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석 및 리뷰 < 킹스 스피치 , 2010 >
대개의 성공 스토리가 그렇듯,
영화는 실패로 시작한다.
많은 영국 국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왕자가
연설에서 말을 제대로 못 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다.
깊고 무거운 침묵은
더욱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훗날 조지 6세가 될 왕자 '버티'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한다.
조지 6세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영화
<킹스 스피치>는
두려움과 위계에 관한 이야기다.
조지 6세가 말더듬이 버티에서
제대로 된 왕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 속에서 우리도 배울 점이 있을 것 같다.
어느 날, 언어치료사 로그의 사무실로
누군가 찾아온다.
사무실을 방문한 여자는
남편의 언어치료를 맡아달라고 제안하지만,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려줄 수 없다고 말한다.
또 자신을 통해서만 교육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로그는 단번에 그 제안을 거절한다.
치료를 받고 싶다면 그 누구라도
본인이 직접 와야 한다는 말을 여자에게 건넨다.
잠시 후 로그는 자신을 방문한
여성의 정체를 알게 되지만
그의 선택은 변하지 않는다.
영화 속 로그의 성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여기서 우리는 로그가 허례허식과 격식보다,
실용성을 강조하는 캐릭터임을 알 수 있다.
반면 그를 찾아온 '환자'는
그와 정반대의 인물이다.
왕자로서 권능을 자연스레 체득한 버티는
자신을 고쳐주려 하는 치료사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까지 한다.
이러한 두 인물의 성격 대조는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관전 포인트가 된다.
이 영화를 논하기 위해서는 컴플렉스라는
키워드를 끄집어 낼 수밖에 없다.
영화는 조지 6세가 말더듬이
컴플렉스를 극복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을 더듬게 된 계기는 두려움이었다.
버티는 어린 시절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 형에게 자격지심을 느꼈다.
형은 버티가 말을 더듬자 그에게
버벅 버티라는 별명을 붙이며 놀려댔고,
권위주의적인 아버지까지 자신을 몰아붙이자
말에 대한 두려움이 고치기 힘든 습관으로 이어졌다.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행동의 제약을 가져온 사례다.
영화 속에서 버티가 말더듬이를 극복하는 일은
자신에게 컴플렉스가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영화 속에서나 현실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중반까지 버티는
자신의 말더듬이 컴플렉스가
어린 시절 겪었던 트라우마로부터
기인한 것이라고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스스로를 깎아내렸고,
왕이 될 자질이 없는 사람이라며
아버지와 형의 그늘 속으로 숨기를 원했다.
하지만 로그는 그런 그의 모습을 꿰뚫어보고는
버티에게는 말을 더듬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님을 깨닫는다.
어릴 적 겪었던 일로 인해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게
가장 핵심적인 문제였다.
자신의 약한 점을 스스로 감추려 한다는 점을 감추지 않는 것.
모순된 표현처럼 보이지만,
컴플렉스를 극복하는 출발점이다.
버티는 로그에게 자신의 약점을 당당히 밝히고
그와 친구가 된다.
그 이후 버티는 스스로의 모습을
점점 찾아가면서 자신에게
왕이 될 자질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 후반, 버티는 로그에게 박사학위가 없음을
알고도, 그를 내던지지 않는다.
버티가 대주교의 이간질에도 로그를
곁에 남겨뒀던 이유는,
버티는 대주교가 말한 컴플렉스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버티에게는 로그라는, 박사학위도 가지지 않은
평민과 친구 사이라는 컴플렉스를
애써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과거 그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면모다.
나는 노력도 재능이라는 말을 믿는다.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할 때,
완벽하진 않지만 계속해서 노력해가는 것도
재능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노력이 재능이 아닌 사람은
자기가 잘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쉽사리 포기하게 된다.
영화 속 버티가 조금이나마 말 더듬는 것을
고칠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전쟁을 알리는
첫 연설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왕자의 신분으로 평민에게 치료를 받기로 마음먹었던 용기와
자신을 믿고 있는 국민들을 위해 언어 치료를 선택했던 결단이
그의 말 더듬거림을 고칠 수 있었다.
쉽진 않겠지만, 우직하게 그 길을 걸어가는 태도가
조지 6세에게서 배울 점이 아닐까 싶다.
영화 속 연출 기법은 크게 어렵지 않다.
영화의 전체적인 카메라 구도가
인물을 중심으로 드러난다는 점이 주요 포인트다.
대부분의 샷들이 등장인물들의 표정을
세세하게 담아냄으로써
그들의 감정변화게 쉽게 몰입할 수 있다.
또 특징적인 포인트는 카메라의 원근법이다.
연설을 두려워하는 조지 6세의 심정을 드러내기 위해
궁전의 긴 복도를 잘 담아냈다.
화려하지만 썰렁한 궁의 모습을 보면서
버티가 감당했을 권위의 무게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
아쉬운 점도 있다. 나에게는 크게
해당사항이 없었지만,
일부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지루함을 느꼈다고 한다.
아까 말했던 인물 중심의 카메라 기법이나,
정적인 플롯이 그 원인인 듯하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지루함 또한
즐겨보라고 말하고 싶다.
느리면 느릴수록, 조지 6세의 상황에
더 공감할 테니 말이다.
뭔가 멋진 말로 마무리를 하고 싶지만,
담담하게 내 길을 가자는 뻔한 말로 마무리를 하련다.
P.S 콜린 퍼스의 외모와, 연기는 배역에 매우 잘 녹아들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