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사라지는 것들

영화 리뷰 < 페르소나, persona(2019), 밤을 걷다 >

by 스미스

기억과 꿈은 비슷한 점이 많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떠올릴 수 없다는 점이나

어느 순간 의도치 않게

사라져 버린다는 점이 그렇다.


어쩌면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죽음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죽음의 상황을 완벽하게

그려내는 것은 불가능하고,

나의 죽음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도 내 의도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영화 <더 테이블과> <최악의 하루>의

김종관 감독은 아이유를 통해

죽음을 드러내려 했다.


감독의 스타일대로 영화는

대화를 통해 심오한 철학적

이야기로 관객들을 불러들인다.




영화의 주요 배경은 꿈이다.

남자 주인공의 꿈속에

죽은 아이유가 찾아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설정이다.


꿈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온전하게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도 남자 주인공은

아이유가 자신이 죽었다고

말하기 전까지 아이유가 죽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야

그는 슬픔에 잠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런 면에서는 참 불완전하다.


감독은 꿈이라는 소재를 통해

죽음을 설명하고자 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꿈에서도 느껴지는 자극들을

신기해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다.


영화 속 꿈은 다양한

감각들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와인의 맛을 보거나

아이유의 냄새를 맡고,

풀벌레 소리도 들으며

서로의 볼을 어루만지기도 한다.


빛이 사라졌다 다시 되돌아오는

장면을 통해 흑백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시각적인 표현도 살렸다.


이렇듯 보이는 꿈속의 세상은

현실과 별 다를 바 없다.



죽음


결국 영화 속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죽음인데, 감독은 죽음이 거창하지

않음을 설명한다.


죽은 아이유가 자신의 과거에 대해

궁금증을 갖거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통해 죽음이라는 것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거창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적 담론에서의

죽음은 선과 악이 분명한

신성한 세계를 연상시키는데,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죽음은

오히려 일상적인 행위에 가깝다.


또 우리는 흔히 죽음을 슬픔과

같은 부정적인 대상으로 묘사하는데

감독은 이에 대해 반기를 든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삶에

저항한다."는 아이유의 말을 통해서나

그녀가 외로움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는 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이유가 외로움으로부터

'살기 위해 죽었다'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기억


감독이 죽음을 '일상화'하는 것은

관객에게 죽음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포인트다.


죽음에 대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하루하루

우리가 죽어가고 있음을

생각하자는 말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꿈에서 깨고 나면

꿈속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처럼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도 죽음을

피해가지는 못 한다.


이는 바꿔 말하면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다.


영화 속에서 아이유의 언니가

죽기 전 마지막 순간에도

숨을 쉬기 위해 입을 크게 벌렸던

것처럼 우리도 선과 악의

'거대한 죽음'을 기다리기보다는

'일상적 죽음'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밤을 걷다

'밤을 걷다'라는 제목은 단지

밤에 거리를 걷는다는 뜻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하루하루 죽음으로 걸어가고

있는 우리의 상황을 묘사한 표현이다.


아이유는 죽은 이후에도 계속

자신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죽음이라는 초월적 상태 이후에도

소멸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의미다.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는

우리의 삶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계속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이는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한

기억을 점점 잃는 것처럼

불가역적인 부분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단지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방법뿐이다.


"꿈도 죽음도 정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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