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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스 Jan 12. 2020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영화 해석 및 리뷰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13 >




사람의 마음에는 단순화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있다고 믿는다.


단순히 호감과 비호감의 

일차원적인 구분에서 벗어나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도 미워하기도 하고, 

또 어쩔 때는 죽을 듯 괴로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기쁜 그런 감정이 들기도 한다.


인간관계가 어려우면서도 재미있는 이유다.


내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는

앞서 설명했던 '복잡한 감정선'을 

잘 드러내는 것과 관련 있다.


단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마다 감정을 다르게 표현해내는 방식이 

영화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오늘 리뷰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대표작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한 어른이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낸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그만의 감정 표현 방식이 눈에 띈다.





아버지


언젠가 어느 글에서 쓴 적이 있지만, 

나의 아버지는 매우 무뚝뚝하시다.


'무뚝뚝한 성격'이 아버지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라고 믿으시는 나의 아버지는 

이 성격을 한동안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어머니는 사랑을 주는 존재, 

아버지는 가르침을 주는 존재라는

전통 가부장제의 원형 같은 역할을 고집해오셨다.


어린 시절, 나는 그런 아버지가 

되고싶지 않았다.

TV 드라마 속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똑똑하면서 상냥하고 표준어를 쓰는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무뚝뚝함보다는 자상함이 진정한 아버지의 

미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느 정도 그런 마음이 있지만

나의 아버지가 자상함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놓은 이유는

영화 속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주인공 료타는

전통적인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업무로 인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고,

아들에게 애써 근엄한 척하려 하는 

그런 모습 말이다.


이런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라고 믿는 믿음은

어디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화 속에서는 두 아버지 상이 대립한다.

부유하고 능력 있는 아버지지만 

고지식해 보이는 료타와

넉넉하진 않지만 상냥한 태도로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유다이'.


두 명의 아버지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는 

각각 다르지만 모두가 자신의 아이를 

사랑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소유


영화 속 료타와 유다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아이를 대하는 태도다.


아이를 하나의 소유물로 볼 것인가

나와 관계있는 하나의 독립적 개체로 볼 것인가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차이다.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마치 후자가

정답인 것처럼 인식될 수 있지만

두 육아 방식에는 각각 장단점이 존재한다.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착하고 바르게

자라온 것 같은 케이타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처럼

아버지가 좋아할 만한 일을 찾아 헤맨다.


반면 자유롭고 격없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온

류세이의 경우 자기주장이 확고한 편이지만

어른들의 기준에 자칫 버릇없게 느껴질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악역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특성처럼

영화는 감독의 주관을 배제한 채

'다름'을 관객에게 그저 보여주고 있다.




시시한 이야기


이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인상 깊은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장면은

료타가 케이타를 향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두 명의 인물을 각각 조명한다.


수풀을 사이에 두고 나눠진 료타와 케이타는

한 인물씩 번갈아 등장하는데,

이때의 모습은 어른과 어린아이가 아니라

개인이라는 독립적인 개체로서 존재한다.


료타가 케이타에게 사과하는 장면은

항상 높고 낮음의 관계였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동등한 관계로 변화시킨다.


가족 내에서도 존재하는 수직적인 계층구조가

수평으로 바뀌는 장면이다.

료타의 진심 어린 사과는 매우 인상적이다.


"미안해 아버지도 아버지가 처음이라서"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봤을 법한 이 표현이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다.


영화는 아버지란 자상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 역시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다.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완벽한 부모 콤플렉스'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모두를 괴롭히고 있음을 드러낸다.


영화 속 카메라라는 소재가 이를 뒷받침한다.

케이타가 원했던 아버지의 진짜 모습은

똑똑하고 모든 것을 다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발을, 어쩔 줄 모르는 

바보 같은 표정을,

날 것에 가까운 아버지를 남기기 위해

케이타는 카메라를 들었다.


진지한 이야기보다 시시한 이야기를

많이 주고받는 가족이 좋은 가족이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료타는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아버지 역할에서 벗어나 

진짜 '아버지'가 됐다.





영화는 '피'와 같은 본질적 속성보다

마음을 나누는 가족이 

진짜 가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영화 <가족의 탄생>이 이와 비슷하지만 

이 영화는 아버지라는 캐릭터에 

조금 더 초점맞춰져 있다.



물론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어머니라는 캐릭터를 남편을 보조해 

아이를 양육하는 수동적인 역할로 한정지으며

영화가 끝나는 것은 이 영화의 한계라고 볼 수 잇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인간에게 관심이 많은 듯하다.


그는 자서전에서

'미디어는 악인을 악하게 조명하기보다

악인이 왜 악인이 되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의 영화가 사람들을 

섣불리 단정하지 않는 이유다.


영화를 보면서 나의 가족들에 대한 

생각도 많이 났다.


시시한 이야기보다 진지한 이야기가 

많은 것을 넘어서서

진지한 이야기조차 많이 나누지 못하는 

나의 가족 얘기 말이다.


완벽한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무뚝뚝함을 무기로 삼아 살아온 나의 아버지.

어른과 부모라는 이유로 힘든 것을 힘들다고

표현하지도 못한 채 살아왔던 나의 부모님.


우리 모두를 괴롭히고 있는

완벽한 어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세상의 모든 가족들 속에서

모든 것이 완벽할 수 없다는 생각과

시시한 이야기가 꽃 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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