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앨리스를 위한 나라는 없다.

영화 리뷰 <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2014) >

by 스미스


<본 리뷰는 영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실한 앨리스를 위한 나라는 없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제목부터 독특하다.
성실한 나라라는 표현이 맞는 표현일까 싶을 정도로
어색한 수식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고 나면
왜 이 나라가 성실한 나라인지, 왜 주인공이
앨리스인지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된다.

자 그럼 성실한 나라에 살고 있는
앨리스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앨리스'(수남)는
특이한 사람이다. 그녀는 학창 시절부터
각종 자격증을 모으기 시작해서
졸업할 즈음에는 14개의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그녀가 취직할 때는
컴퓨터로 모든 작업이 이루어지는 시대로
바뀌고 말았다. 결국 그녀의 자격증은
쓸모없는 것들이 되어버렸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의 몸집이 '쓸데없이' 컸던 것처럼
수남 역시 성실한 나라에서 앨리스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수남이 살아가게 되는 성실한 나라는
자세히 살펴보면 이상한 나라다.

인생을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도
남들처럼 살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수남은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며 일을 했지만
직장 상사에게 혼나기 일쑤였고,
그녀의 남편 역시 열심히 일을 하다가
손이 잘리는 사건이 발생했으니까 말이다.

또 남편은 아기를 낳으면 자신처럼 키우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렇듯 성실한 나라에서는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나, 만족도 찾아보기 힘들다.






"현실의 현실"


누군가는 이 영화가 너무 과장되고, 극적인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어딜 가든 인성이 갖춰지지 않은
선생님들이 있다는 점과, 관성적으로 상담업무를 하는 상담사 등은
이 영화가 현실을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재개발과 관련해서 주민들끼리 분쟁을 겪거나,
병원에서 '존엄사'를 운운하며 환자의 보호자에게
병원비를 수납하라고 요구하는 모습 역시 현실과 동떨어져있지 않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주인공 수남 역시 내 집 마련이라는 현실적인
꿈을 꾸며 살아간다. 그녀는 집을 사기 위해 쉴 새 없이
일을 하며 자신을 다그친다. 그러나 이 성실한 나라에서
꿈을 이루는 것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이 나라에 사는 모두가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관성적으로 환자들을 돌보던 심리상담사는
자신이 원하는 재개발에 대해서는 매우 적극적이다.

또한 나이 든 최 원사 역시 재개발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영화 중반부에 등장하는 '청년 부장'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은 소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앞의 3명의 인물만 봐도 각자의 소망이 있다.
이 성실한 나라에서는 누군가의 소망을 꺾을 수 있을 때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수남과 규정"



영화 '소공녀'에서 소공녀는 자신의 위스키와 담배를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면, 수남은 자신의 가족을 위해 일한다.

가족이라고 해봤자 자신과 남편이 다지만
그녀는 남편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학창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언어폭력이
수남으로 하여금 남편에게 의존하도록 만드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사랑스럽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한
수남을 연기하는 이정현 씨의 연기는
매우 훌륭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배우와 작품 속 캐릭터의 이미지 역시
매우 잘 어울린다.


"규정"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수남보다는 '규정'에게
좀 더 몰입되었다.

그는 젊은 나이이지만 보청기를 끼고 다녀야 하는
신세였고, 한순간의 불행한 사고로
자신의 손가락을 잃게 된다.

또한 그로 인해 스트레스 장애도 생기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식물인간 상태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슬픈 운명을 가진 규정이 잠시나마 기쁨을
느꼈던 순간이 있다. 그 장면은 바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던 순간이다.

손가락도 잃고, 귀도 거의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그는 혼자 집을 지키며 살아간다. 자신의 아내는
새집을 마련할 비용을 번다는 이유로 자신을
남겨두고 떠나간다. 결국 새 집에 이사를 하게 된
그는 아내에게 이 돈은 어디서 생겼냐고 질문한다.



아마 자신이 집을 마련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아내가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큰 금액의 대출을 받았다는 사실에
규정은 괴로워했다. 수남은 남편이 자신을 위해
울어준다고 생각했겠지만 이는 사실 스스로의
처지에 대한 눈물이었을 확률이 더 높다.

그렇게 그는 아내가 일을 나간 후
깨끗이 목욕을 하고, 자신이 목을 메달만 한
행거를 설치하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는 행거를 설치하고 난 규정의
얼굴이 매우 밝은 것을 잘 나타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죽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자신을 발견한 아내가
자신을 병원으로 데려갔기 때문이다.


규정은 식물인간 상태로 죽음조차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한편으로는 수남의 선택이 아내라는 이름의
'구조적 폭력'으로 보이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수남은 규정을
오토바이에 태워서 바다로 떠나는데,
수남이 떠나는 바다는 규정이 원했던
바다와는 거리가 멀었을 거 같다.





"연출"


영화는 기본적으로 과장된 연출을 선호한다.
또한 대조의 방식을 자주 사용함으로써 주제 의식을 강조한다.

수남이 종이를 휙 던져서 최 원사를 죽이는 장면이나,
'따조'를 던져 눈을 멀게 하는 등의 장면은 과장된 연출의
대표적인 예시들이다.

또한 상담사(경숙)와 수남의 대조 등을 통해
성실한 나라의 현실에 대해서 잘 드러낸다.
이 현실은 결국 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경숙이 이렇듯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상담사라는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가지고 있는 기술이 없었던 수남은
경숙보다 많은 일들을 오랜 시간 동안 하지만
안정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경숙은 수남이 가진
복어 독 제거 기술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렇듯 성실한 나라의 현실은 무겁기만 하다.

"플롯 구조"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플롯 구조다.

이 영화는 처음 수남이
상담사인 경숙을 찾아가는 것부터 시작한다.

허나 실은 전체 이야기 구조로 볼 때
그 당시는 이미 다른 이야기들이 진행된 이후다.
그러나 관객들은 그러한 사실을
영화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알게 된다.

영화 도입부에서 경숙이 먹은 게 복어의 독이라는 것을
관객들은 마지막에 가서야 알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플롯 구조는 영화를 두 번 볼 때
몰랐던 복선들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과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하지 않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앨리스의 변화와 연기"


성실한 나라의 살고 있던 앨리스는 점차
악마가 되어간다. 처음 최 원사가 죽을 당시
그녀는 의도적이지 않고 실수로 그를 죽이게 된다.

두 번째 살인 역시 그다지 계획적이지는 않았다.
살아나가서 남편을 만나야겠다는 의욕에서
만들어진 결과다.

그러나 세 번째부터는 치밀한 계획 속에서
살인이 이루어진다. 그녀는 시위를 막기 위해
상담사를 살해하기로 하고, 나중에는
자신의 집에 찾아온 형사까지 죽이게 된다.

이렇듯 성실한 나라는 앨리스를 악마로
만들게 된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평범한 사람도 악마로 만드는 세상을
바꾸자는 거다. 2014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지금 우리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여전히 우리는 헬 조선이라 불리며
집값은 점점 더 치솟고 있다.
수남처럼 몇 개의 일을 같이 해야
겨우 작은 집을 살 수 있을 정도다.

가끔씩은 묻지 마 범죄나
각종 특이한 범죄 행태들이 나타나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일들이 점점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에 대해 우려스럽기도 하다.

우리는 더 이상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가
없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누군가가 '헬 조선'에 실망하여
삶을 비관하지 않도록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

오늘날 점점 만연하고 있는
반인륜적인 범죄들은
우리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한 편의 블랙 코미디만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미안해요... 그러니까 내가 죽이는 거 이해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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