 보고 싶네 사랑해’

엄마의 알코올 향이 문자를 타고 전해지는 듯했다. 엄마가 계단을 지그재그로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힘들게 집에 도착한 뒤, 비어있는 내방을 보고는 휴대전화를 꺼내 든 것이겠지.

저릿한 슬픔이 잠깐 동안에 스쳐 지나갔다. ‘네 저도요 조심히 들어가서 푹 쉬세요.’ 형식적인 대답을 보내고 휴대전화를 껐다. 엄마로부터 답장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마음속에 자라나는 몽글몽글한 감정과 슬픔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하루빨리 다음날이 되기를 바라며 잠자리에 들었다.


요즘에도 엄마는 내게 카톡을 보낸다. 밤 10시에서 12시 사이, 대개 내가 잠이 들기 직전의 순간이다. 특히 최근에는 밤중에 사랑 고백을 받는 빈도가 늘었다. 맨정신으로는 절대 말 못할 거면서, 왠지 모를 안쓰러움이 찾아온다. 엄마는 왜 사랑 고백을 더 많이 하는 걸까. 만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빈도가 잦아든 이유는 무엇일까. 비어있는 내 방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나는 언제쯤 제대로 된 답장을 할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덜 열심히 살아도 될 자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