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레토(Leto), 2018) >
영화 레토는 소련에서
록 밴드가 인기를 끌던
1981년 여름의 레닌그라드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시작부터 인상적이다.
록 클럽에 몰래 들어와 노래를 듣는
소녀들을 조명하던 카메라는
인기 가수 '마이크'가 공연하고 있는
무대까지 계속 따라내려온다.
시작부터 잘 짜인 롱테이크 신으로
관객의 시선을 잡아끈다.
첫 장면에서 마이크의
노래를 듣기 위해 소녀들이
몰래 침입했던 이유는
당시 레닌그라드에서는
'레닌그라드 록 클럽'이 유일한
합법 록 공연장이었기 때문이다.
그곳마저도 공연장의 '품격'을 해치는
관객들의 행위는 철저하게 통제받는다.
관객들이 과하게 리듬을 타거나,
플래카드 등을 흔드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들은 그저 적당히, 허락된 만큼만
음악을 즐길 수 있을 뿐이다.
'자유의 상징'이라고
자주 표현되는 록 음악을
국가가 통제하는 매우 아이러니 한
배경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의 제목은 러시아어로
여름을 의미하는 레토다.
계절적 배경이 여름이라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겠지만
마이크의 밴드가 부르는
'여름'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뜻하기도 한다.
이는 여름날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곡이다.
주인공 '빅토르'가 바닷가로 휴가를 떠난
마이크를 찾아가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레토는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하다.
영화 중간중간에는
우리가 평소 경험하지 못했던
연출들이 숨겨져 있다.
한 챕터가 넘어갈 때마다
마치 앨범의 표지처럼
다른 영상으로 화면을 구성하거나,
뮤지컬 영화처럼 갑자기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노래를 하기도 한다.
또 화면에 애니메이션을 넣기도 하고,
특별한 등장인물이 나타나
관객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직접 영화를 보지 않고는
무슨 말인지 감이 잘 오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연출 방식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중심적인 소재인
'펑크'와 관계 깊은 연출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일반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연출에 대한
통념을 깸으로써 빅토르의 펑크에 대해
더 몰입시키고, 유연한 사고를 유도하는 것이다.
적절하게 섞인 록 음악 역시 관객들로
하여금 리듬을 타게 만든다.
실제로 영화를 보는 내내 옆자리의 관객은
발을 구르며 흥겨운 리듬을 느끼기도 했다.
연출, 음악 등 내러티브와 직접적 연관이
없는 장치들을 통해 빅토르와 관객을
한층 더 몰입시키려는
감독의 의도를 느낄 수 있다.
영화는 당시 소련의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유일한 합법적 록 클럽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노래의 가사와 복장들을
사전에 검열 받아야 한다.
가사가 너무 저급하지는 않는지,
소련과 당에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는지 공무원이
직접 판단한다.
이는 우리나라 군사 정권
시대를 연상시키는 듯하다.
또 빅토르나 마이크와 같은 록 밴드에게
인류애와 사회적 역할에 대해 강조한다.
빅토르는 이러한 전체주의적 사고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에
저항하는 가사를 지어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러한 사회의
무능한 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실 가사를 검증하고, 복장을
제어하는 공무원들은 록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사회를
'풍자'했다는 변명을 하고
가사 검열을 쉽게 넘어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록을 통제한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이다.
록을 들으며 리듬을 타지 못하게
규제하거나 단정한 머리를 하고
노래를 부르도록 강요하는 장면들은
당시 소련의 모순적인
사회를 잘 드러내고 있다.
또한 록 밴드의 멤버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사람에게
어느 순간 징집 명령을 내리는 것
역시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를 가진다.
이렇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빅토르라는 캐릭터가 의미하는
대척점에는 소련과
그 억압된 사회가 서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영화 레토는 '이런 일들은 하나도 없었어'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말해주는
특별한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관객들이 플롯에 잘 따라올 수 있도록 유도한다.
흥미로운 연출 방식과
경쾌한 음악들과는 다르게
영화의 내용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빅토르와 마이크의 관계,
빅토르와 마이크의 아내의 관계에
대한 해석은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흑백 화면은
선과 악의 대립을 연상시킨다.
빅토르가 마이크의 아내에게
호감을 가질 때 관객들은
빅토르를 악으로 간주하기 쉽다.
또한 마이크가 자신의 외로움을 노래하며
거리를 배회하는 장면은
마이크가 '선'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마이크와 빅토르는
둘 다 선도, 악도 아니다.
마이크의 아내는
여전히 마이크를 사랑하고,
빅토르는 새로운 여자친구를 만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과 악의 대립으로 관객들을
유도하는 것이, 흑백 화면이 관객에게 주는 착시효과다.
이뿐만 아니라 영화는 텍스트에 콘텍스트를 제대로 녹이지 않는다.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관객들은
감독이 무엇을 의미하고자 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마이크가 서양의 록 밴드 앨범들을
보는 장면에서 옷을 다 벗고
바다에 들어가는 멤버를 볼 때
이 장면이 무엇을 뜻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그저 이 장면이
'멤버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고
추측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그 숨겨진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영화를 보는 재미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라라랜드를 오마주 한 장면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빅토르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마이크의 아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듯 레토에서도 가볍지만
가볍게만은 볼 수 없는
속 깊은 이야기들을 많이 숨겨놓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영화를 여러 번 보면서 파악해야 하고,
영화를 한 번만 보고 느낀 점을
두서없이 쓴 이 리뷰에서
모든 소재를 다루기는
매우 어렵다는 점을 밝혀둔다.
영화 속에서와 달리 현실은
그다지 '펑키'하지 않다.
펑크록이란 '누구나 할 수 있다'라는
평등주의적 에토스에서 시작된 문화라고 설명하는데,
현실에서는 록을 하는 사람들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는 록 음악이라는 것이
쉽지 않은 장르라는 것도 한몫하겠지만,
취업과 공부 등 현실의 벽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록 음악이라는 것은 '사치'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빅토르의 음악은
전혀 특별한 내용이 아니다.
그는 노동을 노래했고, 학교를 노래했다.
그의 밴드 키노(Кино)는
록 음악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한 이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영화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소련처럼 전체주의적인
통제에서는 벗어났지만
자본, 취업과 같은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