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이 사라지는 순간'

영화 리뷰 < 눈먼 자들의 도시(Blindness, 2008) >

by 스미스

본 리뷰는 영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동차들이 지나가고 있는

어느 도로 한복판.
지나가던 차 한 대가 갑자기 멈춰 선다.


이 자동차 때문에

도로는 순식간에 마비가 되고
거친 경적소리와 함께 욕설이 난무한다.

멈춰 선 차에 타고 있던 한 남자는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며

소리를 지른다.


결국 다른 사람들이 그를 도와주면서
도로 상황은 해결되지만,

남자의 '백색공포'는
나아지지 않은 채로 영화는 시작된다.




'당연함이 사라지는 순간'


눈먼 자들의 도시의 오프닝은

다소 충격적이다.
한 사람의 특이한 문제로만

생각되었던 '실명'
남녀노소, 인종을 불문하고

전국으로 퍼져나간다.

대비할 시간도 없이 하루아침에

맹인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맨땅에 헤딩하듯 주어진

운명을 살아나간다.

정부 역시 내놓을 수 있는

대책이라고는 그저 그들을

격리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한순간에 눈이 먼 사람들은
격리된 시설에서

자신만의 사회를 구성한다.

그들은 병동의 대표자를 뽑고
규칙을 정하고,

바깥 세계와 소통하려 노력한다.


생존을 위해 사회를 구성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관습처럼 보인다.


영화에서 특이한 점이 발견된다.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앞을 볼 수 있는

주인공의 아내가 맹인사회에서

불안감을 느낀다는 점이다.


자신의 눈이 멀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겠지만,

자신 혼자만 제대로 된 구성원이 아니라는

생각이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자신이 이 사회에 완전히

속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 말이다.




빠지지 않는 권력과 폭력




시간이 지나면서 격리 수용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온다.
사람이 많아지면서

질서는 조금씩 흔들리게 되고
결국 권력을 추구하는

'폭력집단'이 등장한다.

수용소는 소수만

생활하고 있는 시설이지만
구조적으로 바깥세상과

다를 바 없다는 의미다.

권총을 든 폭력집단은 음식을 독점하여
다른 병동에게 귀중품을

가지고 오라고 요구한다.

눈먼 사람이 '권총'을 들고 협박하는 것도,

수용소 바깥을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귀금속을

요구하는 것도, 아이러니한 부분이지만

세속적인 현실을 보여주기엔 좋은 소재다.




적응, 그리고 저항




폭력은 점차 심화되고,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이 말도 안 되는 폭력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귀중품을 요구했던 폭력집단은 이제
여성들을 데리고 오라며

더욱 심한 요구 사항을 내놓는다.

그러나 폭력에 길들여진 구성원들은
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요구에 순응하게 된다.


이게 말도 안 되는 조건이라는 것을

깨닫고 저항하려는 사람은
앞을 볼 수 있는 주인공의 아내밖에 없다.

결국 아내는 두목을 죽이는

선택을 하게 되고
그제서야 평화는 찾아온다.




'당연함이 사라지는 순간'




영화는 다소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모두가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 말이다.

이 극단적인 환경에서 우리는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도덕과 윤리, 그리고 존엄성.

다른 사람들과 먹을 것을 함께 나누고,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은
생존이란 단어 앞에서는 무의미해진다.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더 많은 것을 누리려 하고,
권력을 갖지 못한 자들은 도덕과 윤리,
존엄성을 내려놓고 생존하려 노력한다.

이 상황에서 누군가가

공동선이나, 정의처럼
허울좋은 명분만을

내세웠다가는 무시당하기 일쑤다.

질서를 유지하고, 평화를 지키려 노력했던
주인공의 아내가

결국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것 역시
생존을 해야 한다는 목표의식이 작용했다.

놀랍게도 눈먼 자들의 도시 속

극단적인 상황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서로에 대한 혐오 표현이 만연하고,
갑질이 빈번해지고,

윤리가 무시되기 일쑤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성적을 위조하거나,
공공기관 채용비리가 일어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현실판 '눈먼 자들의 도시'다.

감독의 연출은 영화의 몰입감을 높인다.
영화 중간중간에는

흰색 배경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면서

실제로 답답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또 폭력이 묘사되는 상황은
무척 감각적으로 표현되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다.
엔딩 장면에서 모든 등장인물은

다시 눈을 뜨게 된다.
그들은 시력에 돌아온 것에 만족하며
서로 기쁨을 나눈다.

반면 주인공의 아내는

그리 기쁜 표정이 아니다.
모두가 다시 눈을 뜨게 되었는데
그녀의 표정은 왜 어두운걸까.

혼란스러웠던 사회는 다시 재건될거고,
이제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갈거다.
그러나 그녀가 행복해할 수 없는 이유는
이미 지옥같은 현실을 경험했기 때문이고,
모두가 눈을 뜬다고해서 그리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쳐다보기만 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결국
'백색의 공포'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래 살던 사회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눈뜬 자들의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무시무시한 경쟁의 지옥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