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공존이 필요해

영화 리뷰 < 인사이드 아웃( Inside Out, 2015) >

by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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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

위의 시를 떠올렸다.


영화의 줄거리와 교훈을

가장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구절이라

나에게도 와 닿았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11살 소녀 라일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를 다룬 이야기다.


무의식처럼 생명이 없는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품을

잘 만드는 픽사답게

'마음속'도 잘 그려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왜 슬픔이 사랑보다 소중한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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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영화에서 라일리의 마음을

표현한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감정을 다스리는 본부가 있고,

이를 통제하는 기계가 있으며,

각기 다른 유형의 요정들이

의논을 통해 감정을 드러낸다.


감정은 상황에 맞게

'뿅'하고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감정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결과물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사람마다 '핵심 감정'이

다르다는 설정도 흥미로웠다.

라일리에게는 기쁨이 핵심 감정이지만

라일리의 엄마는 슬픔이,

라일리의 아빠는 분노가

가장 중요한 감정이다.


'낙엽만 떨어져도 웃는다'는 말처럼

어린아이 일 때는 즐거움을 쉽게 느끼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빈도가

줄어든다는 점을 잘 표현했다.


또 사람에 따라 감정의 형태도 변했다.

엄마의 핵심 감정은 슬픔이었지만,

라일리의 슬픔만큼 어둡지 않았고

아빠의 핵심 감정은 분노였지만,

그 분노는 거칠지 않고 정제되어 있었다.


우리도 사람마다 분노를 느끼는 방식과

그 강도가 다르듯 감정도 시간의 흐름과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의미다.


결국 영화는 라일리의 핵심 감정이

기쁨에서 슬픔으로 바뀌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이에 따라 '슬픔이'와

'기쁨이'의 모습도 조금씩 변한다.




불완전


우리는 참 불완전한 존재다.

영화 '밤을 걷다'에서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

매우 흔한 일임을 말한 적 있다.


우리가 제 아무리

소중한 사람과의 기억을

간직하고 싶어도,

모두 다 떠올리지는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사이드 아웃에서도 이는 드러난다.


라일리의 핵심 기억이

하나 사라질 때마다

성격 섬 전체가 무너진다.


우리의 성격이 기억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성격이

기억의 변화로 인해 쉽게

변할 수 있다는 점도 놀랍다.


이를 현실에 대입해보면

성장기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을 하나 심어주는 것만으로

그들의 평생을 좌우할 긍정적인 성격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의미다.


다시금 성장기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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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


영화의 교훈은 '기쁨만이

최고의 감정은 아니다',

'성장할수록 감정은 다양해진다'

'슬픔을 잘 이겨내야

마음이 성장할 수 있다'

정도로 요약해볼 수 있다.


다른 교훈도 찾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어린아이의 관점과

어른 아이의 관점에서는 그렇다.


앞서 인용한 정호승 시인의 시에서도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당신을 미워해

고독과 음지로 몰아넣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마음의 성장을 기대하며 슬픔의 조각들을

떼어주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슬픔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라일리가 한층 성숙해졌듯, 화자도

당신의 성숙을 바라는 마음일 거다.


영화의 줄거리를 이해했다면

이 구절도 무리 없이 읽히리라

생각한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의문이 들었던 점은

왜 '무감정'이라는 영역은 없을까였다.


사람들은 평소 생활하면서

항상 감정을 느끼지는 않는다.


나 같은 경우도 감정을 느낄 때보다,

감정을 느끼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어떤 특수한 상황을 만났을 때는

감정이 발동하겠지만, 평소에는

그렇지 않고 관성적으로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러한

무감정의 영역은 드러나지 않는다.

조명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무감정의 요정은 없는 듯하다.


영화에서처럼 감정을

항상 지니고 살아가면

삶이 피곤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흔히 말하는 '감정 소모' '감정노동'이다.

감정이라는 것이 의외로

몸속에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기 때문에

감정을 달고 살아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연애를 해보면 특히 이를 심하게 느낀다.


그래서 마치 자동차의

중립기어를 넣는 것처럼

나는 내 감정을 웬만하면 중립으로

놓고 살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에게 이런 현실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인지,

이를 딱히 표현할 방법이 없었던 건지,

픽사는 이를 묘사하지는 않았다.

조금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감정의 공존이 필요해


또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감정노동자' 문제를 떠올렸다.


우리 사회에 많이 존재하는

감정노동자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전 KBS 보도에 따르면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실효성이

거의 없다고 한다.


신고 기준이 까다롭고

회사는 노동자들을

보호해줄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였다.


이를 영화처럼 표현하자면

'분노'가 핵심 감정인

사람에게 강제로 '기쁨'을

선택하게 만든 꼴이다.


영화에서 자기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엄청나게 힘든 합의 과정을 거치는데,


자신의 감정을 속이는 행동을 해야 하는

감정의 요정들은 얼마나 힘이 들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나는 우리가 감정 표현에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나 역시도 부족한 부분이지만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가게 점원에게 과도한 친절을

요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물론,

직장에서나, 사회 전반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인정하는 문화가

퍼졌으면 한다.


칼 구스타프 융이 말했고, 최근에는

방탄소년단이 노래하는 '페르소나'를

버릴 수 있도록 유도하자는 이야기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감정 요정들은

공존을 깨닫는다. 서로의 감정을

조금씩 섞어서 여러 가지 성격 섬을

만드는 방식을 통해서다.


우리도 자기의 감정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감정을 나눠서 공존할 수 있는 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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