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석 및 리뷰 < 플립 ( Flipped), 2010 >
첫사랑이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첫사랑에 관한 영화들을 볼 때면,
나는 가끔 안타까움을 느낀다.
내 기억 속 첫사랑의 흔적들은
창피하거나, 슬픈 기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느낌만 남아있고 자세한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내가 의도적으로 잊으려고 노력했음이 틀림없다.
그 당시의 내가 부끄러웠거나.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어기제였거나.
아무튼 나에게 첫사랑의 기억이란
풋풋하고 아름답기보다는 씁쓸함에 가깝다.
오늘 소개할 영화 <플립> 역시 첫사랑에 관련된 영화다.
작품 속 성장하는 아이들의 풋풋함은
보는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해준다.
영화는 브라이스가 줄리 집 근처로 이사를 오면서 시작된다.
첫눈에 브라이스에게 반해버린 줄리는
다짜고짜 브라이스를 찾아가,
이사를 도와주겠다고 얘기하면서
브라이스와 친해질 계기를 만들려고 애쓴다.
브라이스의 아버지는 갑자기 나타난 이상한 여자애가
부담스러웠고, 브라이스에게 집 안에 들어가서
어머니를 도와주라고 지시한다.
브라이스도 마찬가지로 너무 적극적인
줄리를 피해 어머니 등 뒤로 가서 숨어버린다.
어이없게도 줄리는 브라이스가 부끄러워서
어머니 뒤로 숨어버린 것이라고 여긴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영화 전체의 내용을 축약한 장면으로 볼 수 있다.
플립이라는 영화 속에서 가장 핵심적인 갈등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줄리와
감정 표현이 서툴고, 주위 사람들의 말에
크게 신경 쓰는 브라이스가
대립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성격을 알아가고,
맞춰가는 과정이 영화의 줄거리다.
영화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 브라이스의 시선과
줄리의 시선이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소설 속 전지적 작가 시점이 된 관객들은
똑같은 사건을 둘러싼 두 주인공의 생각 차이를
눈으로 직접 보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관객들은 줄리와 브라이스가
서로를 좋아하는 시점이
계속해서 어긋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줄리는 브라이스를 줄곧 좋아해왔지만
브라이스는 줄리에게 관심이 없었고.
반대로 브라이스가 줄리에게 'Flipped' 한순간부터는
줄리의 마음이 식은 것이 드러난다.
사랑이 타이밍이라는 건
동서고금을 따지지 않고
진리인가 보다.
영화는 결핍에 대처하는 자세를 이분법적으로 다루면서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대표적인 예시가 주인공의 아버지들의 태도다.
영화 속 아버지들의 모습은 크게 대조를 이룬다.
브라이스의 아버지는 금전적으로 부유한 편에 속하고,
현실적인 사람으로 묘사되는 반면
줄리의 아버지는 소위 '그림쟁이'로 치부되어
브라이스의 아버지로부터 무시를 당한다.
가정 환경이 줄리와 브라이스 두 사람의
성격을 크게 좌우했다고 볼 수 있는데
화가인 아버지를 둔 줄리는 좀 더 자기의 생각을
자유롭게 주장하게 되었고, 브라이스에게는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는 삶을 사는 요소로 작용했다.
각각의 아버지들이 지니고 있는 삶의 태도는
자식들이 결핍에 대응하는 방법에 대한 차이로 이어졌다.
누구에게나 결핍은 있다.
줄리의 아버지에게 가장 큰 결핍은 가난이다.
정신지체가 있는 자신의 동생을 보살피느라
가족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줄 수밖에 없는
줄리의 아버지지만, 이를 사랑으로
극복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브라이스의 아버지에게도 역시 결핍이 있다.
영화 속에서 그는 현실적인 이유로
음악을 포기한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런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타인의 예술을
깎아내리는 방식을 선택한다.
줄리의 아버지가 결핍을 그대로 수용하고,
다른 방법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브라이스의 아버지는 결핍이 있다는 것조차
인정하지 못하고 그 원인을 타인에게 돌린다.
이는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도 이어지는데,
브라이스가 자신이 좋아하는 줄리를
비난하는 친구에게 저항하지 못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자신이 좋아하는 줄리가 가난하다는 결핍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한 결과다.
영화는 결국 부분보다 전체를 봐야 한다는
브라이스의 할아버지 이야기로 귀결된다.
부분보다 전체가 더 나은 사람이
의외로 많이 없다는 교훈이 뼈아프다.
제일 처음 줄리는 브라이스의 그윽한 눈에 반해서
그를 좋아했지만, 브라이스가 보여주는
미흡한 측면에 실망해 그에게 마음을 접게 된다.
반면 브라이스는 그런 줄리가 귀찮았지만
줄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매력들에 반해
줄리를 좋아하게 됐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브라이스가
마음의 문을 열고 감정에 솔직해지면서
그들의 사랑은 이어지게 됐지만
첫사랑에서도 가정환경 따위가 개입되어 있는
현실이 느껴져 조금은 씁쓸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스스로를 한 번 되돌아봤다.
나는 전체가 부분보다 아름다운 사람일까?
쉽사리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마치 진짜 자신의 성격이 그런 것처럼
배역들을 잘 소화해낸 배우들의
연기력도 칭찬해주고 싶다.
특히 영화 속 브라이스는 진짜 잘생겼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
브라이스 할아버지의 명대사를 인용하면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비록 나의 첫사랑은 씁쓸했지만, 앞으로는
따뜻한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
"어떤 사람은 평범한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람은 광택 나는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사람은 빛나는 사람을 만나지.
하지만 모든 사람은 일생에 단 한 번
무지개같이 변하는 사람을 만난단다.
네가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더 이상 비교할 수 있는 게 없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