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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스 Nov 23. 2019

Love is open door

영화 해석 및 리뷰 < 겨울 왕국 ( Frozen ), 2013 >


겨울 왕국 2 개봉에 즈음하여

오랜만에 겨울 왕국 1을 꺼내들었다.


몰입감 있는 영상과, 귀를 호강시켜주는

OST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던 스토리 구석구석의

내용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여성상

영화에서는 여성상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드러낸다.

기존의 디즈니 공주들이 남성에게 의존적인

캐릭터로 묘사되었다면, 엘사나 안나는

그러한 한계를 과감하게 벗어던진다.


사실 디즈니가 수동적인 여성상을 극복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한 시점은 꽤 오래전이다.

1998년 작인 <뮬란>이 대표적인 예다.


과거 잠자는 숲속의 공주나, 인어공주처럼

왕자만을 기다리는 캐릭터에 머물지 않고

주체적인 인격체로서의 공주를 드러낸 것이

뮬란의 대표적인 성과다.


뮬란 이후부터 디즈니는 한정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난 공주들을 계속해서 그려왔다.

과거 리뷰했었던 주먹왕 랄프 속 바넬로피 공주나

최근 큰 인기를 끌었던 실사판 알라딘 같은 경우

공주에게서 왕자는 더 이상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겨울 왕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겨울 왕국의 주요 등장인물인 엘사나 안나의 관점에서

왕자의 존재는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캐릭터로서

소비되고, 심지어 악역에 지나지 않는다.


안나의 경우 엘사의 얼음이 심장을 차갑게

만드는 마법에 걸리지만, 그녀를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것은

흔한 왕자의 키스가 아니라 트롤의 도움이요,

언니의 따뜻한 사랑이었다.


또한 영화의 남자 주인공 격인 크리스토프의 직업은

얼음 장수로 등장하는데, 엘사가 가지고 있는

눈과 얼음의 능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직업군이라는 점에서 매우 수동적인 캐릭터로 묘사된다.


공주라는 한 무리의 캐릭터로 큰 인기를 끌어온 디즈니는

아이러니하게도 앞으로 공주라는 캐릭터성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과거 그릇된 여성성으로 한정되었던 캐릭터가

드러내는 다양한 모습들이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사랑


여성성과 같은 맥락에서 영화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다만 여기서의 사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남녀 간의 '에로스'적인 사랑이 아니라

형제간의 우애로 번역되는 friendship,

또는 필리아로 불리는 그런 사랑이다.


영화 속에서 표현하고 있는 사랑이

에로스가 아니라는 사실은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데,

기존의 한스와 안나, 크리스토프와 안나의 관계에

몰입해 영화를 보고 있던 관객들에게

이러한 사랑의 실체는 반전으로 다가온다.


어린아이들을 주요 관객으로 삼는 영화인만큼

필리아가 에로스를 우선한다는 점은

아이들에게도 꽤나 신선한 자극임에 틀림없다.


사실 영화가 꼭 이성애적인 사랑으로

흐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영화 중간중간 계속 암시된다.

Love is Open door이라는

유명한 OST가 그 대표적인 예다.


한국어 판으로 사랑은 열린 문이라고

번역되는 이 곡은 안나와 한스가

듀엣으로 사랑을 나누는 곡이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이성애라는 것으로

정의 내려져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열린 문 같아서 그 문을 통해

어떤 형태의 사랑이라도 들어올 수 있음을 나타내는 곡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 혹자는 퀴어를 나타내는 곡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다기보다는

어린 시절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다양한 모양의

사랑을 드러내는 곡이라고 해석하고자 한다.


사랑이라는 것이 결정론적으로 만들어져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내던져진 존재로서 그 모양이 자유롭게

변화할 수 있음을 인식한다는 의미다.

굳이 구분하자면 퀴어보다는 폴리아모리(다자연애)에 가깝다.





마법


사랑의 형태가 다양하다는 것을 이해했다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겨울 왕국은 또 다른 교훈인 용기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엘사는 선천적으로 마법을 가지고 태어났다.

자유자재로 얼음을 만들 수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재미있는 놀이터를 만들 수도 있는

이 능력은 영화 속에서는 저주로 표현된다.


엘사는 동생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죄책감에 빠져 자신의 능력을 부정하고,

숨기기(don't let them know)에 급급하다.

다른 영화나 소설이었다면 왕에게 마법은

큰 권능으로 그려졌을 텐데, 겨울 왕국에서는

오히려 괴물로 그려진다.


자신의 잘못과 비밀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어린아이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 일까.

용기 없는 엘사의 태도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용기 있는 안나이자 선량한 마을 사람들이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용기 없는 캐릭터로

그려지는 엘사는 그저 마법을 숨기기 위해

Don't Feel이라며 자신을 감추거나

깊은 산속에 외딴 성을 짓고 혼자 숨어지낸다.


이러한 엘사라는 캐릭터에게

용기를 불어넣게 해주는 소재는 바로 올라프다.

영화 속 올라프는 단순하게 개그소재로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다.


솔직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엘사의 마음 한편 이

만들어 낸 올라프라는 캐릭터는 차가운 눈사람에게

이미 따뜻한 생명을 불어넣었다(이후 엘사가 얼음이 된

안나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


또한 올라프는 안나에게 엘사에게로 향하는 길을

안내해주는 역할도 한다.

올라프라는 캐릭터를 통해 투영된 엘사의 따뜻한 마음이

안나에게 도움을 주는 장면이다.


엘사가 가지고 있는 마법은 결국,

자신이 마법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마음의 문제라는 것이 영화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여름 속의 겨울 같은 것


영화 속 엘사와 안나가 보여주는 사랑은

'여름 속의 겨울 같은 사랑'이다.

마냥 감싸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아닌

그런 사랑이 영화 속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True Love인 셈이다.


영화 속 트롤들이 부르는 노래 중에도

이러한 내용이 나온다.

사람은 결국 바뀌지 않지만

그 사람을 온전히 채우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가사가 인상 깊다.


결국 엘사의 선천적인 능력은

변화하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까지

그녀는 여전히 마법을 쓰게 된다.


하지만 엘사는 과거처럼 자신이 마법사라는

사실에 겁먹거나 이를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드러내고, 올라프에게

생기를 더해주는 방향으로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기까지 한다.


Love Is Open Door라는 곡에서

나왔던 것처럼 사랑은 열린 문이다.

어떤 형태의 사랑이 등장할지는

그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안나와 엘사가 그랬던 것처럼

사랑의 여름 같은 모습과, 겨울 같은 모습을

모두 받아들이면 된다.


함부로 규정짓지 않고, 그 규정으로 말미암아

타인을 괴물로 판단해버리지만 않는다면

차가운 세상에도 여름을 되찾을 방법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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